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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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 뤼트허르 브레흐만

Chapter 4.#4 닉슨 대통령에 얽힌 별난 이야기와 기본소득 법안

역사는 매일의 삶에 편리하고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교훈을 제공하는 과학이 아니다.

 

물론 과거를 돌아본다면 수도꼭지가 새는 문제부터 국가 채무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련과 고뇌를 더욱 성숙한 관점으로 발전시키는 데 유용할 수 있다. 과거에는 거의 모든 상황이 현재보다 열악했다. 하지만 세계가 어느 때보다 빨리 변하고 있으므로 과거는 더욱 멀게 느껴진다. 과거는 우리가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이질적인 세계 같아서 현재와 과거의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한 소설가는 “과거는 외국이다. 과거 사람들은 현재 사람과 다르게 행동한다”라고 썼다.

 

그렇더라도 역사가는 현대인이 겪는 고통에 대해 단순히 의견을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과거를 보면 현재의 지평을 넘어 앞날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기본소득 개념의 실

질적인 부침을 추적할 수 있는데,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에 관한 이론을 장황하게 늘어놓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새 꿈을 찾든 옛 꿈을 재발견하든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법이다.

 

역사가는 진보나 경제학의 엄격한 불변의 법칙을 믿지 않는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추상적인 힘이 아니라 자신이 걸어갈 경로를 계획하는 사람들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과거를 발판으로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

 

스핀햄랜드의 그림자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고, 빈곤이 필요악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영국의 스핀햄랜드 사례를 들어보자.

 

1969년 여름, 꽃의 혁명(사랑과 평화를 부르짖던 1960년대와 1970년대 청년 문화-옮긴이), 우드스탁(1969년 열린 록 페스티벌-옮긴이), 로큰롤, 베트남 전쟁, 마틴 루터 킹, 페미니즘의 물결이 미국을 휩쓸 때였다. 당시에는 어떤 꿈이든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보수주의 대통령까지도 복지국가를 견고하게 구축하려 노력했다.

 

리처드 닉슨은 토머스 모어가 꿈꿨던 오랜 유토피아적 이상을 강력하게 추구하는 종류의 후보는 아니었지만 때로 역사는 야릇한 유머 감각을 발휘한다.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리처드 닉슨이 재선에 승리하기 위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한 일이 발각된 사건-옮긴이)으로 대통령직을 불명예스럽게 내려놓아야 했던 인물이 1969년 빈곤 가정 전체에 조건 없이 소득을 제공하는 법안을 거의 통과시킬 뻔했기 때문이다. 이때 법안이 통과되었다면 4인 가정에 연간 1,600달러, 2016년 가치로 1만 달러를 지급해 미국은 빈곤 퇴치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성큼 다가섰을 것이다.

 

리처드 닉슨 미국 전 대통령

 

마틴 앤더슨은 기본소득 정책이 어디로 향할지 인식하기 시작했다. 결국 돈이 기본 권리로 여겨지는 미래를 향할 것이었다. 대통령 자문이었던 앤더슨은 기본소득 정책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가 높이 평가하는 작가 아인 랜드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자유시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곳이었고, 기본소득 정책은 앤더슨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개인의 책임과 작은 정부라는 이상에 어긋났다. 그래서 앤더슨은 공격 태세를 취했다.

 

닉슨이 대중에게 기본소득 계획을 발표하려 했던 날에 앤더슨은 대통령에게 간단한 보고서를 건넸다. 150년 전 영국에서 발생했던 사례를 보고하는 6쪽짜리 문서가 그 후 몇 주 동안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영향을 미쳤다. 닉슨의 마음을 완전히 바꿔놓았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역사의 경로를 바꿨던 것이다.

 

〈‘가정 보장제도’의 짧은 역사〉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그 내용을 사회학자 칼 폴라니의 대표 저서 《거대한 전환(1944년)》에서 거의 전적으로 인용했다. 7장에서 폴라니는 19세기 초 영국이 실시한 세계 최초 복지제도의 하나인 스핀햄랜드를 설명했다. 해당 제도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본소득 정책과 유사했다.

 

스핀햄랜드에 대한 폴라니의 판단은 통렬했다. 빈곤층의 나태를 한층 부추겼을 뿐 아니라 생산성과 임금을 둔화시켜 자본주의의 근본을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폴라니는 이렇게 썼다. “‘생존권’ 못지않게 사회적·경제적 혁신을 도입했지만, 1834년 폐지될 때까지 경쟁적 노동시장의 형성을 효과적으로 막았다.” 결국 스핀햄랜드는 “인간의 형태를 잃은 대중의 궁핍화”를 낳았다. 그러면서 기본소득이 바닥이 아닌 천정을 도입했다고 주장했다.

 

닉슨에게 제출한 보고서의 서두에서는 스페인계 미국인 저자 조지 산타야나의 말을 인용했다.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사람은 과거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보고서를 읽고 깜짝 놀란 대통령은 주요 자문들에게 150년 전 영국에서 일어났던 상황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라고 지시했다.

 

자문들은 시애틀과 덴버에서 실험용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획득한 초기 결과를 제시했다. 실험 대상자들이 근로시간을 줄이는 현상은 아직 결과에 반영되지 않았다. 그리고 스핀햄랜드는 닉슨이 물려받은 엉망진창인 사회복지 소비 상황과 비슷하고 사실상 국민을 빈곤의 악순환에 가뒀다고 지적했다.

 

닉슨의 자문으로 활동하던 사회학자이자 나중에 상원의원에 선출된 다니엘 모히니한과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사회가 그럼에도 비난했던 합법적 재정 지원 혜택이었지만” 소득에 대한 권리는 이미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에 따르면 빈곤은 돈이 궁하다는 뜻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스핀햄랜드의 그림자는 1969년 여름을 넘어서까지 뻗어나갔다. 닉슨 대통령은 방침을 바꾸고 새 주장을 펼쳤다. 애당초 주장했던 기본소득 계획에는 수혜자에게 노동을 강제하는 조항이 거의 없었

지만 이제 유급 일자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존슨 대통령의 집권기에 실업이 확산되고 있다는 신호를 전문가들이 보내자 기본소득을 둘러싸고 논쟁이 불거졌지만, 이제 닉슨은 실업을 “선택”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90%가 근로 빈곤층인 미국인 1,300만 명에게 현금을 지원하는 계획을 세웠으면서도 큰 정부가 부상하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했다.

 

역사학자 브라이언 스틴스랜드는 이렇게 썼다. “닉슨은 미국 대중에게 새로운 종류의 사회적 지원책을 제안했지만, 그 계획을 이해할 수 있는 개념적 틀은 새로 제공하지 않았다.” 닉슨은 자신의 진보적 개념을 보수적 수사법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무엇을 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을 알 수 있는 짧은 일화가 있다. 같은 해 8월 7일 닉슨은 영국 총리 벤저민 디즈레일리와 윈스턴 처칠의 아버지이자 정치인인 랜돌프 처칠의 전기를 읽고 있었다고 모히니한에게 말했다. “토리당 인물과 자유주의 정책이 세상을 바꿨다.”

 

닉슨 대통령은 역사에 남을 업적을 쌓고 싶었다. 스스로 과거 제도를 폐기하고, 근로 빈곤층 수백만 명을 자립시키고, 빈곤 퇴치 전쟁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간단하게 말해 기본소득 정책이 보수주의와 진보주의 정치의 궁극적 결합이라 보았다.

 

이제 하원과 상원을 설득하는 일만 남았다. 동료 공화당원을 안심시키고 스핀햄랜드의 선례를 둘러싼 우려를 종식시킬 목적으로 해당 법안에 추가 조항을 달기로 했다. 직업이 없는 기본소득 수혜자들은 노동부에 등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백악관 인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해당 조항이 별반 효과가 없으리라 예측했다. 그러자 닉슨은 비공개 석상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나는 직업의 자격요건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이것은 1,600달러를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이다."

 

다음날 닉슨 대통령은 텔레비전 연설에서 기본소득 법안을 제시했다. 의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기존 복지”를 “근로 복지”로 포장해야 한다면 그럴 것이었다. 하지만 닉슨은 실직 빈곤층의 나태를 퇴치하자는 자신의 주장이 궁극적으로는 국가 전체를 기본소득과 복지 국가에 등을 돌리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예측하지 못했다. 역사에 진보주의 지도자로 남는 꿈을 꿨던 보수주의 대통령은 19세기 영국에 뿌리를 내린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다’는 고정 관념을 뒤엎을 절호의 기회를 박탈당했다.

 

이러한 고정관념을 떨쳐버리려면 다음과 같은 단순한 역사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스핀햄랜드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