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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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조선반역실록> - 박영규

Chapter 6.#6 의금부 옥에서 일어난 의문의 죽음

1617년(광해군 9년) 5월 19일 아침, 의금부 옥에 갇혀 있던 신점이란 자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말도 잘하고 밥도 잘 먹던 자였다. 거기다 아직 젊고 체격이 건장하여 병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는데, 갑자기 죽은 것이다.

 

신점은 그 해 1월에 발견된 흉서 사건에 연루된 자였다. 당시 흉서가 처음 발견된 곳은 궁궐 내약방 동쪽 뜰이었다. 그 흉서의 내용 중엔 광해군을 비방하고 헐뜯는 말이 많았는데, ‘서자로 외람되이 왕위에 올랐으며, 아비를 죽이고 형을 죽였다’는 말도 적혀 있었다.

 

당시 같은 내용의 격문이 화살에 매달린 채 인목대비가 유폐되어 있던 경운궁(서궁, 덕수궁)에도 날아들었고, 영의정 기자헌과 판의금부사 박승종의 집에도 날아들었다. 그 때문에 기자헌과 박승종이 광해군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이번의 이 흉서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지혜로운 자가 아니더라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말을 얽어서 성상께 욕을 끼침에 있어서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니, 그 사악하고 화를 즐기며 나라에 일을 만들어낸 정상이 갖가지여서 가리기가 어렵습니다.

 

글은 비록 교묘하지만 더더욱 그 속마음을 볼 수 있는바, 그 이름을 감춘 자를 잡아내어서 토막으로 저미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이들 두 사람이 이토록 분노한 것은 그 격문의 내용 중에 ‘유씨를 협박하고 박씨를 몰아치고 기씨를 강제한다’는 구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한 유씨는 광해군의 처남 유희분을 가리키는 것이고, 박씨와 기씨는 곧 그들을 가리키는 것인데, 흉서엔 그해 1월 28일에 병력을 일으킨다고 했으니, 그들 세 사람을 반역의 동조자로 끌어들인다는 뜻이었다.

 

이에 대해 기자헌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가을에 신의 집에서도 이와 같이 화살에 매어 쏘아 넣은 일이 있었는데, 이것은 신 한 사람만 지적하였기에 익명서라 치부하고서 내버려두었습니다.

 

지금 삼가 화살에 매어진 글을 보니, 그 말이 흉악하고 참혹하여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이것이 참말이라면 그가어찌하여 드러내놓고 위에 아뢰지 않고서 이와 같이 익명으로 하겠습니까?

 

신이 지난번에 헌의獻議하면서 이른바 ‘그의 뜻으로 말하자면 차마 아뢰지 못하겠다’고 한 것이 바로 이러한 일을 두고 한 말입니다.

 

 

무릇 드러내놓고 고하는 경우에도 사실이 아닌 경우가 오히려 많은데, 더구나 이런 익명서이겠습니까? 신과 관련해서는 흉서에 ‘기씨를 강제한다[勒奇]’고 하였는바, 이것은 신을 모함하고자 하다가 성공치 못하자, 이에 감히 이와 같은 일을 한 것입니다.

 

신은 감히 의논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또 박승종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의 이 흉서는 말이 아주 흉악하고 참혹하여서 반도 채 읽기 전에 간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인심이 이와 같으니 무슨 짓인들 하지 못하겠습니까?

 

그 가운데 ‘구박 驅朴’ 두 자가 있는데, 비록 어떤 사람을 두고 한 말인지 모르겠으나, 상신相臣이 이미 ‘늑기勒奇’라는 말이 있다는 이유로 감히 헌의하지 못하였는바, 생각건대 흉인이 반드시 신을모함하고자 해서 이 말을 한 것입니다. 신 역시 감히 의논드리지 못하

겠습니다.”

 

 

그리고 유희분은 뒤늦게 입궐하여 이런 말을 하였다.

 

 

신은 늦게야 경운궁의 뜰에 격문을 화살에 묶어 투서한 변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신의 성 역시 흉서에서 얽어 넣은 가운데 들어 있다고

합니다. 신은 두렵고 떨려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합니다. 전문을 보지못하여 날조한 것이 어떠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간사한역적이 성을 거론하면서 모함하려 하였으니, 신하의 의리에 있어서 결단코 얼굴을 들고 반열에 나아가기를 보통 사람과 같이 해서는 안 되고, 마땅히 답답함을 하소연하면서 체직시켜주기를 청하고는 즉시 떠났어야만 합니다.

 

다만 생각건대 조용히 조섭하고 계신 중이어서 번거롭게 아뢰기가 두려워 며칠 동안 머뭇거리면서 감히 외람스럽게 진달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대신이 이로 인하여 서둘러 물러가고 뭇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이 유독 어떤 사람이라고 완연히 움직이지 않으면서, 위로는 청명한 조정에 수치를 끼치고 아래로는 자신의 죄를 중하게 하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어리석은 신의 위태롭고 절박한 정을 곡진히 살피시어 속히 신을 체직시키도록 명하여서, 시골로 돌아가 엎드려 있으면서 여생을 보전할 수 있게 해주소서.”

 

당시 광해군은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바로 대비전에 쏘아 넣어 먼저 거사하는 뜻을 고하려고 하다가 미치지 못하여서 발각된 것이다. 경에게 있어서는 조금도 간여된 사실이 없으니 안심하고 사직하지 말라.

 

다만 이미 모함하기를 도모한 간사한 역적이 누구인지를 알았으면 곧장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하여서 나라에 일을 만들어낸 죄를 바루는 것이 마땅하다.

광해군이 범인을 색출할 것을 명령하자, 2월 12일에 유학 손활과 박문근이 고변하길 자신의 친척인 신점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금부가 신점을 잡아들여 국문하였는데, 국문 과정에서 매를 친 일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옥에서 죽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도승지 한찬남이 신점의 사망 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금부도사 민진원을 추궁하였다. 그랬더니 옥졸의 탓으로 돌렸다. 그래서 옥졸을 추궁하였으나 역시 죽은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신점이 죽던 날에 그를 고변한 박문근이 의금부에 들어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박문근이 잡혀오고, 박문근을 의금부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한 서리 마응룡이 잡혀와 국문을 당하였다.

 

하지만 신점의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결국, 흉서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