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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시간은 이야기가 된다> - 강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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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5_우리의 삶을 버티게 하는 '배고픔'_천명관, <고령화 가족>

(※ 강세형 작가의 신작 <시간은 이야기가 된다>를 연재합니다. 이 책에는 다양한 책과 영화에 대한 저자의 감상을 담고 있습니다.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십여 년 전 영화 한 편을 찍었으나 말아먹었고, 그 후로 십 년 동안 영화판을 전전했지만 결국 그에게 남은 건 이혼과 파산. 그런데, 이렇게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그에게조차 ‘배고픔’이 찾아온다. 정말이지 인정사정없는 녀석이 아닐 수 없다.

닭죽 쑤어놨는데 먹으러 올래?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 그는 몇 년째 한 번도 엄마의 초대에 응한 적이 없다. 바빠서 못 가요, 나중에 갈게요. 그런데 그날 아침 그는 갑자기 밀려드는 허기를 참을 수가 없다. 입 안 가득 진한 닭죽의 풍미가 느껴지며 냄비에 가득 담긴 닭죽을 마구 퍼먹고 싶은 욕구가 맹렬히 솟구쳐 자신도 모르게 그만 ‘네’라고 대답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는, 2년 만에 찾아간 엄마네 집에 결국 눌러앉게 된다. 답이 없었다. 오늘 닭죽을 먹었지만, 내일 또 배는 고플테니까. 그런데 그 집에는 이미 또 다른 자식 하나가 얹혀살고 있다.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 듯 파란만장한 청춘을 보냈던 쉰두 살의 그의 형이, 마지막 사업까지 말아먹고 빈털터리가 되어 엄마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설상가상으로 이번엔 여동생까지 딸 아이 하나를 데리고 엄마집으로 들어온다. 바람피우다 걸려 남편에게 매를 맞다 엄마집으로 도망 온 여동생.

사람은 어려울수록 잘 먹어야 한다.

그런데 엄마의 대사는 이것뿐이다. 왜 왔니, 어쩌다 니들 인생이 이렇게 됐니, 앞으론 또 어떻게 살 거니, 그런 질문은 일절 없다. 삼 남매가 모두 인생에 실패하고 후줄근한 중년이 되어 다시 엄마 등쳐먹겠다고 이십여 년 만에 이 스물네 평짜리 좁은 연립주택으로 모여들었는데, 도리어 엄마에겐 ‘알 수 없는 활기’가 넘친다. 매끼 고기반찬을 해대며 밥상을 차린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삼 남매의 모습이다. 그렇게 몇 끼 고기를 먹다 보면 물릴 법도 한데, 그들은 생전 고기 구경 못 해본 빈민들처럼 매번 맛있게, 그리고 남김없이 먹어치운다. 식탁은 언제나 시끄럽다. 게걸스럽게 고기를 뜯고 씹고 삼키는 소리, ‘네가 더 많이 먹었네’, ‘다 익기도 전에 먹어 치우고 있는 건 너네’ 삼 남매의 투닥거리는 소리.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얼굴에 기름기가 번들거리고 똥배가 나와 허리띠를 늘여야 했지만, 삼 남매 중 누구도 ‘고기 먹기’ 경쟁을 멈추려 하지 않는다. 삼 남매가 아침으로 삼겹살을 굽는 동안, 엄마는 점심에 먹을 돼지 불고기를 재우는 동시에 한쪽 들통에선 사골을 곤다.

 

 

그런데 가장 이상한 건 그들의 먹고, 먹고, 또 먹는 장면을 읽고 있는 내 자신이었다. 게걸스럽다 못해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그들의 식사가 계속될수록 자꾸만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속 마고의 쓸쓸한 표정이 떠올랐다. 자꾸만 이런 생각이 맴돌아서였다. 아, 이래서였던 걸까. 어제도 먹은 밥인데, 인정사정없이 오늘도 또 배가 고팠던 이유는 이거 때문이었을까.

 

돌이켜보면 엄마가 전화를 걸어 닭죽을 먹으러 오라고 했을 때 그것은 죽음의 사막 한가운데 있는 나에게 걸려온 한 통의 구조신호였다.

 

소설 ‘고령화 가족’의 주인공은, 그리하여 추운 겨울을 견디고 살아남는다. 그 추운 겨울 동안 그는 하루에 12시간씩 잠을 잔다. 자다 깨면 엄마가 차려놓은 밥상에서 형제들과 잠시 투닥거리고 또 누에처럼 방으로 기어들어가 잠을 잔다. 게걸스럽다 못해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던 그 가족의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은 치유와 회복의 시간이었던 거다. 어쩌면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정말 그런 의미일지도 모른다. 고단한 어른의 삶. “밥 먹었어?” 그 신호를 붙잡고 우리는 친구를 만나고, 가족을 만나고, 연인을 만난다. 함께 마주 앉은 식탁에 언제나 대단한 화제가 올라올 필요도 없다. ‘오늘 뭐 했어? 요즘 어떻게 지내?’ 아주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는 ‘진짜? 세상 별일 다 있네. 깔깔깔깔.’ 어느새 웃음이 될 수도 있고, ‘그랬구나, 나도 요즘 좀 힘들었는데….’ 어느새 위안이 될 수도 있고. ‘이 집 진짜 맛있다. 아, 배불러. 나 오늘 진짜 많이 먹었다.’ 오랜만에 따뜻한 음식을 너와 함께 먹었다는 것만으로 바닥났던 힘이 채워질지도 모른다. 다시 고단한 어른의 삶으로 돌아갈 힘이.

 

 

닭죽 쑤어놨는데 먹으러 올래?

 

어제도 고팠던 배, 오늘도 고프지 않았다면 그는, 그 구조신호를 놓쳤을 것이다. 죽음의 사막 한가운데 서 있던 그에게 걸려온 한 통의 구조신호. 그 신호마저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의 몸은 알고 있는 거다. 우리의 머리, 우리의 감정보다도 더 잘. 고단한 우리의 삶은, 한 번의 아픔, 한 번의 실패로 끝나지 않으니까. 그래서 또 찾아오는 배고픔. 몇 번의 상처가 되풀이된다 해도, 그래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온다고 해도, 결국 또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것은, 살아남게 해주는 것은, 나와 ‘함께’ 밥을 먹어 주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밥을 먹는 시간. 그것을 잊지 말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그래서 언젠가 또,

 

Take This Waltz. 내 왈츠를 받아줄래?

 

뭐해? 밥 먹었어? 오랜만에 같이 밥이나 먹을까?

 

누군가 나에게 보내올 이 구조신호를 놓치지 말라고. 우리에게도, 영화 속 마고에게도, ‘배고픔’은 또 찾아올 것이다. 인정사정없어 보이던 ‘배고픔’이란 녀석이 실은, 우리의 삶을 버티게 해주고 있었던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