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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박재희의 <고전의 대문 2> - 박재희

Chapter 1.박재희의 <고전의 대문 2> '노장과 병법' 편 출간 전 연재

돌아온 <고전의 대문>, 두 번째 대문을 엽니다.

<대학><논어><맹자><중용>이 말하는 의미에서 인생에서 꼭 마주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냈던 박재희 선생님이 '고전의 대문'의 두 번째 대문을 엽니다. 이번에는 <도덕경><장자><손자병법>을 통해 도가와 병가의 뜰로 들어갑니다.

 

 

서문

 

바이칼 호수를 지나며

 

《고전의 대문2》를 탈고하자마자 러시아 연해주로 달려와 시베리아 횡단 열차Trans-Siberian Railway에 올랐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된 횡단 열차는 이제 하바롭스크를 지나 울란우데를 거쳐 바이칼 호수의 도시 이르쿠츠크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7월 한여름 더위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가을바람에 가까운 신선한 바람이 차창 틈 사이로 연신 들어옵니다. 이제 기차 창문에는 더 이상 자작나무 숲은 보이지 않고 침엽수들만 울창하게 무리지어 스쳐갑니다. 환경에 따라 나무들도 자신들이 살고 싶은 곳으로 이사하여 사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저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식당 칸에서 《고전의 대문2》의 서문을 쓰고 있습니다. 식당 칸의 점원은 매일 노트북을 끼고 출근하는 저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TASSAY’ 생수 한 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면 러시아식 감자와 치킨을 내올 것입니다.

 

《고전의 대문1》의 서문을 청나라 황제의 여름 별장이 있는 열하의 내몽고 초원에서 썼다면 이번 책의 서문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에서 쓰고 있습니다. 내몽고 초원에 피어 있는 수천만 송이의 꽃들이 서로 자기만의 향기와 빛깔로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화엄華嚴의 철학이 《고전의 대문1》을 썼을 때 생각이라면, 세상에는 참 다양한 인종과 문화와 생각이 공존하고 있으며 누구도 어떤 기준으로 세상을 마음대로 재단하거나 분류할 수 없다는 무하유無何有의 철학이 이번 《고전의 대문2》의 생각입니다.

 

제 인생에서 지난 20여 년은 참 많은 사람과 기업과 조직을 만난 세월이었습니다. 동양철학이라는 비주류 공부를 선택하였고, 그 덕택에 보따리를 들고 바람처럼 떠도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한곳에 머물 공간은 없었지만 덕분에 바람처럼 세상을 다닐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돌이켜보면 그런 세월이 없었다면 저는 제 공간에서 벽을 쌓고 제 생각에 갇혀 이 다양하고 위대한 세상을 모르는 채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유한 성城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지킬 의무도 이유도 없다는 것입니다. 울타리 칠 곳이 없다는 현실에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조상님과 하늘에게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저에게 바람처럼 살 수 있는 위대한 선물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기차 오른쪽 창에 갑자기 바이칼 호수가 끝도 없이 펼쳐집니다. 바다처럼 끝도 없는 호수는 바닥이 보일 만큼 맑은 물입니다. 저 멀리 희미하게 육지의 모습만 안 보인다면 밀려오는 호숫가 파도와 함께 바다와 구별이 안 될 정도입니다. 빛바랜 목재를 덧대어 지은 집들이 즐비한 호숫가 마을 마당에는 겨울용 땔감들이 예쁘게 줄지어 쌓여 있고, 집집마다 텃밭에는 감자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습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아낙은 밭을 일구고 있고, 강아지는 그 옆을 꼬리를 치며 따라다닙니다.

 

아! 바로 이곳이 그 어떠한 무엇도 없는 장자가 말하는 무하유無何有의 세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비교도, 경쟁도, 우열도, 차별도, 분별도 없는 세상, 인간들이 줄기차게 꿈꾸어왔던 그런 세상 말입니다.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붕鵬새가 가려고 했던 남명南冥이라는 바다가 바로 이곳 바이칼 호수가 아닐까요? 노자가 《도덕경》에서 살고 싶어 하던 유토피아의 구절이 떠오릅니다. 그 구절을 한번 되는 대로 읊어 보겠습니다.

저에게는 살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땅은 작고 사람들은 적은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문명의 기계가 있어도 그 기계에 종속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곳, 사람들의 목숨을 소중히 생각해주는 곳, 자주 이사 다닐 필요가 없는 곳 말입니다. 배와 수레가 있어도 그것을 탈 바쁜 일이 없고, 방어할 무기가 있더라도 그것을 쓸 필요가 없고, 간단한 문자로 의사소통하여 지식이 권력이 되지 않는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지금 내가 즐기는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즐겁다고 생각되는 그런 곳 말입니다. 가까운 곳에 이웃 마을이 있어도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할 필요가 없는 그런 한가한 세상을 꿈꿉니다.

 

_노자, <도덕경>

이 구절을 외워 쓰고 보니까 원문하고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도덕경》 80장에 나오는 구절을 읊어보았습니다. 이번 책에서 노자의 《도덕경》과 《장자》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제 원래 전공이 도가道家 철학이라 함부로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제가 잘 모르는 것이면 용감하게 마음대로 쓸 수 있는데, 제가 잘 알고 있는 것이라 함부로 글을 쓰기가 힘들었습니다. 귀신을 그리기는 쉽고 오히려 누구나 아는 개를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말처럼, 잘 알고 있는 것은 쉽게 써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학문으로 공부했던 노장老莊의 모습과 이번 책에서 풀어낸 노장의 내용은 완전히 달라져 있습니다. 고전 원문 해석의 관점이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으로 고전을 보는 안목이 조금은 생긴 것 같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노장을 제 전공이 아닌 제 삶으로 이전하여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같아 행복합니다.

 

《손자병법》은 제 인생을 크게 바꾸어놓은 책입니다. 도가 철학으로 밥 먹고 살기 힘들 때 우연히 EBS 교육 방송에서 《손자병법》 특강을 44회 한 이유로 많은 기업과 조직에 가서 강의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기업들이 도가 철학보다는 《손자병법》이 더 절실하게 필요했나 봅니다. 하늘이 사람을 내릴 때는 반드시 먹고살 것은 주어서 내보내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제 앞가림을 넘어 옆가림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바람처럼 마음대로 떠돌 수 있는 배짱도 생겼습니다. 모두가 《손자병법》을 지은 손무孫武 선배 덕분입니다. 저는 《손자병법》에 관한 책을 쓰고 강의하면서 이 책을 왜 ‘The Art of The War’라는 영어 제목으로 번역했는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손자병법》에서 바라본 전쟁은 기술Skill이 아니라 일종의 예술Art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을 지키려고 싸우는 것입니다. 전쟁은 병력과 무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소명 의식, 사랑, 절실함으로 하는 것이란 새로운 관점이 《손자병법》에 담겨 있습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온전한 승리, 전승全勝이 장군 손무의 꿈이었습니다. 내 부하를 죽이고, 상대방 가슴에 못을 박고, 내 주변을 아프게 하여 이긴 승리는 승리가 아니라는 손자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책이 《손자병법》입니다. 싸움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 미래의 경쟁 철학이 될 것임을 확신해봅니다.

 

이제 바이칼 호수의 끝을 지나 이르쿠츠크로 기차는 돌아 올라갑니다. 제가 이 열차를 타서 이 호수를 보지 않고 서문을 썼다면 전혀 다른 느낌의 글이 나왔을 것입니다. 많이 보고 만나는 것이 참 중요한 공부임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깁니다.

 

이 책의 제목을 ‘고전의 대문2’로 하자는 것은 참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원래 소설을 제외하고 고전에서 2편은 잘 안 팔립니다. 그래도 김영사 출판사에서 잘 팔리는 책보다는 잘 만든 책을 지향한다고 양해해주어서 ‘고전의 대문2’를 제목으로 결정하였습니다.

 

1편이 사서四書를 중심으로 유교의 뜰로 들어가는 대문이라면, 2편은 《도덕경》과 《장자》, 《손자병법》을 통해 도가와 병가兵家의 뜰로 들어가는 대문입니다. 이참에 《고전의 대문3》도 꿈꾸어 봅니다. 문짝이 꼭 두 개일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저 넓게 펼쳐진 푸른 바이칼 호수를 보면서 바람처럼 사는 인생을 다시 한번 다짐해봅니다. 지금 내가 공부하고 있는 곳이 교실이며,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곳이 서재이며, 지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이 내 도반道伴이라는 바람의 철학 말입니다.

 

지금 제가 여기서 이 글을 쓸 수 있게 해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낳아주신 부모님, 나를 지지해준 형님과 가족들, 제 소리를 알아주는 지음知音, 제 주변에서 제 삶을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시는 분들, 저와 함께 선뜻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오르신 울산 도반들, 책을 만들어준 출판사와 편집자 등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인생은 바람〔望〕을 갖고 바람〔風〕처럼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인생입니다. 젊은이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2017년 7월 6일 정오 바이칼 호수를 지나며 석천石泉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