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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 뤼트허르 브레흐만

Chapter 7.#7 어째서 은행가에게는 대가를 치르게 하지 않는가?

1968년 2월 2일 동틀 무렵 시티 홀 파크는 짙은 안개에 휩싸였다. 이곳에 모인 뉴욕 시 소속 환경 미화원 7,000명 사이에 반항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노조 대변인 존 델러리가 트럭 지붕에 올라가 군중에게 열변을 토한다. 시장이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면서 협상을 거절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군중의 분노가 들끓는다. 상한 달걀이 공중을 날자 델러리는 협상이 물 건너갔다고 직감한다. 이제는 비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환경 미화원의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단순한 이유로 금지된 수단이다. 파업을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다음 날 뉴욕 시 전체의 쓰레기는 수거되지 않고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뉴욕 시 소속 환경 미화원 거의 전원이 출근하지 않았다. “우리 직업은 좋은 평판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한 환경 미화원이 지역 신문에 이렇게 발언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쓰레기처럼 대하거든요.”

 

세계에서 가장 상징적인 도시가 불과 며칠 만에 빈민가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1931년 소아마비가 전염되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시에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하지만 시장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기자 회견을 열고 시위자들을 탐욕스러운 이기주의자로 매도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결국 환경 미화원들이 승리하리라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뉴욕 타임스> 의 편집자들은 체념하며 “뉴욕은 그들 앞에서 무력하다. 이 거대한 도시는 굴복하든지 쓰레기에 파묻혀 침몰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파업을 시작한 지 9일이 지나 10만 톤의 쓰레기가 쌓여도 환경 미화원들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타임 매거진>은 나중에 이렇게 보도했다. “뉴욕이 혼돈을 향해 치달은 최근 행보는 파업에 유용했다는 교훈을 남겼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부자가 되다

 

아마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직업에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예를 들어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로비스트 10만 명이 내일 파업에 들어간다고 치자. 아니면 맨해튼에서 활동하는 세무사 전원이 출근하지 않고 집에 있기로 결정한다고 치자. 이 경우에 시장이 비상사태를 선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실제로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그다지 큰 피해가 발생할 것 같지 않다. 소셜 미디어 컨설턴트, 텔레마케터, 초단타 주식거래자의 파업은 전혀 뉴스거리가 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환경 미화원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어떤 방향에서 생각하든 환경 미화원은 우리가 대신할 수 없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사 없더라도 우리가 별문제 없이 해낼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그들이 갑자기 일을 중단하더라도 세상은 더 가난해지지도 추해지지도 않고 어떤 식으로든 상황은 악화하지 않을 것이다. 멋들어지게 옷을 입고 다른 사람의 연금펀드를 희생시켜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월스트리트 트레이더를 예로 들어보자. 기업 소송에서 승리를 이끌어내는 영리한 변호사는 어떨까? 멋진 표어를 만들어 경쟁자를 무너뜨리는 탁월한 카피라이터는 어떨까?

 

이러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부를 창출하지 않고 대부분 부를 이리저리 움직일 뿐이다.

 

물론 부를 창출하는 사람과 이동하는 사람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선은 없다. 많은 직업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금융 부문이 부를 창출하는 데 기여하고 그 과정에서 다른 부문을 돌리는 바퀴에 기름을 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은행은 리스크를 분산하고 사람들에게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은행은 지나 치게 덩치가 커졌고 하는 일이라고는 대부분 부를 이리저리 움직이거나 심지어 파괴할 뿐이다. 규모가 폭발적으로 팽창하면서 파이를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에게 돌아올 몫을 늘리는 데만 연연한다.

 

법률 부문의 직업은 어떤가? 한 나라가 번성하려면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진리다. 하지만 현재 미국에서 1인당 변호사 수는 일본의 17배이다. 그렇다면 법의 효과도 일본의 17배일까?5 미국 국민은 17배 만큼 법의 보호를 받고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일부 법률 회사는 생산할 의도가 전혀 없는 제품의 특허권을 단순히 저작권 침해 명목으로 소송을 걸기 위해 사들인다.

 

기이하게도 이러한 직업들은 유형의 가치를 전혀 창출하지 못하고 그저 돈을 이리저리 이동함으로써 높은 임금을 받는다. 이것은 흥미롭고 역설적인 현상이다. 중요하지 않고 불필요할 뿐 아니라 심지어 파괴적이기까지 한 부의 이동자가 그토록 잘 사는데, 경제 번영에 기여하는 교사·경찰관·간호사 등에게 돌아가는 임금이 그토록 형편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나태가 여전히 생득권인 시기는 언제였을까?

 

아마도 이 수수께끼에 대한 답은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몇 백 년 전까지도 거의 모든 인구가 농업에 종사했다. 부유한 상류층은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고, 개인 자산에 의존해 생활하면서 전쟁을 벌였다. 그들이 참여하는 온갖 취미활동은 부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부를 이동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파괴했다. 왕족 출신 귀족은 이러한 생활방식에 자부심을 느끼고, 행복한 소수는 타인의 희생을 발판으로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것을 타고난 권리처럼 휘둘렀다. 그렇

다면 대체 일은 누가 해야 했을까? 농부들의 몫이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농부들이 파업을 했다면 경제 전체가 마비됐을 것이다. 그래프나 도표나 원그림을 보더라도 오늘날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농업은 경제의 일부로서 가장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미국 금융 부문의 규모는 농업 부문의 7배이다.

그렇다면 농부가 파업을 일으키면 은행가가 보이콧 할 때보다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는 뜻일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농업 생산은 급증하지 않았는가? (확실히 그랬다.) 그렇다면농부가 거두는 소득은 과거 어느 때보다 많지 않을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시장 경제에서 상황은 정확하게 반대 방향으로 전개된다. 공급이 커질수록 가격은 내려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골칫거리가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식량 공급은 급증했다. 2010년 미국 젖소가 생산한 우유는 1970년의 2배였다. 같은 기간 동안 밀의 생산성은 2배, 토마토는 3배로 증가했다. 농업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소비자가 기꺼이 지불하는 비용은 줄어든다. 따라서 오늘날 식탁에 올라가는 식량의 값은 매우 싸졌다.

 

이것이 경제 진보의 현실이다. 효율성이 더욱 커지면서 농장과 공장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몫은 줄어든다. 생산성이 증가하면서 농업과 제조업에서 고용하는 근로자 수는 감소한다. 이러한 변화와 아울러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하지만 컨설턴트, 회계사, 프로그래머, 자문, 중개인, 변호사 등이 활약하는 새로운 세상에서 직업을 구하려면 우선 적합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

 

이러한 발달 현상으로 막대한 부가 창출되고 있다.

 

하지만 얄궂게도 사회에 유형의 가치를 전혀 제공하지 못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체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보의 역설이다. 풍요의 땅에서는 더욱 부유해지고 똑똑해질수록 소모되어 버린다.

 

염병할 직업

 

앞에서 언급했듯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2030년이 되면 주당 15시간만 일하게 되리라고 예측했다. 경제 번영이 천정을 뚫을듯 기세가 등등해 상당량의 부와 여가를 교환하게 되리라고도 예측했다.

 

하지만 그러한 현상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경제는 상당히 발전했지만 우리는 자유시간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지 않다. 오히려 현실은 정반대여서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이 책의 2장에서는 우리가 소비지상주의의 제단에 자유시간을 어떻게 희생시켰는지 서술했다. 확실히 케인스는 이러한 현상이 출현하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 맞추지 못한 퍼즐 조각이 하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멋진 색깔로 아이폰 케이스를 생산하고, 식물 추출액으로 색다른 샴푸를 제조하고, 모카 쿠키 크럼블 프라푸치노를 만드는 데 아무 역할도 담당하지 않는다. 현대인의 소비 중독에 기여한 것은 대부분 로봇과 제3세계 임금 노예들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농업과 제조업 분야에서 생산 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 데 반해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일에 혹사당하는 생활방식이 통제 불가능한 소비 지상주의로 연결되는 것이 사실일까?

 

런던 경제대학 소속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다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믿는다. 몇 년 전에는 흥미진진한 글에서 우리가 구입하는 물건이 아니라 하는 일을 탓했다. 제목은 내용에 어울리게 ‘염병할 직업 현상에 관하여’였다.

 

그레이버의 분석에 따르면 무수히 많은 사람이 텔레마케터, 인사 관리자, 소셜 미디어 전략가, 홍보 자문이나 병원·대학·정부의 행정직처럼 스스로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직업에 종사하느라 평생을 보낸다. 그레이버가 이름 붙인 “염병할 직업”은 심지어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조차도 본질적으로 불필요하다고 인정한다.

 

이러한 현상에 관해 내가 처음 글을 썼을 때 많은 사람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한 증권 중개인은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개인적으로 정말 유용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급여가 줄어드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어요."

 

또 “물리학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재능이 탁월한 학교 친구가” 암 감지 기술을 개발했지만 “나보다 수입이 훨씬 적습니다. 정말 우울한 일이에요”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물론 중대한 공공 이익에 기여하고 재능과 지성과 불굴의 의지를 많이 요구하는 직업에 종사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돈을 긁어모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염병할 고소득 직업이 확산되는 현상이 교육 수준의 증가와 지식 중심 경제가 크게 인기를 끄는 현상과 맞물려 발생하는 것은 우연일까? 가치를 전혀 창출하지 않으면서 돈을 버는 것

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 분야에서 일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매우 중요하게 들리지만 무의미한 전문 용어를 암기해야 한다. 네트워크 사회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방법을 생각해내기 위

해 다양한 부문의 종사자들과 전략회의를 할 때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쓰레기는 거의 누구나 수거할 수 있지만 은행업계의 직업은 선택받은 소수에게만 열려 있다.

 

미래의 목표는 완전 고용이다.

그래야 놀 수 있으니까.

- 아서 클라크Arthur C. Clarke(1917~2008년), 영국 과학소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