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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 뤼트허르 브레흐만

Chapter 9.#9 풍요의 땅 너머

죄책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개를 든다.

 

인구 수억 명이 하루 1달러로 연명해야 하는데 우리는 풍요의 땅에 살면서 현금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주당 15시간 일하자는 퇴폐적인 유토피아 이론을 들먹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풍요의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세계 모든 인구에게 누리게 하자는 시대 최고의 과제에 도전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시도해왔다. 서구 세계는 외국의 경제개발을 원조한다는 명목으로 연간 1,348억 달러를 쓴다. 1달에 112억 달러, 1초에 4,274달러이다. 지난 50년 동안 이렇게 쓴 돈을 모두 합산하면 거의 5조 달러에 이른다. 많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전쟁에 들어간 액수와 거의 비슷하다. 게다가 선진국이 매년 자국의 농업에 지원하는 금액은 외국을 원조하는 금액의 두 배이다. 그렇더라도 거액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솔직히 5조 달러는 천문학적인 액수이다.

 

그렇다면 그 돈은 도움이 됐을까? 대답하기가 모호하다. 이때 유일하게 나올 수 있는 대답은 아무도모른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우리는 전혀 모른다. 상대적으로 말해 1970년 대는 인도주의적 원조의 전성기였지만 당시 아프리카의 상황은 철저하게 끔찍했다. 요즈음 미국이 원조를 줄이고 있는데도 상황은 계속 나아지고 있다. 두 상황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밴드 에이드와 보노가 없었다면 상황은 100배나 나빠졌을 수 있다. 아니,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세계은행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20세기 들어 서구 국가들이 제공한 전체 원조의 85%는 의도와 다르게 사용됐다.

 

그렇다면 원조는 모두 허사였을까? 그것도 알 수 없다.

 

우리가 의존하는 경제 모델은 인간을 완전히 이성적인 존재로 전제하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알려준다. 회고적 조사를 실시해 학교와 마을, 국가가 돈 더미를 차지한 후에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볼 수 있다. 사례 연구를 거치면서 도움이 됐거나 도움이 되지 않은 원조에 얽힌 보람 있거나 애석했던 일화를 수집할 수 있다. 게다가 강력한 직감을 활용할 수도 있다.

 

MIT 교수로 프랑스어 억양이 강한 영어를 구사하는 에스더 듀플로는 이처럼 개발 원조에 관한 통상적인 연구 전체를 중세시대에 실시했던 사혈에 비유했다. 과거에 유행한 의학 관행인 사혈은체질의 균형을 바로 잡으려고 환자의 혈관에 거머리를 올려놓는 방법이다. 환자가 다시 건강해지면 의사는 자신의 처치에 대견해하고, 환자가 사망하면 명백한 신의 뜻으로 돌렸다. 의사들이 좋은 의도로 사혈을 시행했다고 하더라도 돌이켜보면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국경이 차별을 유발한다

 

물론 경제 성장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풍요의 땅 너머에서는 여전히 진보를 추진하는 주요 동력이다. 오지에 사는 무수히 많은 인구 에게 식량을 공급해야 하고, 아이들을 교육시켜야 하고, 집을 지어야 한다.

 

물론 윤리적 측면에서도 국경은 개방돼야 한다. 텍사스 출신 존이 굶주려서 죽어가고 있다고 치자. 음식을 달라는 존의 부탁을 내가 거절한다. 그래서 존이 죽으면 내가 잘못한 것일까? 논쟁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태도가 호의적이지 않아 존이 죽도록 방치했을 뿐 살인했다고는 볼 수 없다.

 

이제 존이 음식을 달라고 부탁하지 않고 상인이 많은 시장으로 가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물건으로 임금을 받으려 했다고 치자. 이번에는 내가 무기로 무장한 악당을 고용해 존을 방해하고, 며칠 뒤 존이 기아로 사망한다.

 

이러한 경우에도 여전히 나는 무죄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존의 이야기는 “노동을 제외한 모든 것”의 세계화를 가리킨다. 수십억 인구는 풍요의 땅에서 제품 가격의 작은 일부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팔도록 강요당한다. 모두 국경이 있기 때문이다. 국경은 세계 역사를 통틀어 최대 단독 차별 요인이다. 같은 국가의 국민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 차이는 분리된 세계 시민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 차이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오늘날은 소득 상위 8% 부자가 전체 세계 소득의 절반을 차지하고 상위 1% 부자가 세계 부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최하위층 10억 명이 소비하는 금액은 세계 전체 소비액의 1%에 불과하지만 최상위층 10억 명의 소비액은 72%이다.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풍요의 땅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그냥 부유한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부유하다. 미국에서 빈곤선에 속한 사람도 세계 인구 중 소득 상위 14%에 들어가고, 중위 임금을 받는 사람은 상위 4%에 들어간다. 최상위층을 살펴보면 격차가 더욱 두드러진다. 2009년 신용경색이 계속 악화될 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세계 최하위 2억 2,400만 명의 소득을 모두 합한 것과 맞먹는 금액을 직원들에게 보너스로 지급했다. 그러고 세계 최대 부자 8명의 재산은 세계에서 가난한 인구 절반의 재산을 모두 합한 것과 같다.

 

 

65,000,000,000,000달러

 

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직전에 국경은 대부분 서류상의 선으로만 존재했다. 여권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고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처럼 여권을 발행하는 국가는 미개한 곳으로 인식되었다. 이 밖에도 19세기의 경이로운 기술과 기차의 등장으로 국경은 영원히 사라질 것 같았다.

 

그때 전쟁이 터졌다. 스파이를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람은 국내에 가둘 목적으로 국경이 봉쇄됐다. 1920년 국제사회는 파리에서 회의를 열고 여권을 사용하자는 협정에 최초로 서명했다.

 

오늘날 필리아스 포그의 여정을 따라가려면 비자를 수십 번 신청해야 하고, 보안검색대를 수백 번 통과해야 하며, 몸수색도 여러 번 받아야 한다. 요즘 같은 “세계화” 시대에도 출생 국가가 아닌 곳에 거주하는 인구는 전체의 3%에 불과하다. 하지만 야릇하게도 세계의 문은 사람을 제외한 모든 것에 활짝 열려있다. 제품과 서비스, 주식은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정보는 자유롭게 순환하고, 위키피디아는 300개 언어로 번역되고 있으며, 미국 국가안전 보장국은 텍사스 주 주민이 스마트폰으로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지까지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물론 무역 장벽은 여전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유럽은 껌에 관세를 부과하고(킬로그램당 1.20유로), 미국은 산 채로 수입하는 염소에 세금을 매긴다(한 마리당 0.68달러).20 이러한 장벽을 무너뜨리면 세계 경제가 몇 %포인트라도 더 성장할 것이다21.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자본에 가하는 나머지 제약을 걷어내더라도 기껏해야 650억 달러가 풀릴 것이다. 하버드대학교 경제학자 랜트 프리쳇은 이것을 푼돈이라 불렀다. 하지만 노동인구에게 국경을 개방하면 부는 천 배 이상 성장할 것이다.

 

그 결과를 숫자로 나타내면 65,000,000,000,000달러, 다시 말해 65조 달러이다.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자

 

에스더 듀플로가 시도했던 구충제 치료는 이민 기회를 확대하는 정책에 비교하면 어린 아이의 장난이다. 국경을 아주 조금이라도 개방하는 정책을 펼친다면 세계를 무대로 빈곤을 퇴치하려는 전쟁에서 단연코 가장 강력한 무기로 무장할 수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러한 정책은 다음과 같이 잘못된 주장에 밀려 계속 배척당하고 있다.

 

( 1 ) 그들은 모두 테러리스트이다

( 2 ) 그들은 모두 범죄자다

( 3 ) 그들은 사회적 결속을 해칠 것이다

( 4 ) 그들은 우리의 직업을 빼앗아갈 것이다

( 5 ) 값싼 이민자 노동력이 투입되면 우리의 임금이 감소할 것이다

( 6 ) 그들은 너무 게을러서 일하지 않는다

( 7 ) 그들은 절대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물론 국경은 하루아침에 개방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무절제한 이주가 이루어지면 풍요의 땅에서 사회 결속을 해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 기억해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불평등이 몰지각하게 판을 치는 세상에서 이주는 빈곤과 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1850년대 아일랜드와 1880년대 이탈리아에서 삶의 질이 극적으로 떨어졌을 때 가난한 농부들은 대부분 삶의 터전을 떠났다. 1830~1880년 네덜란드 국민 10만 명도 그랬다. 그들은 바다 건너 기회가 무한히 널려 있어 보이는 땅을 향했다. 이처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인 미국은 이민을 토대로 세워졌다.

 

이제 150년이 지나 전 세계 인구 수억 명은 진정한 의미의 옥외 감옥에 갇혀 살아간다. 모든 국경을 빙 둘러 장벽과 철조망의 4분의 3이 세워진 시기는 2000년 이후였다.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철조망이 인도와 방글라데시를 가른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국경을 빙 둘러 장벽을 쳤다. 심지어 유럽연합은 회원국을 분리시키는 국경을 계속 개방하고 있는 와중에도 지중해에 떠 있는 조야한 선박들의 항로를 바꾸게 한다.

 

인간은 한 자리에 안주하면서 진화하지 않았다.

이렇게 인간의 피에는 방랑벽이 흐른다.

 

가계도를 몇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거의 대부분 이민자가 있다. 현대 중국만 하더라도 20년 전 중국인 수억 명이 시골에서 도시로 유입되면서 세계 역사상 최대 이주 규모를 기록했다. 아무리 파괴적인 영향력을 미치더라도 이주는 진보를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는 동력의 하나이다.

 

문을 열어라

 

국경을 개방하면 미국은 매년 1,340억 8,000만 달러, 매달 112억달러, 매초 4,274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다. 합계가 방대하게 들리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세계 개발 원조금을 모두 합하면 네덜란드처럼 작은 유럽 국가가 건강관리 분야에만 소비하는 금액 정도다. 평균 미국인은 연방 정부가 국가 예산의 4분의 1 이상을 외국 원조에 소비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1% 미만이다. 지금껏 풍요의 땅으로 들어가는 문은 빗장으로 굳게 잠겨 있었다. 마치 극빈자들이 성곽 도시의 성문을 거세게 두드리듯 수억 명 인구가 이 폐쇄된 공동체 밖에 쇄도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제 13장은 누구에게나 자기 조국을 떠날 권리를 인정하지만 누구에게도 풍요의 땅으로 이주할 권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피난처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이내 깨닫듯 이 과정은 공적 부조를 신청하는 것보다 훨씬 제약이 많아서 분노가 끓어오르고 절망을 느낀다.

 

앞으로 한 세기 남짓한 시기 동안 우리는 오늘날 노예제도나 인종차별정책을 돌아보듯 국가 간 경계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이 있다.

 

세계를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면 이민에 관해 우유부단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문을 부숴야 한다. 세계은행 소속 과학자들은 모든 선진국이 이민자 수를 3%만 늘려도 세계 빈곤층에게 추가로 3,050억 달러가 돌아간다고 추산한다. 이 금액은 개발 원조금 총액의 세 배에 해당한다.

 

국경을 개방해야 한다고 앞장서서 주장하는 조셉 캐런스 는 1987년 이렇게 썼다.

 

"자유로운 이주는 즉시 달성할 수 없겠지만 우리가 달성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