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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조선반역실록> - 박영규

Chapter 7.#7 일파만파로 번지는 흉서 사건

흉서 사건이 일어난 뒤, 신하들 사이에선 범인에 대한 논란이 자자했다. 그런 가운데 1617년 2월 1일에 행사용 민인길이 이런 상소를 올렸다.

 

“신이 오늘 아침에 별장 別將의 직소에 있었는데, 학관 이원형이 와서 신을 보고는 말하기를 ‘이번의 이 흉격을 이재영이 지은 일을 교산이 영공令公에게 말하였는데, 영공이 여러 집들에 전하였다고 어떤 사람이 나에게 말하였다. 영공은 그 사실을 알고 있는가?’ 하기에, 신이 답하기를 ‘그 말을 비록 듣지 못하였으나, 이미 그런 말이 있다면 너는 어느 곳에서 그 말을 들었는가?’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원형이 말이 나온 곳을 말하지 않고 다만 말하기를 ‘나에게 말해준 사람에게 다시 물어서 말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이 말을 듣고서는 심신이 놀라서 안정할 수가 없어서 곧바로 이원형의 집으로 뒤쫓아가서 누가 말하였는지를 묻자, 또 명확히 말하지 않으면서 ‘오늘 저녁에 그곳에 가서 상세히 들어보고서 다시 통보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이 말을 듣고서는 이어 생각하기를 흉격을 지은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이에 일각도 입 다물고 있을 수가 없어서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이 상소문에 나오는 교산은 곧 허균의 호였다.

 

민인길의 상소에 따르면 흉서를 지은 자는 이재영이고, 그 말을 허균이 민인길에게 전했고, 민인길이 여러 집에 그 내용을 알렸다는 것이며, 그 말을 자신에게한 사람은 학관 이원형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다음 날엔 훈련도정 성우길이 상소를 올려 민인길의 상소에 반박했다.

 

“정월 26일에 신이 문창부원군 유희분을 만나보니, 유희분이 신에게 말하기를 ‘이번의 이 흉격을 이재영이 지었다는 설을, 민인길이 허균의 집에서 듣고서 그와 친한 사람에게 전하였다고 한다. 이재영 역시 혈기가 있는 사람인데, 그가 어찌 이처럼 패역스러운 말을 얽어서 임금을 욕하기를 한결같이 이렇게까지 할 리가 있겠는가? 그대는 이재영과 친척이니 모름지기 번거롭게 여기지 말고 상세히 물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이재영을 불러서 그 곡절을 물어보자, 이재영이 깜짝 놀라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나를 모함하는 말에 불과하다. 마땅히 이원형을 시켜서 가서 민인길을 만나보고 말을 만들어낸 자를 상세히 캐내어 와서 알려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신은 이재영이 와서 알려주기를 기다려서 사유를 갖추어 상달하고자 하였습니다. 지금 듣건대 민인길이 이원형이 와서 물어본 일로 상소를 올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반드시 이재영이 신의 말을 듣고서 이원형을 시켜서 가서 물어보았기 때문에 상소를 올린 것으로, 황공함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이에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이렇듯 두 사람의 상소에 모두 허균의 이름이 거명되자, 허균이 상소를 올려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오늘 새벽에 민인길이 신에게 와서 말하기를 ‘어제 이원형이 와서 말하기를 「이번의 이 흉격은 이재영이 지었는데, 그것을 교산이 듣고 서 영공에게 말하자, 영공이 명가名家에 말하였다고 하는데, 그것을 알고 있는가?」 하기에, 내가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삼촌 조카사위인 유충립이 와서 말하기를 「이 일을 기수발이 삼촌인 문창부원군 유희분의 집에서 말하였으니 형세상 감추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이에 내가 이원형이 먼저 고할까 염려되어 즉시 어제 저녁에 상소를 올렸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이 말을 듣고는 몹시 놀라워서 그 까닭을 헤아릴 수 없었는데, 이 말이 기수발을 통해서 발단되었으니 말이 나온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신은 이 일에 대해서 전혀 들어보지 못하였고 또한 민인길에게도 말한 적이 없으니, 그 말이 허망하다는 것을 곧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신하로서 이런 말을 들었다면 급히 상달하여야 마땅하지, 어찌 말을 민인길에게 전하고는 곧바로 진달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민인길의 상소에서 이른바 교산이라 한 것은 바로 신의 별호입니다. 신은 이미 그 상소 안에 이름이 들어 있기에, 불가불 그 곡절을 진달드려서, 그 말이 근거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이쯤 되자 광해군의 처남인 문창부원군 유희분도 그냥 있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역시 상소를 올려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신의 삼촌 조카 유충립이 신을 찾아와서 말하기를 ‘나의 처삼촌 아재비 민인길이 일찍이 허균의 집에 출입하면서 이번의 흉격은 이재영이 지었다고 들었다고 하였다’하기에, 신이 꾸짖으면서 말하기를 ‘이재영은 죄를 깨끗이 씻어주는 성대 聖代의 은혜를 외람되이 입어서 과거에 급제해 벼슬까지 하였다. 그러니 성상께서 그에게 무슨 저버린 일이 있어서, 감히 이러한 흉역스런 글을 지어서 임금을 욕하며

역적모의를 하였겠는가’ 하였습니다.

 

이달 27일에 신이 도감의 제조로서 호위하는 곳에서 직숙하였는데, 신과 사돈 관계가 되는 대장 성우길이 신을 찾아왔습니다. 이에 신이 성우길에게 묻기를 ‘일찍이 듣건대 대장은 이재영과 친척 관계라고 하는데, 그런가?’ 하자, 성우길이 말하기를 ‘과연 친척 관계에 있으며, 또한 서로 잘 알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전에 들은 말을 가지고 성우길을 설득하며 말하기를 ‘이재영 역시 혈기가 있는 사람인데, 그가 어찌 차마 이런 흉역스럽고 부도한 글을 지어서 임금을 욕하기를 이처럼 심하게 하였겠는가? 이 글을 지은 역적을 적발해내지 않을 수 없으니, 영공이 한번 이재영을 불러서 비밀히 물어보면서 그의 기색을 살펴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성우길 역시 놀라면서 그러겠다고 하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뒤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전해 듣건대, 민인길이 상소를 올려 자신에 대해 해명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신은 그 사이의 곡절을 잘 알고 있기에 번거롭게 아룀을 피하지 않고 감히 이렇게 다 진달드립니다.”

 

한편, 허균의 상소에 거명된 기수발 역시 그냥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기수발은 기자헌의 조카였다. 그 역시 상소를 올려 자신을 변명하였다.

 

“이번에 민인길이 상소를 올려 진달드린 일로 인하여 허균이 신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말하기를 ‘기수발이 문창부원군 유희분에게 말하였다’고 하였는데, 유희분이 만약 신에게서 그 말을 들었다면 그의 차자에서 반드시 신의 이름을 거명하여 증거로 삼았을 것으로, 신이 비록 가리고자 하더라도 가릴 수 있겠습니까? 신이 이러한 말을 하지 않았는데 허균이 만들어내었음을 여기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신은 나이 어린 사람으로서 일찍이 한 번도 유희분과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허균이 말을 조작하기를 이렇게까지 하였으니, 교묘하고도 참혹합니다.”

 

이렇듯 기수발은 모든 것이 허균이 조작한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리고 유희분의 상소에서 거명된 유충립이 상소를 올려 자신을 변명하였는데, 그 상소문 속에 허균이 흉서를 짓고 의금부검상 이정원이 흉격을 짓는 것을 보았다는 말이 있었다. 이 때문에 이정원이 격분하여 상소를 올렸다.

 

이 모든 상소문들은 허균이 흉서를 만들었다고 지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허균은 광해군의 신임을 받고 있는 신하였다. 그래서 쉽사리 상소를 올린 자들을 불러 국문할 수가 없었다.

 

또 이와 관련하여 1617년 3월 9일의 기사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이 당시에 이이첨, 박승종, 유희분 세 집안이 모두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은 권세를 끼고 각자 도당을 세워 서로 알력이 있었는데, 이이첨이 폐모론을 주도하면서부터는 기세가 몹시 치성하여 유희분과 박승종이 대적할 수가 없었다. 이이첨이 허균을 사주하여 화살에 묶어서 격문을 쏘아 넣은 데 미쳐서는, 격문 안의 말이 몹시 흉패스러워서 심지어는 ‘얼자가 외람되이 왕위에 올랐으며, 아버지를 독살하고 어머니를 잡아가두었으며, 형을 죽이고 동생을 죽였다’는 등의 말이 있기까지 하였다. 영상 기자헌이 이에 대한 단서를 발하고 민인길 등이 서로 이어서 고변하여, 왕이 허균이 한 짓임을 알았다. 그러나 이 일을 계기로 하여 대비를 폐하는 일을 성사시키고자 해서 내버려 둔 채 불문에 붙였다. 그러나 박승종과 유희분 등이 몹시 몰아붙여 이이첨의 처지가 크게 궁색하게 되었다. 이에 감언이설로 유희분과 박승종을 꾀어 동맹을 맺어서 대북大北(이이첨의 당파), 중북中北(정창연鄭昌衍의 당파), 소북小北(유희분·박승종의 당파)을 균등하게 등용하기로 약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