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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시간은 이야기가 된다> - 강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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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예고 이야기의 힘_강세형 신작 에세이 <시간은 이야기가 된다>

소설 쓰는 친구와 연극하는 친구가 만났다.

 

연극하는 친구가 말했다. “사람들이 생활에서 연기를 하면서 살아가는 탓인지, 연극들을 잘 안 봐.” 소설 쓰는 친구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이런 생각을 한다. ‘그건 소설도 마찬가지야. 세상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으니까.’ 두 친구는 말없이 술잔만 부딪쳤다.

 

꽤 오래전 책을 읽다 발견한 이 장면에 나는, 어쩐지 좀 쓸쓸해졌다. “요즘엔, 소설은 아예 안 보는 사람들도 꽤 많아.” 내 주위의 글쟁이들도 이런 얘길 참 많이 한다. 그때마다 나 역시 조금 쓸쓸해진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내 마음 한편에선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아니야. 그래도 나는 아직, 이야기의 힘을 믿어.’

 

 

누군가 말했다.

이봐요! 책을 판다는 건 단지 340그램어치의 종이와 잉크와 풀을 파는 게 아니에요. 새로운 인생을 파는 거라고요. 책에는 사랑과 우정과 유머와 밤바다에 떠 있는 배, 그러니까 온 세상이 들어 있어요. 진짜 책에는 말이에요.

 

이 말 또한 나는 책, 이야기에게서 전해 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내 마음속 고개가 격하게 끄덕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 또한 그렇다고 믿으니까. 책 안에는, 이야기 안에는, ‘온 세상’이 들어 있다고.

 

어려서부터 이야기를 좋아했다. 소설, 영화, 만화, 드라마…. 장르는 아무래도 좋았다. 재밌는 이야기, 흥미로운 이야기, 내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라면 나는 무엇이든 좋았다. 이야기에는 정말 그런 힘이 있었으니까.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움직일 수 없었던 ‘내 마음’을 움직이는 힘. 그래서 나는 정말, 내 인생의 많은 것들을 혹은 대부분의 것들을 ‘이야기’를 통해 배웠다.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 나는 이야기에게서 위로받았고, 그 과정을 통해 또 누군가를 위로하는 법을 배웠다. 길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 속에 나 홀로 서 있는 것 같을 때도, 나는 이야기 안에서 길을 찾았고, 그렇게 또 누군가와 함께 걷는 법을 배웠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어느 쪽 말을 들어도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역시,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지, 사방을 두리번거려 봐도 혼란스럽기만 할 때 역시, 답은 늘 이야기 안에 있었다. 그렇게 나는 세상을 보는 방법 또한 알아 갔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이야기의 힘을 믿고 있다. ‘생활에서 연기를 하면서 살아가야’하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야기’라고, 나는 믿고 있다.

 

이야기 안에는 온 세상이 들어 있으니까.

이야기 안에는 정말 그런 힘이 있으니까.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움직일 수 없는 내 마음을, 내 세계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