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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의 <고전의 대문 2> - 박재희

Chapter 9.'노장과 병법' 편 #8 <손자병법>에 백전백승은 없다?

<고전의 대문 2> 노장과 병법 편 #8

 

<손자병법>에 백전백승은 없다?

 

역사적 인물 손자는 감과 신념보다는 전략과 전술을 중시하고, 객관적 전력 비교를 통한 전쟁의 내용에 대해 열세 권 분량의 병법서를 저술한 군사 전문가였습니다. 그래서 제후들이 앞다투어 그를 초빙하려 했습니다. 대규모 군대를 자유자재로 운용하려면 장군이 직접 모든 군사들을 지휘하는 중앙 통제 방식의 병력 운용 시스템에서 벗어나 작은 단위의 조직 편제로 세분화시켜 운영해야 한다는 분수分數전략이나,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전투를 할 때는 들판에서 길게 늘어서 싸우는 편전偏戰보다는 유연한 대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진법陳法과 부대간의 통일된 신호 전달 체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형명形名이론은 전투의 새로운 전술적 측면이었습니다. 특히 전쟁은 원칙〔正〕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른 다양한 변칙〔奇〕이 중요하며, 적의 허점과 나의 강점을 파악하여 나의 강점〔實〕으로 적의 허점〔虛〕을 공격해야 한다는 ‘이실격허以實擊虛’의 허실虛實 전략 이론은 손자 전쟁 철학의 백미입니다.

 

손자는 또한 전쟁의 목표를 단순히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에 두지 않았습니다. 아군의 상처와 피해를 동반한 승리는 패배한 것만못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아군에게 얼마만큼 이익이 되는가 하는 이해利害의 입장에서 전쟁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상처뿐인 승리는 그에게 의미가 없는 승리였습니다.

 

손자의 이런 전쟁 철학은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실리와 효율을 중시하는 새로운 전쟁 철학이었고, 승리를 통해 자신의 명분을 확립하려는 이전의 전쟁 목적과는 전혀 다른 논리였습니다.

 

손자는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을 최고의 전쟁 목표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백 번 싸워 백 번 손해 보지 않는 것’이 그의 최상의 가치였습니다.

 

실제로 그의 병법서 어디에도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번 싸워 백 번 이긴다〔知彼知己 百戰百勝〕’는 말이 없습니다. ‘적의 객관적 전력을 완전히 파악하고 나의 전력을 완전히 파악하여 내가 적보다 우수할 때 전쟁을 하면 백 번 싸워도 백 번 위태롭지 않고 손해 보지 않는다〔知彼知己 百戰不殆〕’는 이야기만 있을 뿐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증권투자를 해서 아흔아홉 번 대박 이익을 보았다 하더라도 한 번 의 쪽박으로 다 잃는다면 그것은 유능한 주식 투자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망해도 어느 이상은 안 망한다는 상한선을 분명히 긋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기관리risk management의 전형을 보여주는 손자의 철학입니다.

 

원래 손자는 지금의 산동성 동부 지역에 자리 잡고 있던 제나라 사람이었습니다.

 

제나라는 원래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강태공 姜太公에 게 분봉된 땅이었습니다. 제나라는 손자에게 태어난 고향이자 그가 성장한 곳이었습니다. 주나라 무왕 武王이 은 殷나라 폭군 주왕 紂王을 토벌하고 쿠데타에 성공하면서 일급 참모이자 장군이었던 강태공에게 땅을 하사였습니다. 강태공은 주나라 무왕에게 그 땅을 받은 후 최선을 다하여 통치하였습니다. 물론 그 통치 이념은 주나라 황실의 예의 문화였습니다. 그러나 주나라 황실에서 가장 동쪽으로 떨어져 바다와 접하고 있는 제나라는 단순히 명분을 중요시하는 예의 문화만을 좇아서 통치할 수 없었습니다. 강태공은 토착 세력의 관습을 존중하면서 매우 탄력적인 실용주의 노선을 걸었습니다. 특히 주나라 쿠데타의 주역인 주공周公에게 주어진 노나라와 비교하면 제나라는 예의 문화와는 너무 거리가 멀었습니다. 공자의 고향이기도 한 노나라에서는 주나라 황실의 법제와 예의를 그대로 시행하였습니다. 그러니 노나라 출신 지식인인 공자의 눈으로 본 입장에서는 제나라가 한 번은 변해야 노나라 정도가 되고, 노나라가 한 번은 변해야 주나라의 정통성과 같아진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노나라는 제나라에 비하면 주나라의 예의 문화를 지켜나가는 춘추시대의 마지막 보루였습니다. 그런 민족적인 감정이 공자가 예의 문화의 전도사로 자처하는 소명 의식 아래 깔려 있는 것입니다.

 

반면 제나라는 명분 중심의 예의 문화뿐만 아니라 실리와 경제를 중요시하는 실용주의 노선을 걸었습니다.

제나라의 총리이자 당시 제나라 제후를 천하의 패자로 올려놓은 개혁 정치가 관중管仲은 창고에 먹을 곡식이 있어야 예의도 알게 되고, 등이 따습고 배가 불러야 부끄러움도 알게 된다

 

는 실용주의 노선을 견지하는 개혁 정치가였습니다. 그런 실용주의 정치가인 관중을 공자 같은 주나라 예의문화 전도사가 좋아할 리 없었지만, 관중이 실용주의 노선을 통해 각제후들을 규합하고 무너져가고 있는 중원 문화를 그나마 지켜나가는 모습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공자는 관중에 대한 평가에서 비록 사치스럽다는 비판을 하고 있지만 그의 제자 자공子貢이 관중을 비판하며 관중의 인간 됨됨이를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관중이 있어서 그나마 제나라 환공桓公을 도와 천하를 바로잡은 것이 아니냐? 지금 우리 중원의 사람들은 그 사람의 덕을 많이 본 것이야. 만약 그런 관중이 없었다면 우린 저 오랑캐들에게 다 먹혀서 지금쯤 너나 나나 머리를 삭발을 하고 완전히 오랑캐가 되어 있을 것이야!

 

 

공자도 제나라 정치가 관중의 실용주의 노선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실용주의 노선이 명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관중의 실용주의 노선이 없었다면 제나라가 강력한 국가가 못 되었을 것이고, 그러면 그나마 쓰러져가는 중원의 예의 문화를 누가 지켜줄 것인가? 공자는 비록 관중이 자신의 이상과 부합되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중원의 흩어지는 결속력을 관중이 결속시켰다고 본 것입니다.

 

공자는 단순히 꽉 막힌 명분론자가 아니었습니다. 비록 그의 이상은 500년 전 주나라 건국 초기의 예의 문화로 돌아가는 일이었지만 그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을 폼 나고 명분 있게 살아가려면 이상과 정신만 가지고 안 되며, 힘이 있어야 하고 물질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가난하면 지혜가 짧아지고 소견이 어두워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런 제나라의 실용주의적 분위기는 제나라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손자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손자의 전쟁 철학은 기본 노선이 실용주의 철학에 기초합니다.

 

명분보다는 실리, 상처뿐인 승리보다는 상처 없는 이익, 원칙〔正兵〕보다는 변칙〔奇兵〕을 더욱 중요시 여깁니다.

 

이런 실용주의 전쟁 철학의 근저에는 ‘명분은 강할 때 지킬 수 있다’는 대의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 점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손자에게 기대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손자병법》 이 단순히 적을 이기기 위한 사기와 속임수의 기술이라면 그런 일에 익숙해져 있는 오늘날 우리가 무엇 때문에 《손자병법》 에서 지혜를 빌려야하는지 의문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강해져야 합니다.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모두 강해져야 합니다. 왜 강해져야 하는가? 대답은 간단합니다. 명분 있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폼 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주변 강대국들의 눈치 안 보고, 그들을 제어할 힘과 전략을 가지고, 우리의 모습을 사랑하며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금융권과 채권자의 눈치 안 보고 직원과 함께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는 직장을 만들려면,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강한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직장이 됩니다.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비굴하지 않게 살려면 강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내 삶의 자존감이 높아지고 흥이 날 수 있습니다.

 

정말 눈만 뜨면 전쟁 같은 현실이 시작됩니다. 지하철을 탈 때도,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모두가 전쟁입니다. 인간의 전쟁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이런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내 자존감은 무너지고 인생의 흥은 점점 없어집니다.

 

우리는 경쟁을 하지만 그 이유와 해법을 정확히 알고 해야 합니다. 2,500년 전 손자라고 불리던 전쟁철학자는 그 해답을 제시합니다. 상대방을 완전히 쓰러트리려고 하는 전쟁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부수지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최고의 승리〔全國上之〕라고 합니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전쟁이 가장 훌륭한 전쟁이 아니라 적과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이 최고의 전쟁이라고 합니다. 강한 명분은 강한 힘에서 나오며, 의미 있는 삶은 나를 의미 있게 만들 때 가능한 것입니다. 자존감과 흥의 인생을 만들려면 그만한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손자병법》의 철학을 이 시대에 빌리려 하는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