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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 뤼트허르 브레흐만

Chapter 10.#10 아이디어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새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옛 아이디어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렵다.

-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1883~1946년)

 

 

아이디어의 힘

 

나는 주당 근로시간 단축과 보편적 기본소득을 주제로 작성한 기사 두 편을 친구에게 보냈다. 기사를 읽은 친구는 “하늘에 자네의 궁전을 계속 지어보게”라고 비웃었다. 친구가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정치인들이 예산 수지를 맞추지 못할 정신나간 아이디어가 가당키나 할까?

 

그래서 나는 새 아이디어가 세상을 진정으로 바꿀 수 있을지 자문하기 시작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보이는 이성적이면서도 본능적인 반응은 ‘바꿀 수 없다’일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편안하게 느끼는 기존 아이디어에 고집스럽게 집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시간이 흐르며 바뀐다. 어제의 전위적 생각이 오늘날에는 상식으로 등장한다.

 

사이먼 쿠즈네츠는 의지를 관철시켜 국내총생산 개념을 만들어냈다. 랜더미 스타들은 유효성을 입증하라고 압박하는 방식으로 외국 원조를 방해했다. 문제는 새 아이디어가 기존 아이디어를 물리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물리치느냐이다.

 

연구 결과를 보면 갑작스러운 충격이 기적 같은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일리노이대학교 소속 정치과학자 제임스 쿠클린스키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들은 새롭고 유쾌하지 못한 사실에 최대한 직접적으로 맞닥뜨릴 때 생각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보자. 우파 정치인들은 1990년대 이미 “이슬람 세계의 위협”을 경고했지만 2001년 9월 쌍둥이 빌딩이 테러로 파괴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그들의 주장은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했다. 과거에 중요하다고 인정받지 못했던 견해가 사건이 발생하면서 순식간에 집단적 강박 관념으로 바뀌었다.

 

아이디어가 상황을 점차적으로 바꾸지 못하고 단속적으로 충격을 유발해야 바꿀 수 있다면,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민주주의와 언론, 교육에 관한 기본 전제는 전부 잘못됐다. 그렇다면 인간이 정보 수집과 이성적인 숙고를 거쳐 자기 견해를 바꾼다는 계몽주의 모델이 본질적으로는 현상을 유지하는 지지대라는 뜻이다. 합리성과 미묘한 차이, 타협의 효용성을 믿는 사람들은 아이디어가 세상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파악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세계관은 이곳에 블록을 쌓고 저곳에서는 블록을 제거하는 레고 조립품이 아니다. 도저히 제압할 수 없는 세력에 눌려 방어벽이 허물어질 때까지 무기를 총동원해 필사적으로 지켜내야 하는 요새이다.

 

마틴 부인이 이끄는 종파에 레온 페스팅거가 잠입했던 몇 개월 동안 미국인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있는 진실이라도 사람들은 집단 압력에 밀려 무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지금은 잘 알려진 실험에서 애쉬는 선분 세 개를 그은 카드를 실험 대상자에게 보여주고 어느 선분이 가장 긴지 물었다. 실험 대상자는 방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 즉 자신이 모르는 애쉬의 동료들이 일제히 같은 대답을 하자, 분명히 잘못된 대답인데도 그들을 따라 대답했다.

 

정치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정치과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유권자의 투표 방식을 결정하는 요인은 자기 삶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인식이다. 유권자는 정부가 국민 개인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에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다만 우리 모두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이 속하고 싶은 집단을 위해 투표한다.

 

하지만 솔로몬 애쉬는 다른 사실을 발견했다.

 

한 사람의 반대 목소리가 상황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집단에 속한 단 한 사람이 진실을 고수하면서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 다른 실험 대상자들은 그 주장을 믿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것은 광야에서 혼자 외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발견이다. 그러니 쉬지 말고 하늘에 궁전을 짓자. 때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