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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의 <고전의 대문 2> - 박재희

Chapter 4.'노장과 병법'편 #3<도덕경> 덕이 있는 사람은 덕이 보이지 않는다

<고전의 대문 2> 노장과 병법 편 #3

 

<도덕경> 덕이 있는 사람은 덕이 보이지 않는다

 

앞에서 노자의 《도덕경》은 AD 3세기경 천재 소년 왕필에 의해 81장으로 편집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보면 두 권으로 되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대 발견된 노자 판본 중에는 상권과 하권으로 나눠진 경우가 많습니다. 상권은 도道로 시작해서 도경道經 또는 도편道篇이라고 부르고, 하권은 덕德으로 시작해서 덕경德經 또는 덕편德篇이라고 부릅니다.

 

상덕부덕上德不德 시이유덕是以有德

하덕부실덕下德不失德 시이무덕是以無德.

 

높은 덕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덕을 과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진정 덕이 있는 사람이지요. 낮은 덕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덕을 과시하려 합니다. 그래서 결국 덕이 없는 사람이지요.

 

높은 덕을 가진 사람은 타인에게 자신의 덕을 일부러 보이려 하거나 과시하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가지고 있는 덕을 일부러 상대방에 보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덕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덕을 남에게 자꾸 과시하거나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것을 덕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덕을 자꾸 내보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은행에 근무하는 어느 지점장의 말이 생각이 납니다.

 

진짜 돈이 많은 사람은 돈 있는 티를 잘 내지 않아요. 입고 있는 옷이나 행색 가지고는 부자인지 가늠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돈이 있다고 티를 내는 사람은 부도 직전인 경우가 많습니다. 돈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어떻게든 자신의 자산 상태가 좋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지요.

가진 사람이 가진 티를 내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정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똑똑한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똑똑함을 감추고 어리석은 척합니다. 왜냐하면 진짜 똑똑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논리는 노자 《도덕경》 전반에 걸쳐 있는 논리입니다.

 

강하기 때문에 부드러울 수 있고, 높기 때문에 낮출 수 있고, 똑똑하기 때문에 자신의 똑똑함을 과시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진정 가지고 있는 자의 위대한 신의 한 수입니다.

지난날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우리들의 어머니, 대부분 사람들은 어린 시절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옛날 어머니들이 그러셨듯이 제 어머니는 당시에는 그렇게 위대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안에서 당신의 주장을 세게 펴지도 않았고, 늘 부엌에서 밥해주는 것이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밥해주는 그런 어머니가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는 훗날 그분이 안 계시고 알았습니다.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어머니를 통해 알았습니다. 어머니가 가지신 덕은 위대한 덕인데 어릴 때는 위대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훗날 생각해보니 너무나 위대했기 때문에 위대해 보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상덕부덕上德不德, 최상의 덕은 덕이 있다고 하지 않는다!

 

이런 리더 어디 없을까요? 저분이 없으면 우리 회사는 망한다. 이것은 《도덕경》에서 보면 상덕上德이 아닙니다. 상덕上德은 ‘저분이 없어도 나는 잘할 수 있어’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입니다. 영웅 한 명이 세상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영웅이 우리 가슴속에 존재한다면 더욱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오래전 우리나라 17세 소녀 축구 대표 팀이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고 돌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 감독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성과를 낸 분이었습니다. 그들을 환영하는 환영식에서 사회자가 어느 선수에게 물었습니다. 저 감독님이 얼마나 잘 가르치고 리드했으면 세계 1위가 되었겠는가를 물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녀 선수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저 감독님이 없어도 자신은 1등을 했을 것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비록 웃으면서 한 대답이었지만 소녀들 가슴속에 영웅 한 명씩 들어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저는 그 감독이야말로 노자가 꿈꾸는 훌륭한 리더라고 생각했습니다. 승리를 감독이 아닌 선수들이 했다는 생각을 갖게 해준 것은 정말 위대한 덕을 가진 리더입니다.

 

 

선수들 모두에게 자신감을 갖게 하고 그들의 잠자고 있는 영혼을 깨워낸 그 감독이야말로, 덕을 가지고 있지만 그 덕을 못 느끼게 하기에 진정 덕을 가진 감독이었습니다.

 

덕분입니다. 당신이 없었으면 우린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신은 우리의 은인입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면 그 칭송받는 사람은 노자가 꿈꾸는 최고의 리더가 아닙니다. 덕을 제대로 베풀 줄 알고 나눌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이 베푼 덕을 남에게 알리려 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목적을 가지고 덕을 베푼 사람이 신문에 나고 주변에게 알리고 법석을 떠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조용히 남에게 덕을 베푸는 사람, 이런 분이 진정 노자가 꿈꾸는 상덕의 성인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워놓고 자식이 부모의 덕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면 최상의 부모는 아닙니다. 지가 잘 나서 잘 컸다고 생각하게 한다면 진짜 덕이 있는 부모입니다. 노자는 이런 ‘부덕不德의 덕德’을 말하면서 리더의 종류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덕이 없는 사람 밑에 인仁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강제하고 자신의 간섭을 정당화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그런 것이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랬겠어?

부모가 자식에게, 연인 사이에 자주 나누는 대화입니다. 사랑〔仁〕은 본질을 잃었을 때 집착이 되고 강요가 됩니다.

 

사랑 밑의 하급의 리더십이 정의〔義〕입니다. 정의는 때로는 편견이 되기도 합니다. 자기가 결정한 정의가 때로는 폭력이 되어 상대방을 공격하는 논리가 되기도 합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하기도 하고 살인도 합니다. 비록 정의는 아름다운 가치지만 본질을 잃고 독선이 되었을 때 인류에게 너무나 큰 피해를 줍니다.

 

정의 밑에 하급의 리더십이 예禮입니다. 예는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해주는 형식이지만 그것이 강요가 되고 표준이 되었을 때 무례無禮한 자에 대해 다양한 폭력을 가합니다.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화려한 이념과 규칙에 종속되어 인간이 만든 가치에 인간이 끌려가는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을 맞기도 합니다. 노자는 그런 소외를 걱정하였던 것 같습니다. 소외는 내가 만들어낸 것에게 무시당하거나 종속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신을 창조해 신에게 종속되었고,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으로 만든 차를 마음대로 탈 수 없습니다. 인간이 윤리와 도덕을 만들어내고 그 윤리로부터 소외당할 수 있다는 것이 노자의 생각입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너무 다른 곳으로 나갔습니다. 노자의 덕은 자율을 강조하는 무위無爲의 덕입니다. 억지로 나의 가치를 강요하거나 나의 은혜를 강조하지 않는 진정 아름다운 덕입니다. 그런 덕을 가진 사람은 덕을 베풀지만 그 덕에 발목 잡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온 나라의 국민들이 그 나라 대통령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그 대통령은 정말 덕이 있는 대통령입니다. 내가 온전하게 내 영혼에 의지하며 살 수 있도록 하게 하는 분입니다. 제발 누구 덕분이라는 소리 좀 안 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덕이 있는 사람은 덕을 보이려 하지 않습니다.

 

이제 《도덕경》이 윤리 도덕에 관련된 내용의 책이 아니라는 사실에 모두가 공감하셨을 겁니다. 아울러 노자가 말하는 도道가 어떤 절대적인 진리나 우주의 원리, 또는 관념의 본질이나 종교적 깨달음이 아니라는 것도 눈치채셨을 겁니다.

 

도道의 원래 뜻은 길Path이며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나 원리 정도로 이해하시면 저와 함께 노자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덕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아름다운 배려와 존중의 본성입니다. 덕을 베풀고 나누고 함께하는 세상, 그러나 자신이 베푼 덕을 과시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그런 세상을 노자는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