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김영사가 기획한 특별한 즐거움.
책과 함께하는 재미가 가득합니다.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 뤼트허르 브레흐만

Chapter 6.#6 주당 15시간 노동

여가를 현명하게 보낼 수 있는 것은

문명의 최고 산물이다.

- 버트런드 러셀(1872~1970년)

 

 

20세기 최고 경제학자에게 21세기 최대 과제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었다면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여가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대공황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1930년 여름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마드리드에서 기발한 내용의 강연을 했다. 그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일부 학생에게 새 개념 몇 가지를 이미 소개했지만 이번에는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라는 제목으로 짧게 강연하는 자리를 빌려 공개적으로 발표하기로 결심했다.

 

케인스가 방문했을 당시 마드리드는 혼란 자체였다. 실업률이 걷잡을 수 없이 급증하고, 파시즘이 더욱 기승을 부렸으며 소비에트 연방은 지지 세력을 적극적으로 규합하고 있었다. 몇 년 후에는 전국을 황폐하게 만들 내전이 발생할 터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어떻게 여가가 최대 과제로 떠오를 수 있었을까?

 

그해 여름 케인스는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 같았다. 그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지금 경제적 비관주의의 악랄한 공격을 받아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19세기를 특징짓는 거대한 경제적 진보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합니다….” 물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빈곤이 만연하고 국제 긴장이 고조되었을 뿐 아니라, 국제 산업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면 2차 세계대전이라는 죽음을 몰고 오는 기계가 필요할 것 이었기 때문이다.

 

케인스는 재앙의 벼랑 끝에 서 있는 도시에서 과감하게도 직관에 거스르는 예측을 발표했다. 2030년이면 인류가 최대 과제, 즉 무한한 여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리라 선언한 것이다. 그러면서 정치인들이 “파멸을 초래하는 실수”(예를 들어 경제 위기가 진행하는 동안 긴축 재정을 펼치는 등)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한 세기 안에 서구의 생활 수준은 최소한 1930년대의 네 배로 높아지리라 예측했다.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2030년이면 우리는 주당 15시간만 일하게 될 것이다.

 

여가가 넘쳐나는 미래

 

케인스는 미래가 여가로 넘쳐나리라 예언한 최초의 인물도 최후의 인물도 아니었다.

 

이미 150여 년 전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은 종국에 가서는 하루에 4시간 일하면 충분하리라고 예측했다. 칼 마르크스도 비슷하게 미래를 예언했다.

 

"누구나 사냥꾼이나 어부나 목동이나 비평가가 되지 않더라도 아침에는 사냥을 하고, 오후에는 물고기를 잡고, 저녁에는 가축을 기르고,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는 평을 하는 날이 올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고전적 자유주의의 아버지인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더욱 증가하는 부를 가장 잘 활용하는 방식은 여가를 늘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큰 적수이자 공교롭게도 노예제도의 열렬한 주창자인 토머스 칼라일이 공공연하게 찬양하는 “노동이라는 복음”에 반대하면서, 이 개념에 빗대 “여가라는 복음”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술은 근로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용도로 쓰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갖 종류의 정신적 문화와 도덕적·사회적 진보만 큼 삶의 기술을 향상시킬 여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19세기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산업혁명은 정확히 반대 개념의 여가를 초래했다. 1300년 영국 농부가 생계를 유지하려면 연간 1,500여 시간 일해야 했지만, 밀이 활동하던 시대에 공장 근로자는 단지 살아남으려고만 해도 두 배로 일해야 했다. 맨체스터 같은 도시에서 근로자들은 심지어 아이들까지 휴가도 주말도 없이 주당 70시간을 일해야 했다. 19세기 말 한 영국 공작부인은 “그들은 일해야 해요!”라고 힘주어 말했을 정도였다. 자유시간이 지나치게 많으면 악행을 부추길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850년 무렵부터 산업혁명으로 창출된 경제 번영의 혜택이 좀 더 낮은 계층으로 조금씩 흘러들기 시작하면서 돈이 시간이 됐다. 1855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의 석공들은 최초로 하루 8시간의 근로시간을 보장받았다. 19세기 말 일부 국가의 주당 근로시간은 60시간까지 감소했다. 1900년 노벨 문학상 수상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2000년이 되면 근로자들은 하루 2시간만 일하리라고 예측했다.

 

고용주들은 당연히 저항했다. 1926년 저명한 미국 사업가 32명에게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정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2명은 나름대로 유익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머지 30명은 자유시간이 많아질수록 범죄율과 부채, 타락이 증가할 뿐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포드 자동차를 설립하고 모델 T를 만들어낸 헨리 포드는 같은 해 최초로 주당 5일 근무제를 실시했다.

 

처음에는 포드가 미쳤다고들 말했지만 곧 그가 만든 선례를 따랐다. 골수 자본주의자로 대량 생산 공정을 배후에서 조종했던 헨리 포드지만 근로자의 주당 근로시간을 줄이면 생산성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포드는 여가 시간이 “냉랭한 사업적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휴식을 제대로 취한 근로자는 더욱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게다가 여행을 다닐 시간도 없고 자동차를 타는 즐거움도 누릴 여유없이 해 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공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근로자는 포드가 만든 자동차를 절대 살 수 없을 터였다. 포드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가가 ‘잃어버린 시간’이거나 계급 특권이라는 개념을 근로자의 뇌리에서 하루 빨리 없애야 한다."

 

그 후 10년이 지나기도 전에 회의론자들은 무릎을 꿇었다. 근로시간을 줄이면 경제를 망치리라고 20년 전 경고했던 전미 대량생산협회는 미국 근로자의 근로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짧다고 자랑스럽게 광고하기 시작했다. 여가를 얻은 근로자들은 포드가 만든 자동차를 타고 “미국의 길만 한 길은 없다”고 선전하는 광고판을 지나치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기계 관리 인종

 

지금까지 등장한 온갖 증거로 미루어 보면 마르크스, 밀, 케인스, 포드 등 위대한 지성인들의 주장은 옳은 것 같다.

1933년 미국 상원은 주당 30시간 노동 제도를 채택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해당 법안은 산업계의 압력으로 하원에서 거부당했지만 노조가 요구하는 최우선 조건은 근로시간 단축이었다. 1938년 주 5일 근무를 보장하는 법안이 마침내 통과됐다. 다음 해에는 포크송 ‘큰 얼음 사탕 산’이 가요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노래가사는 “암탉이 부드럽게 삶아진 달걀을 낳고, 담배가 나무에서 열리고, ‘일을 만들어냈던 멍청이’가 가장 키 큰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유토피아를 묘사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여가 시간은 꾸준히 늘어났다. 1956년 부통령 리처드 닉슨은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주당 4일만 일하면 되리라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미국은 “번영의 고원지대”에 도달했으므로 불가피하게 주당 근로시간은 감소하리라 믿었던 것이다. 조만간 기계가 모든 작업을 담당할 것이었다. 그러면 한 영국 교수가 강조한 대로 “예술과 드라마와 춤, 즉 상상이 만들어낸 삶에 몰입함으로써 여가를 풍부하게 즐길 기회가 생겨날 것이다."

 

케인스의 대담한 예측은 현실이 되었다. 1960년대 중반 한 상원 위원회가 제출한 보고서에서는 2000년에 이르면 주당 근로시간이 14시간으로 감소해 적어도 연간 7주 줄어들리라 계산했다. 유력한 두뇌집단인 랜드 연구소는 앞으로 인구의 2%만으로 사회에 필요한 제품을 전량 생산할 수 있으리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일은 엘리트 계급에 집중될 것이었다.

 

1964년 여름 <뉴욕 타임스>는 위대한 과학소설 저자 아이작 아시모프에게 50년 후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예측해달라고 요청했다. 몇 가지 점에서 아시모프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2014년이 되면 로봇은 “흔하지도 않고 질이 그다지 좋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그의 기대치는 높았다. 자동차가 공중을 돌아다니고 수중도시가 건설될 것이었다.

 

궁극적으로 아시모프가 단 한 가지 우려했던 점은 지루함의 확산이었다. 인류는 “대부분 기계를 관리하는 인종”이 되고, “심각한 정신적·정서적·사회적 결과”가 파생되리라고 썼다. 수백만 명이 “강제로 부과된 여가”의 바다에서 표류하게 되므로 2014년에 이르면 정신의학이 의학 최대 전문 분야로 부상할 것이다. 그리고 “노동은 인류가 사용하는 어휘에서 단일 단어로는 가장 크게 각광을 받을 것이다.”

 

1960년대가 전개되면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상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퓰리처상 수장자인 정치과학자 세바스찬 데 그래지어는 AP 통신에 “여가, 특히 강제로 부과된 여가는 불안한 권태와 나태의 순간을 만들어내고 개인 폭력을 증가시킬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1974년 미국 내무부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많은 사람이 낙원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여가는 분명히 미래에 가장 당혹스러운 문제로 부상할 것이다.”

 

이러한 우려가 만연한데도 역사가 궁극적으로 진행할 경로가 무엇일지는 거의 확실했다. 1970년경까지 사회학자들은 “노동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장담했다. 인류는 진정한 여가 혁명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

 

최근 한 친구가 “근로시간을 줄이면 무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이 질문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근로시간을 줄여서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있느냐?”

 

스트레스는?

무수한 연구의 결과를 보더라도 근로시간이 줄어든 사람은 삶에 더욱 만족한다. 최근 근로 여성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를 실시한 독일 연구자들은 “완벽한 날”을 정량화했다.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한 항목(106분)은 “친밀한 관계”였고, 그 뒤를 이어 “사교생활(82분)”과 “휴식(78분)”, “먹기(75분)”도 순위가 높았다. 하위 순위를 차지한 항목은 “양육(46분)”, “일(36분)”, “통근(33분)”이었다. 연구자들은 냉철하게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행복을 최대화하려면 매일의 활동에서 일과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금보다 줄어야 한다

 

기후변화는?

세계적으로 주당 근로시간을 줄이면 21세기 동안 배출할 이산화탄소의 양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주당 근로시간이 적은 국가일수록 생태발자국이 적기 때문이다. 소비의 감소는 노동이 감소하거나 경제 번영을 여가의 형태로 소비하는 과정으로 시작한다.

 

사고는?

초과 근무는 치명적이다.41 주당 근로시간이 길면 실수를 더 많이 하기 마련이다. 몸이 피곤한 외과 전문의는 실수하기 쉽고, 잠을 거의 자지 못한 군인은 표적을 놓치기 쉽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부터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 사고까지 과로한 관리자가 재앙 발생에 치명적인 역할을 한 사례가 많다. 최근 10년 동안 최대 재앙을 유발했던 금융 분야에 초과 근무 현상이 만연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실업은?

물론 단순히 일자리 하나를 좀 더 작게 쪼갤 수는 없다. 노동시장은, 음악에 맞춰 빙빙 돌다가 아무 의자에나 앉을 수 있으므로 그냥 자리를 나눠주기만 하면 되는 의자 뺐기 게임이 아니다. 하지만 국제노동기구 소속 연구자들은 고용분할이 최근 실업 위기를 해결하는 데 크게 유용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형적으로 풀타임 근로자 1명에게 배당된 업무량을 파트타임 근로자 2명이 나누어 맡는 것이다. 이 방법은 특히 실업률이 증가하고 생산이 수요를 초과하는 불황기에 경제적 타격을 완화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여성의 해방은?

주당 근로시간이 짧은 국가는 성 평등 순위에서도 꾸준히 상위를 차지한다. 핵심은 노동량을 좀 더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남성이 요리와 청소를 포함한 가사노동을 공평하게 맡아 주어야 여성이 더욱 폭넓고 자유롭게 경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여성해방은 남성의 문제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를 달성하려면 남성 개인의 선택뿐 아니라 법률 제정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남성과 여성의 근로시간 차이가 가장 작은 스웨덴은 보육과 남성의 출산휴가 정책이 정착된 매우 훌륭한 제도를 갖추고 있다.

 

특히 남성의 출산휴가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인이다. 자녀가 태어난 후에 집에서 몇 주를 보낸 남성은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아내와 자녀와 가사노동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게다가 이러한 영향은 평생 지속된다. 노르웨이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남성이 출산휴가를 보내고 나서 아내와 빨래를 함께 하는 경우는 50% 이상 증가한다. 캐나다에서 실시한 연구에서는 출산휴가를 보낸 남성이 가사노동과 자녀 양육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다고 밝혔다. 남성에게 제공하는 출산휴가는 성 평등을 추구하는 투쟁에서 형세를 전환시킬 잠재력을 갖춘 트로이 목마이다.

 

인구 노령화는?

은퇴 연령을 넘기고도 계속 일하고 싶어 하는 고령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30대조차 직장 업무, 가정에서 감당해야하는 의무, 주택 대출 등으로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므로, 충분히 일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 고령자라도 일자리를 구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남녀뿐 아니라 세대를 걸쳐서도 좀 더 공평하게 일자리를 분배해야 한다. 이제 막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젊은 근로자들은 당연히 80대까지 계속 일하되, 주당 40시간이 아니라 30시간이나 심지어 20시간까지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어야 한다. 한 선도적인 인구 통계학자는 “20세기에 우리는 부를 재분배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근로시간을 재분배하는 위대한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불평등은?

빈부격차가 가장 심한 국가는 주당 근로시간도 가장 길다. 빈곤층은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려고만 해도 근로시간을 늘려야 하고, 부유층은 시급률이 증가하더라도 여가를 즐기는 비용을 훨씬 많이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19세기 부유층은 대부분 손수 일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따라서 노동은 농부의 몫이었다. 사람들은 일을 많이 할수록 가난해졌다. 그 후 사회 관행이 바뀌었다. 오늘날 과도한 노동과 정신적 압박은 높은 사회적 신분의 상징이다. 일이 지나치게 많다고 투덜대는 것은 자신이 중요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은근히 내비치는 시도일 때가 많다. 특히 빈부격차가 계속 벌어지는 국가에서 시간이 있다는 말은 실업과 나태를 드러낸다.

 

 

일은 더 바람직한 활동거리가 없는 사람이 찾는 도피처다.

-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1854~19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