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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호 박사의 뇌과학 공부 - 박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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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연재] 동물의 행동은 감각에서 나오며, 인간의 행동은 의미에서 나온다 #뇌과학

기억과 해마

 

동물의 행동은 감각에서 나오며, 인간의 행동은 의미에서 나온다

망각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기억은 특별한 능력이다. 동물은 사건기억이 빈약하며, 인간의 사건기억은 일생 동안 지속된다. 경험이 사라지지 않고 기억으로 남는다는 현상은 놀랍고 예외적인 현상이다.

 

공포 반응을 동반한 기억처럼 생존에 직결되는 기억은 동물에게서도 오랫동안 유지된다.

 

그림 31

 

그러나 인간처럼 일상 행동의 대부분을 기억에 의존하는 동물은 없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라는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억은 인간 고유의 사건기억이며, 이야기의 형태가 되는 일화기억이다.

 

 

특정한 장소에서 경험한 내용을 이야기 형태로 구성하는 일화기억은 생존에 중요한 사건에서 시작된다. 대부분의 감각 정보는 망각되지만, 새롭거나 중요한 자극에 주의를 집중하게 되면 그 자극은 감정을 동반한 순간적 인상이 되어 기억된다. 일단 주의집중을 촉발한 자극은 의식되며, 그 현장을 시각과 청각으로 계속 관찰하게 한다. 이처럼 의식 수준에 도달한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이 바로 작업기억이다. 작업기억은 현재 전개되는 상황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이며 우리의 현실을 구성한다.

 

그래서 작업기억은 의식의 핵심 요소이며 현재 그 자체다. 우리는 가정과 직장에서 시간에 따라 행동이 바뀌는 매 순간 작업기억으로 현실에 적절히 반응한다. 성공적으로 환경에 적응할수록 그 감각경험은 잊게 된다. 왜냐하면 적절한 적응 과정은 반복되어 습관이 되고, 습관적 행동은 의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롭고 중요한 정보는 반복해서 살펴보게 되며, 시각적 주의와 중얼거림을 통한 대뇌피질의 활성 덕에 중요한 대상은 좀 더 오랫동안 작업기억에 유지된다. 반복되는 자극 반응 과정을 통해 작업기억은 장기기억으로 전환된다.

 

장기기억은 절차기억과 선언기억으로 구분된다. 절차기억은 의식이 개입하지 않는 운동 순서 기억이며, 의식되지 않기에 절차기억을 암묵기억이라 한다. 수의근을 움직여 행동을 만드는 대부분의 과정이 바로 절차기억이다. 자전거 타기, 글씨 쓰기, 악기 연주는 모두 반복 훈련으로 획득한 절차기억이다. 양쪽 해마를 제거한 H. M. 환자도 새로운 절차기억 학습은 가능했다.

 

 

선언기억은 언어로 표현되어 의식되는 기억이며, 사건기억과 사실기억으로 구분된다. 사건기억은 장소와 시간에 결합된 기억으로, 일상에서 겪는 대부분의 기억이 바로 사건기억이다. 특정한 장소가 특정한 행동을 유발한다. 식당, 교실, 침실에서 인간은 먹고, 공부하고, 잠을 잔다. 인간은 특정한 장소에서 그 장소에 걸맞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여 습관을 형성한다. 일상은 반복되는 습관적 행동으로 구성되며, 시간과 장소 정보로 구성되므로 사건기억은 사건이 발생한 순서로 나열할 수 있다.

 

각각의 장소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순차적 연결이 바로 이야기를 구성하므로 사건기억을 일화기억이라 한다.

 

일화, 즉 이야기 형태로 구술되는 기억은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다. 동물은 사건기억이 약해서 새로운 장소에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사건의 순서를 기억하지 못해 염소는 목줄에 얽히게 되면 빠져 나오기 어렵다. 얽힌 순서의 역순으로 줄을 풀면 되는데 순서에 대한 기억이 약해서 역순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반면에 인간은 전운동피질premotor cortex의 일부 영역에서 몸통 회전 운동을 담당하기 때문에 몸의 동작을 역순으로 할 수 있다.

 

 

특정한 장소에서 비슷한 경험이 반복되면 감각경험에서 유사한 자극 패턴이 중첩되어 더욱 강화된다. 유사한 지각이 반복되면서 지각의 공통 부분이 범주화되고, 범주화된 지각 자극들이 시간 순서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사건들의 의미가 드러나게 된다.

 

일련의 사건이 시간 순으로 배열되면 사건 사이의 순서화된 맥락에서 인과관계에 대한 의식이 생겨난다. 그리고 사건의 인과적 관계가 사건의 맥락이 되고, 곧 사건의 의미가 된다. 결국 사건의 연쇄로 구성되는 일화기억에서 추출된 사건의 인과관계가 바로 의미기억이다.

 

유사한 사건의 반복이 신경회로에 공통의 패턴을 형성하고, 그 범주화된 공통 패턴이 바로 사건의 의미가 된다. 그래서 일화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의미기억으로 농축된다. 사건기억은 반복되지 않으면 쉽게 잊힌다.

 

그러나 특정한 사건의 구체적 내용은 기억에 희미하지만 ‘사건의 의미’는 범주화되어 오랫동안 기억에서 유지되어 의미기억이 된다. 의미기억을 지속적으로 반영하여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선택된다. 따라서 동물의 행동은 감각에서 나오며, 인간의 행동은 의미에서 나온다.

 

뇌 구조를 알면 생각과 행동이 바뀐다.

 

뇌 작용을 알면 감정을 이해하게 되어 자유로워지고,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뇌를 그리는 이유는 뇌 작용을 이해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공부 방식이기 때문이다.

 

뇌 구조를 기억하는 동안 이미 뇌의 연결이 바뀌고, 그래서 자신이 변화한다.(27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