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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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조선반역실록> - 박영규

Chapter 4.#4 이방원, 어머니 강씨와의 관계가 틀어지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조선 개국 이후 급격히 악화되었다.

그 원인은 당연히 세자 책봉 문제 때문이었다. 방원은 자신이 개국에 공이 많고 강씨와 관계도 좋았으므로 은근히 세자에 책봉될 것으로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자 자리는 강씨의 아들 방석에게 돌아갔고, 방원은 찬밥 신세가 되었다. 그럼에도 방원은 자신의 서운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강씨에게 그 내면을 들키면 야심을 드러내기도 전에 제거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방원은 오히려 조정에 철저히 협조하는 태도를 취했다. 심지어 명나라 황제 주원장이 이성계의 친아들을 입조시키라고 했을 때, 방원은 주저하지 않고 명나라로 떠났다. 당시 명나라를 다녀오는 일은 몹시 고달프고 힘든 일이었다. 혹 성질 사납고 무식한 주원장의 심기를 잘못 건드리면 볼모로 붙잡히거나 곤욕을 치를 수도 있는 그런 길이었다. 그럼에도 방원은 거부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성계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런 말을 하였다.

너의 체질이 파리하고 허약해서 만 리의 먼 길을 탈 없이 다녀올 수

있겠느냐?

이방원이 명나라에 입조하기 위해 떠난 것은 1394년 6월 7일이었다.

 

그리고 돌아온 것은 5개월 뒤인 11월 19일이었다. 음력 6월 초면 아직 더운 여름이었고, 음력 11월이면 겨울이었다. 여름에 떠나 가을을 넘기고 겨울에 이르러 5개월 12일 동안의 긴 여정을 견디고 돌아온 것이다.

 

사실 이방원이 명나라로 떠날 무렵, 현비 강씨는 자주 앓아누웠다. 강씨가 처음으로 병이 들어 누운 때는 1393년 2월이었다. 그리고 또 다시 이 병이 도진 것은 1395년 7월이었다. 말하자면 방원이 명나라에

서 돌아온 이듬해에 다시 발병한 셈인데, 이번에는 병증이 제법 깊었다. 강씨의 병은 조금씩 깊어져 1396년 6월에 이르면 거동하기 힘든 상태가 된다.

 

그래서 의원들로 하여금 치료에 전념하게 하는 한편, 승려들이 궁궐로 들어와 현비의 건강을 위해 기도를 올리는 일이 잦아졌고, 소격전에서도 초제를 거행하고, 옥에 갇힌 죄수들도 석방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비의 병은 점점 깊어져 더 이상 궁궐에서 지낼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내시부 판사 이덕분의 집으로 거처를 옮겨 병구완을 했지만, 그녀는 일어나지 못하고 그해 8월 13일에 생을 마감했다.

 

현비 강씨의 죽음은 이방원이 야심을 펼치는 데 큰 장애물이 하나 없어진 것과 진배없었다. 세자 방석은 아직까지 정치를 펼치기엔 어린 열여섯 살에 불과했고, 방번 또한 열일곱 살이었다.

 

그렇듯 아직은 소년에 불과한 그들에게 현비라는 든든한 배경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 그들에 비하면 방원은 서른한 살의 장년이었고,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야심가였다. 더구나 부왕 이성계도 환갑이 넘은 노인이었고, 현비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곧잘 앓아눕는 처지였다.

 

용상을 탐내고 있던 이방원이 기회를 엿보기에 좋은 조건이 무르익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