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김영사가 기획한 특별한 즐거움.
책과 함께하는 재미가 가득합니다.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 뤼트허르 브레흐만

Chapter 5.#5 새 시대를 위한 새 수치

재난이 시작된 시각은 오후 3시 15분 무렵이었다. 지구 표면 10여킬로미터 아래에서 발생한 지진의 강도는 지난 50년 이상 동안 측정된 것들 중 최대 규모였다. 10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지진계가 미친듯 움직이더니 리히터 규모 9를 기록했다.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첫 파도가 6미터, 12미터, 그러다가 18미터 높이까지 솟아오르며 일본해안을 덮쳤다. 몇 시간 만에 약 400평방킬로미터의 땅이 진흙, 건물의 잔해, 물로 뒤덮였다.

 

사망자는 거의 2만 명에 다다랐다.

 

재앙이 끝나기가 무섭게 영국 <가디언>은 “일본 경제 자유낙하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표했다. 몇 달 후 세계은행은 일본이 입은 피해액을 집계하고 그리스 전체 국내총생산과 맞먹는 2,350억 달러라고 추산했다. 2011년 3월 11일 센다이에 발생한 해일지진은 이렇게 역사상 가장 피해가 큰 재앙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미국 경제학자 래리 서머스는 지진이 발생한 날 텔레비전에 출연해 이 비극이 얄궂게도 일본 경제를 일으키는 데 유용하게 작용하리라고 예측했다. 단기적으로는 제품 생산량이 주춤하겠지만 두 달이 지나면 복구 노력 덕택에 수요와 고용, 소비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래리 서머스의 예측은 옳았다.

 

일본 경제는 2011년 약간 침체했다가 다음 해 2% 성장했고, 2013년에는 실적이 훨씬 개선됐다. 이렇듯 일본은 최소한 국내총생산 면서 판단하자면 모든 재앙에도 밝은 면이 있다는 항구적인 경제 법칙의 효과를 경험했다.

 

보이는 것

 

그렇다면 기후 재앙을 두 손 들어 환영해야 할까? 이웃 마을을 모두 파괴시키라고 해야 할까? 공장을 날려 버리라고 해야 할까? 기후 재앙은 실직 문제를 해결하는 위대한 수단이고 경제를 세우는 기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흥분하기 전에 다음 사항을 생각해보자. 누구나 이러한 사고방식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1850년 철학자 프레데릭 바스티아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Ce qu’on voit et ce qu‘on ne voit pas’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여기서 바스티아는 관점을 바꿔 생각하면 유리창을 깨는 것이 좋은 계획처럼 들린다고 주장한다.

 

“깨진 유리창을 보수하는 데 6프랑이 들므로 6프랑만큼 상업적 이익이 창출된다고 치자. 누구도 이러한 논리를 반박할 수 없다. 유리가게 주인은 일자리를 얻으므로 기쁜 마음으로 6프랑을 챙긴다….”

 

이것이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바스티아가 인식했듯 이 이론은 사람이 볼 수 없는 대상을 고려하지 않는다. 법무부가 미국 내 거리 활동량이 15% 증가했다고 보고한다고 치자. 이 보고를 접한 사람이라면 어떤 종류의 활동이 증가했는지 당연히 알고 싶을 것이다. 이웃 바비큐 파티일까, 아니면 공공장소에서 나체를 노출하는 것일까? 거리 음악 연주일까, 아니면 노상강도 사건일까? 레몬에이드 판매대를 설치하는 것일까, 아니면 유리창을 깨는 것일까? 활동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것이야말로 현대 사회가 진보 정도를 가늠하려고 사용하는 신성한 척도인 국내총생산으로 측정할 수 없는 양상이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

 

그렇다면 국내총생산은 무엇일까?

쉽게 대답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국내총생산은 한 국가가 생산하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를 합산한 수치로 주기적인 변화, 인플레이션, 아마도 구매력을 반영한다.

 

바스티아라면 이 개념이 ‘그림의 큰 부분을 간과한다’고 말할 것이다. 지역사회 서비스, 깨끗한 공기, 주택 무상 제공 등은 국내총생산 증가에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여성 사업가가 자기 집 청소부와 결혼하고 나서 남편이 무보수 가사를 담당하면 국내총생산은 떨어진다. 위키피디아를 예로 들어보자. 사용자가 돈이 아니라 시간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위키피디아 때문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뽀얗게 먼지가 쌓이고, 그 과정에서 국내총생산은 주춤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지하경제 규모가 국내총생산 산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에서는 통계학자들이 2006년 자국 암시장에 개입하면서, 예를 들어 유럽 부채 위기가 터지기 직전 정부가 몇 건의 대출을 받게 해주면서 국내총생산은 25% 증가했다. 이탈리아가 1987년 암시장의 기여도를 국내총생산에 다시 포함시키자 경제는 하룻밤 사이에 20% 늘어났다. <뉴욕 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경제학자들이 세금 포탈자와 불법 근로자로 구성된 막강한 지하경제를 사상 최초로 포함시켜 통계를 재산출하면서 이탈리아인은 희열의 물결에 휩싸였다."

 

전체 노동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자원봉사와 육아, 요리 등 심지어 지하경제의 일부로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무보수 노동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물론 청소부나 유모를 고용해 집안일을 시키면 국내총생산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우리는 대부분 집안일을 손수 한다. 이러한 무보수 노동을 모두 합하면 국가 경제 규모는 37%(헝가리)에서 74%(영국)까지 팽창할 것이다.5 하지만 경제학자 다이앤 코일이 주장하듯 “일반적으로 공식적인 통계 기관은 무보수 노동을 구태여 포함시키지 않는다. 아마도 대개 여성이 담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일하게 덴마크는 모유수유의 가치를 정량화해 국내총생산에 포함시키려 시도해왔다. 모유수유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정도는 결코 적지않다. 미국에서 모유수유의 잠재적 기여도는 놀랍게도 연간 1,100억 달러로 추산할 수 있는데, 이는 중국의 군사 예산과 맞먹는 규모이다."

 

게다가 국내총생산은 지식의 진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컴퓨터와 카메라, 전화 등은 과거 어느 때보다 똑똑해지고 빨라지고 맵시를 갖춰가지만 가격은 더욱 내려가 국내총생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91기가 바이트를 저장하는 비용으로 비교하면 30년 전에는 30만 달러였지만 지금은 10센트 미만이다. 이러한 눈부신 기술 진보가 국내총생산에 반영되는 비중은 미미하다. 무료 제품조차도 경제를 위축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 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카이프는 전기통신 기업들에게 막대한 비용을 파생시킨다. 개인이 휴대전화로 입수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을 비교하면 요즈음 아프리카인이 1990년대 클린턴 대통령보다 많지만, 경제에서 정보 부문이 차지하는 몫은 인터넷이 보급되기 이전인 25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국내총생산은 많은 좋은 요소들을 반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인간에게 고통을 안기는 온갖 방식에 힘입어 증가한다. 교통 정체, 약물 남용, 간통, 주유소, 재활원, 이혼전문 변호사 등이 그 예이다. 국내총생산이 국가라 치면, 이상적인 시민은 도박을 도저히 끊을 수 없는 데다가 암에 걸리고 이혼 소송을 진행 중이어서 고통을 잊어보려고 항 우울제를 한 주먹씩 삼키고 블랙프라이데이에 미친 듯이 쇼핑을 하는 사람일 것이다. 환경오염은 이중 역할을 해서 환경 보호 원칙을 무시해 큰돈을 버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돈을 받고 청소를 하는 기업도 있다. 100년 묵은 나무는 잘려서 목재로 팔려야 비로소 국내총생산에 포함된다.

 

국내총생산만을 생각하면 정신질환과 비만·오염·범죄 등은 많을 수록 좋다. 그래서 미국처럼 1인당 국내총생산이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국가가 사회 문제에서도 세계 으뜸인 것이다. 저자 조나단 로우는 이렇게 말한다. “국내총생산을 산출하는 기준으로 볼때 미국에서 최악의 가정은 식사를 직접 조리해 먹고,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서 산책을 나가고, 자녀를 상업적 문화 시설에 보내 방목하지 않고 함께 대화하는 등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가정이다."

 

국내총생산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증가 추세에 있는 불평등도 고려하지 않고, 빚에 관해서도 무감각해서 빚지며 생활하는 방식에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세계 금융계가 거의 붕괴되었던 2008년 마지막 분기 동안 영국 은행들의 성장속도는 어느 때보다 빨랐다.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몫을 따져 보면 경제위기가 막바지로 치닫는 시기에 은행계는 미국 경제의 9%를 차지하면서 제조 산업 분야 전체와 엇비슷해졌다. 1950년대 은행의 기여도가 여전히 전무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1970년대 통계학자들은 리스크 감수 행동을 기준으로 은행의 “생산성”을 측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리스크가 클수록 국내총생산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몫이 커지기 때문이다. 은행이 지속적으로 대출을 늘리고, 금융 부문의 가치가 어느 모로 보나 제조 산업 전체에 버금간다고 확신해온 정치인들의 입김이 들어간 것은 의외가 아니다.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는 “금융위기가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추측할 만했다”고 보고했다.

 

 

국내총생산에 기여하는 정도를 비교하면 교사로 붐비는 학교나 자동차 수리공으로 북적이는 공장보다 보너스 수백만 달러를 받으려고 저당 상품과 파생 상품을 무모하게 판매하는 CEO가 더 크다. 요즈음 세상에서는 청소직, 간호직, 교직 등 중요한 직업일수록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몫은 작아진다. 노벨상 수상자 제임스 토빈은1984년 이렇게 언급했다. “우리는 젊음의 진수를 포함해 자신이 지닌 자원을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과 거리가 먼 금융활동, 사회 생산성과 일치하지 않는 사적 보상에 점점 더 많이 투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