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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시간은 이야기가 된다> - 강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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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1. 당신의 엉뚱섬은 안녕하십니까?_영화 <인사이드 아웃>

(※ 강세형 작가의 신작 <시간은 이야기가 된다>를 연재합니다. 이 책에는 다양한 책과 영화에 대한 저자의 감상을 담고 있습니다.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어쩌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상상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때도 나는 한 만화영화를 보고 그 글을 썼다. 풍선으로 나는 집.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보았을 그 집을, 누군가는 어른이 된 다음에도 계속 꿈꿨다. 그리고 만화영화로 만들어냈다. 그 만화영화를 본 수많은 사람들은 또 함께 모여,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3백 개의 커다란 헬륨 풍선만으로, 3천 미터 상공까지 날아오른 정말 ‘풍선으로 나는 집’을 현실로. 상상은 바람을 품게 하니까. 정말 그런 일이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면 멋질 텐데! 그리고 그 바람이 간절해지면, 그것은 현실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상상하지 않게 된 걸까? 2009년 ‘풍선으로 나는 집’을 만들었던 감독은, 6년 후 상상력 넘치는 또 다른 영화 한 편을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 머릿속 다섯 가지 감정. 기쁨, 슬픔, 소심, 까칠, 버럭이을 내세워, 마치 마냥 신기하고 재밌기만 할 것 같은, 어린아이들을 위한 만화영화인 양 우리를 극장으로 불러들인 다음, 너무도 사악하게 정곡을 콕콕 찔러 가며 어른인 우리를 울려버렸다.

 

당신은, 그렇게 어른이 됐어요.

 

당신은 더 이상 상상하지 않게 되었죠.

 

그렇게 빙봉이는 기억 쓰레기장으로 사라졌고, 엉뚱섬은 무너져버렸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슬픔이’가 서 있었다.

 

팔자 눈썹에 뿔테 안경,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 있는데도 마냥 슬퍼 보이는 슬픔이. 어쩌면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내 머릿속 컨트롤 패널을 ‘기쁨이’가 장악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우리는 언젠가부터 ‘슬픔이’를 만나게 됐다. 하나둘 슬픔이 쌓여 갈수록, 우리의 모습도 조금씩 슬픔이를 닮아 갔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또 쓰러질 텐데…. 더는 아프고 싶지 않은데…. 괜히 상상하고 바람하고 희망하고 움직이다, 또 슬퍼지면 어떡하지. 내 주위로 내가 그려 놓은 동그란 작은 원 안에서 한 발짝… 내딛기는커녕, 발을 뻗어 보기도 전에 생각만으로 벌써 팔자 눈썹에 한없이 슬퍼 보이는 슬픔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당신은, 그렇게 어른이 됐어요.

 

상상을 멈추지 않고, 풍선으로 나는 집을 만들어냈던 감독이 또다시 우리에게 말을 건네 왔다. 이번엔 그의 표정에서 ‘슬픔이’가 보인다. 그렇게 상상하지 않는, 재미없는 어른이 돼버린 우리가 안쓰럽다는 듯 팔자 눈썹을 지으며 그가 우리를 바라본다. 그래서 우리는, 엉엉 울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깟 만화영화 한 편에…. 당신은 정말, 너무 잔인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엄마. 근데 왜 기쁨이 머리 색깔이, 슬픔이랑 똑같아요?”

 

 

다섯 살 난 딸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는 후배. 정말 그랬다. 영화 속 다른 감정들은 모두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가지 색깔이지만, 오직 기쁨이만이 자신의 몸과는 다른 색깔의 머리카락을 갖고 있다. 결국 감독이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을까.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됐다. 마냥 노란색의 기억, 기쁨이의 세계에서만 머물 순 없는 어른이. 그러니 지금의 우리는, 어린 시절의 우리와 똑같을 순 없다. 어린 시절의 빙봉과 엉뚱섬을, 그 모습 그대로는 간직할 수 없는 거다. 하지만, 기쁨이의 머리카락만은 파랗게 칠해 놓았던 이 사악한 감독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의 엉뚱섬은 안녕하십니까?

 

마냥 기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래요, 우리도 이젠 슬픔을 아는 나이가 됐죠. 하지만 원래 모든 기쁨에는 슬픔이 조금씩 묻어 있는 거예요. 슬픔이 없이는 기쁨이도 존재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파란 머리카락만 보고 지레 겁을 먹고 도망 다니다간, 당신은 영원히 상상할 수 없는, 재미없는 어른으로 남게 되겠죠. 어른인 당신에게도, 당신에게 어울리는 엉뚱섬이 분명 있을 텐데…. 하지만 당신은 오늘도, 그 작은 원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군요.

 

팔자 눈썹의 슬픔이의 모습으로,

당신이 그려 놓은 그 작은 원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