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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조선반역실록> - 박영규

Chapter 2.#2 이방원은 정몽주를 꼭 죽여야만 했을까?

이방원이 반역의 길로 들어선 것은 정몽주를 격살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당시 정몽주는 이성계 일파를 일거에 조정에서 몰아내고 낙마로 인해 몸져누운 이성계를 정조준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방원은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적 정몽주를 죽였다. 그것도 수하들을 이용하여 암살을 감행했던 것이다.

 

 

 

 

당시 정몽주는 휘하로 있던 성헌을 통해 유배지로 떠난 조준과 정도전의 목을 베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고 있었는데, 이성계가 이를 알고 차남 이방과와 아우 이화, 사위 이제, 휘하에 있던 황희석과 조규 등을 궁궐에 보내 저지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공양왕이 이성계의 뜻을 받아주지 않고 있었다.

 

이방원은 이 문제로 이성계에게 이렇게 물었다.

지금 몽주 등이 사람을 보내어 도전 등을 국문하면서 그 일을 우리 집안에 연관시키고자 하니, 사세가 이미 급한데 장차 어찌 해야 하겠습니까?

그 말에 이성계는 죽고 사는 문제는 다 명이 있는 것이니 순리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 방원에게는 어머니 산소에 있는 여막으로 돌아가라고 명했다. 당시 이방원은 친모의 삼년상을 위해

무덤가에 여막을 짓고 기거하던 중이었다. 방원은 이성계 곁에 있으면서 병간호를 하길 원했으나 이성계는 거듭 여막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이성계는 이방원의 성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냥 두면 필시 무슨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막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던 것이다. 또한 공양왕이 설마 군대를 틀어쥐고 있는 자신을 공격하지는 못할 것이며, 정몽주 또한 감히 그런 짓을 하지 못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이방원은 정몽주를 빨리 죽이지 않으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여막으로 돌아가라는 아비의 명을 거부하고 둘째형 방과, 숙부 이화, 매제 이제, 이두란 등에게 정몽주를 쳐야겠다는 말을 하였다. 하지만 이두란은 이성계 몰래 그런 일을 벌일 수 없다며 거절했다. 그러자 이방원은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께서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지만, 몽주는 죽이지 않을 수 없으니, 내가 마땅히 그 허물을 책임지겠습니다.

그러고는 휘하의 조영규를 불러 정몽주를 암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조영규, 조영무, 고여, 이부 등이 도평의사사에 들어가서 정몽주를 죽이기로 하였는데, 변중량이 그 계획을 누설하는 바람에 성

공하지 못했다. 이후 정몽주는 오히려 이성계를 병문안하였다. 이성계의 자식과 수하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도 태연히 이성계를 찾아온 것이다. 정몽주는 나름대로 이성계의 건강 상태를 알아보

고, 다음 계획을 진행할 요량이었다.

 

정몽주가 병문안을 오자, 이성계의 이복동생 이화가 이방원을 불러 말했다.

몽주를 죽이려면 이때가 기회다.

그 말에 이방원은 정몽주가 집으로 돌아가는 노상에서 습격하여 죽이기로 계획했다. 그래서 정몽주의 집 동리 입구에 조영규와 수하들을 숨어 있게 하고 자신은 말을 타고 왔다 갔다 하면서 정몽주의 동선을 살폈다. 그리고 정몽주가 집을 향해 가자, 동리 입구에 기다리고 있던 조영규의 무리가 말을 타고 가던 정몽주를 쳤다. 조영규가 먼저 철퇴로 정몽주를 내려쳤으나 정몽주는 피하면서 채찍을 휘두르며 말을 달렸다. 조영규가 그 뒤를 쫓아가며 말머리를 철퇴로 내려치자, 정몽주가 땅에 떨어졌다가 급히 일어나 달려가니, 고여 등이 뒤를 쫓아가서 처참하게 살해하였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였다는 소식을 접한 이성계는 매우 격노하며 소리쳤다.

 

우리 집안은 본디 충효로써 세상에 알려졌는데, 너희들이 마음대로

대신을 죽였으니, 나라 사람들이 내가 이 일을 몰랐다고 여기겠는가?

부모가 자식에게 경서를 가르친 것은 그 자식이 충성하고 효도하기를

원한 것인데, 네가 감히 불효한 짓을 이렇게 하니 내가 사약을 마시고

죽고 싶은 심정이다.

이에 이방원은 이렇게 대꾸했다.

 

몽주 등이 장차 우리 집을 모함하려고 하는데, 어찌 앉아서 망하기

를 기다리는 것이 맞겠습니까? 몽주를 살해한 것이 곧 효도입니다.

《조선왕조실록》 태조 편 총서에 실린 이 대화는 이성계가 명분을 중시하면서 행동이 신중한 반면, 이방원은 매우 현실적이고 급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알려주고 있다. 사실 당시 상황에서 정몽주를 쳐야 한다는 점에선 이성계나 이방원의 의견은 차이가 없었지만, 제거 방법에 있어선 의견이 달랐다. 이성계는 정몽주를 제거하더라도 조정을 통하여 명분을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이방원은 정몽주를 일단 죽여야

만 조정을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상황을 헤아려보자면 조정엔 이성계가 마땅히 움직일 만한 인물이 없었고, 공양왕 또한 정몽주를 편들고 있었다. 따라서 이성계의 방법은 통하지 않는 상태였다. 말하자면 이방원의 판단이 더 주효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꼭 정몽주를 죽이기까지 했어야만 했을까?

수하들로 하여금 사로잡게 하고, 정몽주를 살려둔 채 조정을 장악할 순 없었던 것일까?

 

어차피 고려의 무장 세력은 모두 이성계 휘하에 있었다. 따라서 군대를 움직인다면 조정을 장악하는 것이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이성계는 말로 해결되지 않을 때는 무력을 움직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

것은 정몽주를 죽인 직후에 바로 조정을 장악하고, 공양왕을 무너뜨린 사실만 봐도 확인된다.

 

하지만 이방원은 정몽주를 무참하게 살해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이방원의 타고난 성향이라고 봐야 한다. 이방원은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자는 반드시 죽인다. 그것이 이방원의 방식인 셈이다. 따라서 정몽주를 무참히 살해한 이방원의 행동은 그의 권력투쟁의 방식이 할 수 있다. 자신에게 적이라고 판단되면 그 대상이 누구든 가차 없이 목숨을 끊어버리는 것, 그것만이 자신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