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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 뤼트허르 브레흐만

Chapter 2.#2 모든 국민에게 현금을 무상으로 지급해야 하는 이유

2009년 5월 런던에서 노숙자 13명을 대상으로 실험이 진행됐다. 실험 대상자는 거리에서 생활하는 퇴역 군인들이었다. 일부 노숙자는 유럽 금융센터인 스퀘어 마일의 차가운 길바닥에서 40년 동안 생활하고 있었다. 경찰 동원 경비, 법정 비용, 사회 복지 서비스 등의 명목으로 노숙자 13명에게 소요되는 비용은 연간 40만 파운드(65만 달러) 이상으로 추정됐다.

 

도시 서비스 단체와 지역 자선 단체에서 감당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이 지나치게 컸으므로 이런 상황을 계속 끌고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런던에 본부를 둔 원조기구 브로드웨이는 노숙자 13명을 VIP로 대우하겠다는 급진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것은 푸드 스탬프를 지급하고,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고, 보호소를 마련하는 등 매일 제공하던 서비스를 중단한다는 뜻으로, 과감하고 즉각적인 응급조치를 실시한 것이다.

 

그때부터 실험 대상자들은 무상으로 현금을 받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노숙자 13명은 각자 3,000파운드를 소비할 수 있고 한 푼도 돌려줄 필요가 없다. 돈을 어디에 쓸지는 각자 결정할 몫이었다. 원한다면 상담자를 활용할 수도 있으며,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도 없고 따라다니며 질문하는 사람도 없다. 다만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에만 대답하면 된다.

 

정원 가꾸기 수업
 

나중에 한 사회복지사는 “나는 기대가 크지는 않았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실험 대상 노숙자들의 희망사항은 매우 소박했다. 전화나 사전, 보청기 등 각자 자신에게 어떤 물건이 필요한지 나름대로 생각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노숙자는 상당히 검소해서 1년 동안 소비한 금액은 평균 800파운드에 불과했다.

 

20년 동안 마약에 중독되었던 사이먼을 예로 들어보자. 무상 지원금이 사이먼의 삶을 반전시켰다. 그는 몸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정원가꾸기 수업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이렇게 진술했다.

 

"생전 처음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렸어요. 나는 자신을 돌보고 몸을 씻고 면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하고 있어요. 자식이 둘 있거든요."

 

실험을 시작하고 1년 반이 지나자 노숙자 13명 중 7명에게 잠자리가 생겼다. 그 외 2명은 아파트를 얻어 이사할 예정이었다. 13명 전원이 자립과 개인적인 성장을 향해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수업에 등록해 요리를 배우고, 재활과정을 겪고, 가족을 찾아가고,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웠다.

 

한 사회복지사는 개인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을 지급하는 방법에 대해

 

"사람들에게 권한을 주고 선택권을 줍니다. 이 방법이 사람들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했다. 수십 년 동안 사회가 밀어붙이기도 하고, 끌어당겨 보기도 하고, 설득하거나 벌주고, 기소하기도 하고, 보호하기도 했지만 아무 성과도 거둘 수 없었던 악명 높은 부랑자 9명이 마침내 거리를 떠났다. 이렇게 하기까지 비용은 얼마나 들었을까? 사회복지사의 급여를 포함해 연간 5만 달러 정도였다. 달리 말해 현금 무상 지급 프로젝트는 노숙자 13명을 도왔을 뿐 아니라 비용도 상당히 절약했다.<이코노미스트>조차도 “노숙자에게 가장 효율적으로 돈을 쓰는 방법은 돈을 주는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전 세계에서 실시된 연구들은 ‘무상 현금지원이 효과가 있다’는 긍정적 증거를 산출하고 있다. 조건 없는 현금지원은 범죄, 아동 사망률, 영양실조, 십대 임신, 무단 결석은 물론 학교 성적 향상, 경제 성장, 성 평등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다.

 

경제학자 찰스 케니는 이렇게 주장했다. “빈곤층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은 돈이 충분히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빈곤층에게 돈을 제공하는 것이 빈곤 문제를 줄이는 훌륭한 방식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만하다."

 

맨체스터대학 소속 학자들은 공동 저서 《가난한 사람에게 그냥 돈을 줘라(2010년)》에서 거의 또는 아무 조건을 달지 않고 현금을 지원하는 정책의 수많은 성공 사례를 들었다. 나미비아Namibia에서는 영양실조가 42%에서 10%로 급락했고, 무단결석은 40%에서 0%, 범죄는 42% 곤두박질쳤다. 말라위에서는 조건 유무와 상관없이 현금지원을 받은 여학생의 학교 출석률이 40% 치솟았다. 현금지원 프로그램으로 혜택을 가장 많은 받는 계층은 아동이었다.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을 겪는 수가 줄었고, 평균 신장이 증가했고, 학교 성적이 향상했으며, 아동 노동에 강제로 투입되는 확률이 감소했다.

 

맨체스터대학교 연구자들은 현금지원 프로그램의 혜택을 네 가지로 열거했다.

 

첫째, 수혜 가구는 돈을 좋은 용도로 사용한다.

둘째, 빈곤율이 감소한다.

셋째, 소득과 건강, 조세수입 등 다양한 이익이 장기적으로 발생한다.

넷째, 다른 대안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

 

따라서 빈곤층에게 직접 임금을 건네주면 되는데 SUV를 타고 다니는 백인에게 구태여 많은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돈을 보낼 이유가 없지 않은가? 거추장스러운 행정 서비스를 배제시킬 수 있다면 더욱 그렇다. 게다가 무상 현금지원은 경제 전체를 돌리는 윤활유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의 소비가 늘어나면 고용과 소득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금지원의 장점은 자칭 전문가들이 빈곤층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사주는 대신에 빈곤층이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살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빈곤층이 무상 지원받는 현금으로 살 수 없는 제품군이 있다. 바로 술과 담배이다. 실제로 세계은행이 실시한 주요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에서 수집한 전체 연구 사례의 82%에서 술과 담배의 소비가 줄었다.

 

하지만 상황은 훨씬 예상하지 못한 양상을 띠었다. 라이베리아에서 빈곤층 중에서도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200달러를 주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실시했다. 빈민가에서 알코올중독자와 마약중독자, 잡범을 동등한 비율로 선정해 조사했다. 3년 후 나타난 결과에 따르면 과연 그들은 돈을 어디에 썼을까? 음식과 옷, 약을 구입하고 소규모 사업을 창업하느라 썼다. 한 연구자는 이렇게 물었다. “이 사람들이 무상 지원받은 돈을 함부로 쓰지 않았다면 누가 함부로 쓰겠습니까?"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다”는 케케묵은 주장이 사람들 입에서 떠날 줄 모른다. 이러한 주장이 수그러들지 않고 사회에 널리 퍼져있으므로 과학자들은 사실 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불과 몇 년 전 저명한 의학 저널 <란셋>은 과학자들이 발견한 사실을 “빈곤층은 조건 없이 현금을 제공 받았을 때 사실 더욱 열심히 일하는 경향을 보인다”라고 정리했다. 나미비아에서 실시한 실험의 최종 결과를 간추린 보고서에서도 한 가톨릭 주교는 성서 내용에 빗대어 결과를 설명했다.

 

"〈출애굽기〉 16장을 깊이 들여다보라. 노예 신분에서 탈출해 오랜 여행길에 오른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늘에서 만나를 받아먹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나태해지지 않았고 만나 덕택에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유토피아

 

무상 현금지원은 과거에 일부 선도적 사상가들이 이미 주장했던 개념이다. 토머스 모어는 1516년 자신의 저서 《유토피아》에서 무상 현금지원을 실시하는 꿈을 펼쳤다. 노벨상 수상자들을 포함해 수많은 경제학자와 철학자가 그 뒤를 따른다.24 무상 현금지원을 주장하는 인물들을 살펴보면 좌파부터 우파를 아우르고, 신자유주의 사고를 창시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을 포함한다. 1948년 채택된 세계인권선언 25조는 앞으로 무상 현금지원을 실행할 날이 오리라고 약속한다.

 

무상 현금지원은 세계가 보증하는 기본소득이다.

이제 기본소득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