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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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조선반역실록> - 박영규

Chapter 8.#8 매에 못 이겨 터져 나온 허균의 죄상

허균의 죄상은 김윤황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압슬형을 가해도 흉서와 무관함을 주장하던 김윤황이 결국 계속되는 가혹한 형신을 견디지 못하고 자복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정월 18일 초저녁에 허균이 군기시 다리에 들러서 흉격을 직접 주며 말하기를 ‘네가 이 화살을 가지고 있다가 경운궁 안에 두되 마치 밖에서 쏘아 넣은 것처럼 하라’ 하였습니다.

 

그 뒤 19일 입번하던 날 밤에 던져 넣고 20일 아침에 주워서 바쳤습니다.

 

당초 화살을 받을 때에 허균이 다른 곡절은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하인준 역시 뼈가 부서지는 압슬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허균이 모든 일을 벌였다는 내용을 이렇게 고했다.

 

“올해 정월에 황정필이 반 폭짜리 백지에 주홍색으로 쓴 익명서의 언서(한글로 된 글)를 가지고 왔는데, 그 글의 내용은 대략 ‘이이첨·김개·허균 등이 반역을 모의하여 사람을 많이 죽이고 주상으로 하여금 나쁜 짓을 하게 하니, 이제 신령스런 병력이 크게 일어나 이이첨 이하 하인준·민심·황정필 등을 죽일 것이다. 앞으로라도 조금 대론을 늦추면 화를 면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글에 ‘신장神將(신령스런 장군)’이라고 쓰고 그 아래에 서명을 하였으니 일이 남대문 흉서와 어찌 같지 않습니까? 그때 이 흉서를 함께 본 자는 임징지, 민심, 이훤이었습니다. 그들이 본 후에 몰래 신에게 보여주었는데 신은 그것을 본 후에 머리를 저으며 나갔습니다. 그중의 사설은 이에 그칠 뿐만이 아닌데 잊어버려서 다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

 

허균이 이 흉서를 짓고 아울러 자기 이름을 써넣은 것은 이 흉서로 도성의 백성들을 두렵게 만들고, 자기 이름을 이이첨의 줄에다가 섞어 씀으로써 보는 자로 하여금 저의 소행이라고 의심하지 않게 하여 자취를 없애고 사람을 속여 흉계를 이루고는 자기는 빠져나가려는 속셈이었습니다. 황정필이 스스로 자기 이름을 쓴 것도 허균이 스스로 자기 이름을 쓴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민심은 또한 이 일을 알지도 못했는데이름이 글 안에 섞여 들어갔습니다.

 

대개 흉서는 허균이 만든 것이요, 자획은 현응민의 필적인 듯합니다. 방을 붙인 사람은 현응민이나 황정필인 듯한데 어떻게 확실히 알 수 있겠습니까? 붉은 글씨로 쓴 언서는 황정필 자신이 알 것입니다. 정필은 허균과 체결했기 때문에 지난 정시 때와 올 회시 초장에서 허균이 글을 지어주었습니다.

 

만약 신을 흉격에 동참했다고 여기신다면 매우 억울합니다.”

 

김윤황과 하인준은 모두 허균이 흉서를 짓고 그 수하들로 하여금 베끼게 하여 곳곳에 퍼뜨렸다고 실토했다. 허균이 더 이상 빠져나갈 방도는 없게 된 것이다.

 

허균을 꼼짝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의 수하로 지목된 황정필의 자백이 필요했다. 황정필에게 심하게 매질을 하고 국문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금년 정월에 서소문 밖에서 새벽에 일어나 소변을 보러 문을 나오다가 붉은 글씨로 쓴 작은 종이를 보았습니다.

 

열어보니 한문으로 신의 이름이 쓰여 있었고 그 아래에 언문으로 쓰기를 ‘너와 하인준·민심·김상하·정흔이 5부에 있는 유생들을 독촉해서 관학의 대론(폐모론)에 대한 소에 동참하게 하였다. 만약 끝까지 이렇게 한다면 네 부모의 분묘에 말뚝을 박고, 네가 사는 집에 불을 지를 것이며, 네가 고향에 내려갈 적에 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활을 쏠 것이다. 하인준과 민심·정흔 및 명사들에게도 이러한 뜻을 고하고 예조판서에게도 말하라. 지금 만약 그만두지 않으면 너는 죽어도 죄가 남을 것이다. 허균이 대론을 위하여 관학의 유생들을 몰아대고 5부의 유생들을 위협하는데 옛날에도 이와 같은 때가 있었는가’ 하였습니다.

 

그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이 익명서를 이훤과 하인준에게 보여주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필시 우리가 대론을 위하는 것을 미워하여서 이런 글을 지었을 것이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니, 이훤 등이 말하기를 ‘모른 체하고 그대로 대론을 위하는 것이 가하다. 이 흉서를 어찌 상달할 수 있겠는가? 즉시 불에 던져버려야 한다’ 하였으므로 마침내 불에 태워버렸습니다.

 

그 후 하인준이 관학의 장의掌議(성균관 학생회장)가 되었는데 신이 어떤 일로 그를 욕보이자 신을 몹시 미워하였습니다. 남대문의 흉방과 허균의 흉모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황정필에게서 남대문 흉서 사건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자, 이번에는 허균의 첩 추섬을 잡아다 형벌을 가했다. 거의 초주검이 된 추섬의 입에서 이런 말들을 얻어내 공초문에 올렸다.

 

“경운궁의 흉격과 흉서, 남대문의 흉방은 허균이 모두 스스로 한 짓입니다. 흉역스러운 일은 현응민과 함께 모의했고, 방을 붙인 사람은 응민이 항상 왕래하였으니 이 사람이 반드시 하였을 것입니다. 추대하려던 곡절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의창군을 사람들이 추대하고자 한다’라고 매양 말했는데, 현응민과 장응기 등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허균이 역모를 꾸민 지 이제 3년이 되었는데 밤에 소리를 쳐서 도성 중 사람들을 다 나가게 한 뒤의 그 계획은 반드시 까닭이 있었을 터인데 그 모의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승군僧軍과 포수를 이끌고 8월을 기한으로 삼았으며 거사는 15일로 정했다고 하였습니다. 추대하는 사람은 모두 허균의 일족으로 아랫사람인 허실·허부·허채 및 허채의 형인데, 허채의 형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물론 매를 이기지 못하고 추관들이 부르는 대로 말한 내용임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