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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박재희의 <고전의 대문 2> - 박재희

Chapter 2.'노장과 병법' 편 #1 <도덕경> 퇴직자의 인생 성찰

<고전의 대문 2> 노장과 병법 편 #1

<도덕경> 퇴직자의 인생 성찰

노자의 생각을 알려면 《도덕경道德經》을 읽어야 합니다.

 

《도덕경》은 공자의 《논어》와 더불어 중국 철학사의 두 축이었습니다. 유교의 대표적인 책이 《논어》라면 도가의 대표적 사상의 근간은 《도덕경》입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공자와 노자가 어떻게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는지 참으로 라이벌다운 ‘다름’입니다.

 

공화당의 공자와 민주당의 노자, 보수의 공자와 진보의 노자, 중앙집권 체제의 옹호자인 공자와 지방자치제를 주장한 노자, 사회적 절대 가치를 제시한 공자와 개인의 다양한 개별적 가치를 강조한 노자, 규율과 자율의 두 축이기 때문에 지식인이라면 꼭 이 두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다산 정약용도 《도덕경》에 대해 많은 독서를 하였습니다. 정약용은 옳은 것에 대해 물불 안 가리고 돌진하는 자신의 성격을 다스리기 위해서 《도덕경》에 나오는 여유라는 글귀를 넣어 여유당이라고 자신의 당호를 지었습니다. 얼음판을 걷는 코끼리처럼, 사방을 경계하는 원숭이처럼 늘 자신으로 돌아보고 조심스럽게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다산의 저작은 다산이 죽고 난 후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라는 이름으로 발간되었습니다.

 

《도덕경》의 저자가 노자라는 근거는 사마천 《사기열전》에 실려 있습니다.

노자가 《도덕경》을 저술한 내용을 간단히 추려보겠습니다.

초나라 사람이었던 이이는 주나라 수도였던 낙양에서 책을 보관하는 도서관장으로 근무하였다. 노자는 문헌에 대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고 고대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노자의 전공은 도道와 덕德이었다. 도道는 자율과 능동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덕德은 타인과의 관계에서의 배려와 존중이다. 노자의 학문 성향은 자신의 능력을 감추고 명예에 종속당하지 않는 것〔自隱無名〕이었다. 타인의 평가와 환호에 길들여지지 않고 내 영혼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다. 그것은 환호와 명예를 가져본 경험이 있기에 더욱 아름다운 삶의 태도였다. 바보가 바보면 그냥 바보지만, 똑똑한 사람이 그 똑똑함을 숨기고 바보가 되면 그 바보는 위대한 바보다. 노자는 환호와 명예를 소유해보았기에 그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위대한 선택을 한 것이다.

 

이렇게 노자의 철학이 변한 데는 계기가 있었다. 황실 도서관장으로 잘나가던 노자는 어느 날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한다. 주나라 황실이 쇠퇴해 모든 직책을 버리고 떠나게 되었다. 자신의 지위와 자리가 영원하다고 생각했던 착각이 깨진 것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갑작스런 경제 정치적 위기로 갑작스런 명예퇴직, 권고사직을 당한 것이다. 노자는 주나라 천자가 있었던 낙양을 떠나 서쪽으로 간다. 낙양에서 서쪽으로 계속가면 장안長安이 나오는데 그 도중에 함곡관函谷關이라는 국경 수비 도시가 있다. 그곳에 도착한 노자는 책임자였던 윤희尹喜의 요청을 받고 5개월간 머물며 책을 쓰게 되었다.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보며 자신의 철학을 정리해 두 권의 책을 쓰게 되었는데 도道와 덕德에 관련된 내용으로 약 5,000여 자 분량의 책이었다. 그리고 노자는 함곡관을 떠났다. 그리고 아무도 노자가 어디 가서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했다. 이것이 사마천이라는 역사가가 바라본 노자의 전기傳記다.

 

이 기록을 읽다 보면 마지막 문장이 멋있습니다.

 

막지기소종莫知其所終.

 

어느 누구도 노자의 끝〔終〕을

알지〔知〕

못했다〔莫〕.

 

예, 갑자기 노자가 증발해버린 것입니다.

멋있게 자신의 생각을 책 두 권에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린 것이죠.

 

노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심지어 인도로 가서 석가모니가 되었다는 설도 있었습니다. 신선이 되어 200 살을 넘게 살았다는 둥, 저 막고야 산에 가서 신선처럼 피부가 하얀 모습으로 살았다는 둥 말이 많습니다. 노자가 신비화되는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사람이 마지막이 멋있으려면 그 끝을 알려주면 안 됩니다.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

이렇게 해야 신비롭고 멋있게 끝나지요.

무슨 병원 장례식장 몇 호실이라고 알려주고 세상을 끝내면 참 밋밋합니다. 물론 아는 사람이 찾아와 부의금도 내고 조화도 보내겠지만 너무 흔한 종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사람 요즘 어떻게 지낸데?

 

멋지게 퇴직하고 어디 시골에 내려가 있다고 하던데.

참 멋있게 사신 분이었는데. 궁금하네.

 

인생 1막을 잘 사신 분들이라면 페이스북에도 내 생활을 알리지 않는 것이 참 멋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단, 잘 사신 분들이라야 멋있는 것입니다. 그저 그렇게 인생의 1막을 살았다면 장례식장 주소를 잘 알리는 것이 좋습니다. 끝을 알리지 않는 것은 위대한 자가 두는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