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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이야기가 된다> - 강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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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3.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_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 강세형 작가의 신작 <시간은 이야기가 된다>를 연재합니다. 이 책에는 다양한 책과 영화에 대한 저자의 감상을 담고 있습니다.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내가 특히 애정 하는 영화 리스트를 꼽을 때면, 언제나 빠지지 않는 영화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엄마 아빠의 이혼으로 형제는 떨어져 살게 된다. 형은 엄마와 함께 가고시마에, 동생은 아빠와 함께 후쿠오카에. 그러던 어느 날 형 코이치는 이런 얘길 듣게 된다. 가고시마와 후쿠오카에서 각각 출발한 신칸센 두 열차가 시속 260km로 달리다 중간 지점인 구마모토에서 처음으로 스치고 지나갈 때, 엄청난 에너지가 생겨 기적이 일어난다는 얘기. 그때부터 코이치는 계획을 세운다. 구마모토로 소원을 빌러 가야지. 우리 네 가족이 다시 함께 모여 살 수 있기를….

 

이 영화는 처음부터 거의 끝까지, ‘코이치’의 간절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엄마와 함께 가고시마 외가댁에 살고 있는 코이치는, 활화산이 가까이 있어 종종 재가 날리는 이곳이 너무 싫다. “왜 이런 곳에 사는 거야? 재가 막 떨어지는데…. 정말 이해가 안 가.” 외할아버지에게 볼멘소리를 하는 코이치. 하지만 코이치가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건, 엄마 아빠의 이혼. 그런 코이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외할아버지는 먼 산을 바라보며 선문답 같은 답만 늘어놓는다. “분화는 살아 있다는 증거지. 살아 있으니까….” 그 순간 코이치는 소원을 정했다. 저 화산이 폭발하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도망가야 할 거야. 그럼 나도 엄마 아빠랑 다 같이 살 수 있을 거야. 코이치의 세계에선 그게 전부였으니까. 가족, 우리 네 가족이 다시 함께 모여 사는 것. 그리하여 코이치는, 구마모토까지의 경비를 모으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자판기 밑에 떨어져 있는 동전을 모으고, 아끼던 만화책과 피규어도 팔고, 수영장 이용료까지 빼돌린다. 심지어 학교에서 조퇴하기 위해 아픈 척하는 연기 연습까지….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코이치는 물론 동생 류와 각자의 소원을 가진 친구들이 모두 모여 구마모토에 도착. 헉헉거리며 달리고 또 달려서, 두 열차가 처음으로 교차하는 시간에 맞춰 그 장면이 보이는 곳에 도착한 아이들. 그런데 막상 양쪽에서 달려오던 두 열차가 교차하던 바로 그 순간, 몇몇 아이들 입에선 엉뚱한 말들이 튀어나온다. 예쁜 여자 선생님과의 결혼이 소원이었던 아이는 ‘아빠가 빠칭코에 가지 않게 해 주세요.’ 달려오던 내내 뒤처져 숨을 헉헉거리던 또 다른 아이는 ‘달리기를 잘하게 해 주세요.’ 그리고 영화 내내 너무도 간절했던 코이치는, 끝내 입을 열지 못한다.

 

응? 뭐야?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두 시간 동안 좌충우돌 달려온 거잖아. 왜 소원을 안 빌어?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거야. 애들의 소원은 이뤄지는 거야, 안 이뤄지는 거야. 그래서 코이치네 가족은 다시 모여 살게 되는 건가? 원래 애들 영화는 그런 거 아냐? 애들의 간절함에 어른들이 감동하여 해피엔딩. 그것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어쩌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다시 가고시마의 외갓집에서 아침을 맞은 코이치의 모습. 창문을 열고 집게손가락에 침을 발라 들어 올리며 화산재를 체크하는 코이치. “좋았어. 오늘은 재가 안 쌓이겠어.” 이제 학교에 가야지. 다시 시작된 코이치의 일상.

 

그때의 코이치 표정이 쉽게 잊히질 않았다. 그것은 평범한 우리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영화 내내 걱정 근심으로 가득했던 코이치의 표정이 처음으로, 평범해 보이던 순간. 어쩌면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사는 동안 우리는, 많은 일을 겪게 된다. 때론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사건 사고도 겪게 되고, 끝내 내 맘처럼 안 풀리는 일에 속상하기도 하고, 그래서 좌절하기도 하고, 체념하기도 하고… . 하지만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내겐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큰 아픔, 큰 슬픔이 찾아온다 해도, 우리의 세계는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간다. 때론 그것이 너무 잔인하고 아프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가끔은 그것이 우리에게 위안이 된다. 그래도 시간이 흐른다는 것. 삶은 계속된다는 것.

 

우리는 또, 살아가게 되어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