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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의 <고전의 대문 2> - 박재희

Chapter 5. '노장과 병법' 편 #4 <도덕경> 때로는 사랑이 간섭이 됩니다

<고전의 대문 2> 노장과 병법 편 #4

 

<도덕경> 때로는 사랑이 간섭이 됩니다

 

인仁은 공자가 생각하는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공감하고 그들의 불행을 같이 느낄 수 있는 사랑의 힘이 ‘인仁’입니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애정이 인仁입니다. 그래서 유가에

서는 인仁을 지도자의 가장 상위 덕목으로 꼽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자는 인仁이 때로는 간섭이 되고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부모의 사랑이 자식에게 때로는 불편한 간섭으로 여겨질 때가 있듯이 지도자의 사랑이 백성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권력과 체제를 지속시키기 위해 인仁이라는 이념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윤리의 옷을 입지 않더라도 충분히 구동될 수 있는 것입니다.

 

노자는 지도자의 인仁을 비판하면서 우주의 원리를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주는 사랑으로 구동되지 않습니다. 사자가 먹이를 찢어 먹는 약육강식의 자연세계에서는 ‘사랑〔仁〕’이라는 윤리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하늘은 세상의 만물을 사랑해서 비를 내리거나 햇빛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비가 내리든 눈이 내리든, 춥든 덥든 그것은 모두 무심無心한 자연의 법칙일 뿐이지 어떤 절대자가 세상을 사랑하는 특별한 방식이 아닙니다.

 

 

리더도 이런 하늘을 닮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백성들을 사랑해 그들에게 무엇을 베풀거나 해주려고 하지 말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훌륭한 리더의 통치 방법이라는 것이죠. 새가 곤충

을 잡아먹는 것을 차마 두고 보지 못해 새를 쫓는다면 그것은 자연의 행위가 아닙니다. 자연은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간섭하지 않습니다. 지도자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간섭하지 말고 백성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놔두어야 한다고 합니다. 원문을 읽어보겠습니다.

 

天地不仁 천지불인

以萬物爲蒭狗 이만물위추구

聖人不仁 성인불인

以百姓爲蒭狗 이백성위추구

天地之間 천지지간

其猶槖籥乎 기유탁약호

虛而不屈 허이불굴

動而愈出 동이유출

多言數窮 다언삭궁

不如守中 불여수중

 

하늘과 땅은 만물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만물을 (제사 때 사용하다 끝나면 버리는) 풀로 엮은 강아지 정도로 여깁니다. 훌륭한 성인도 백성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백성을 그저 풀로 엮은 강아지처럼 여겨야 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는 마치 텅 비어 있는 풀무와 같습니다. 비어 있지만 지치지 않는 움직일수록 더욱 힘찬 바람이 나오는 풀무 말입니다. 지도자가 말을 너무 많이 하면 백성들은 자주 곤궁에 처합니다. 자신의 자리에 묵묵히 지키고 있는 것만 못합니다.

- 《도덕경》 5장

 

대장간에서 불의 온도를 높이는 것을 풀무라고 합니다. 풀무질을 계속하면 그 속에서 바람이 나와 쇠를 녹이는 온도까지 불을 올립니다. 그런 위대한 힘은 ‘비어 있음〔虛〕’에서 나옵니다. 비어 있기 때문에 바람이 생기고, 그 바람에 의해 불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바람이 나오는 힘은 ‘비어 있음’입니다. 지도자도 풀무의 ‘비어 있음’을 닮아야 합니다. 내 의도를 강요하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있는 그대로 백성들을 놔둘 때 가장 행복한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최소한의 법만 놔두고 사람들의 자율을 인정해준다면 오히려 더욱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똑똑한 사람들이 세상을 구하겠다는 불타는 의지로 각종 윤리, 제도, 법규를 만들고 강제하고 통제하는 데서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문장에서 ‘다언삭궁多言數窮’이 가슴에 확 들어옵니다. ‘지도자가 말〔言〕이 많으면〔多〕 백성들이 자주〔數〕 힘든〔窮〕 상황을 만난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말을 많이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동양철학을 전공한다고 했을 때 뭐라고 한마디 하실 만한데도 말이 없으셨습니다. 그저 저를 믿어주고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을 인정해주셨습니다. 그것은 방관이나 무심이 아니라 무한한 사랑의 방식임을 이제 압니다. 어쩌면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관심이 더욱 위대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습니다. 노자는 그 시대에 참 혁명적이었습니다. 무정부주의자 anarchist들이 유독 노자를 많이 읽었습니다.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자. 중앙 권력을 없애자. 지방자치, 다양화, 분권화, 다양성, 개성, 개인의 자유 존중, 이런 것들은 노자의 철학과 궤를 같이합니다.

 

말은 간섭이고, 간섭은 집착이고, 집착에는 응징이 따릅니다.

 

누가 누구를 응징하는 것만큼 불행한 일이 없습니다. 비록 그것이 아무리 옳은 가치라고 포장해도, 세상에 누가 누구를 완벽하게 응징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