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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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조선반역실록> - 박영규

Chapter 1.#1 아비의 역적이 되어 용상을 차지한 이방원

정도전

 

 

1398년 8월 26일 밤,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이 역적이란 오명을 쓰고 목숨을 잃었다. 이어 조선의 첫 세자 방석이 살해되었고, 방석의 친형 방번도 살해되었다. 또한 방석과 방번의 매형 이제도 목이 달아났다.

그들의 목숨을 앗아간 이는 정몽주를 살해하여 조선 건국에 지대한 공을 세웠던 이방원이었다.

 

하지만 병상에 누워 있던 이성계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가 겨우 병상에서 정신을 차린 것은 변고가 발생한 날로부터 6일이나 지난 뒤였다. 그때 조선은 이미 이방원의 세상이 되어 있었다. 목숨을 잃은 신하 몇 명을 제외하고는 조정 대신들이 모두 이방원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성계가 공양왕의 신하들을 빼앗고 공양왕의 용상을 탈취했듯이, 이방원도 아비에게 물려받은 반역의 기질로 아비를 배신하고 아비의 신하들을 죽였으며 아비의 나라를 앗아갔다.

 

 

태조 이성계

 

그런 현실 앞에서 이성계가 할 수 있는 일은 왕위를 내주는 일뿐이었다. 이성계가 누워 있는 동안 방원은 둘째형 방과를 세자로 세워놓았고, 이성계는 그저 병상에 누운 채로 선위 교지를 내려 왕위를 넘겨야 했다. 그가 왕위를 내놓겠다는데도 어느 한 놈 만류하는 신하도 없었다. 왕위를 넘겨받는 방과 역시 아비의 퇴위를 당연하게 여기고 선위 교서를 받아 품속에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신하와 자식을 보면서 이성계의 뇌리엔 자신이 내쫓은 우왕과 창왕, 그리고 공양왕의 얼굴들이 되살아났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반역의 괴수가 자식 놈이니 그들처럼 목숨을 잃을 운명은 아니란 점이었다.

 

하지만 이성계는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는 감옥 같은 궁궐을 떠나고자 했지만 방원은 혹 아비가 무슨 일을 도모할지 모른다는 의심 때문에 궁궐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이미 아비의 역적이 된 방원은 아비가 다시 자신을 향해 칼날을 세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비를 구중궁궐에 가둬놓은 방원은 하루 빨리 왕위를 넘겨 받기 위해 측근들을 앞세워 둘째형 방과를 압박하고 있었다. 비록 적자 중 장자가 왕위를 이어야 한다는 명분을 세우기 위해 왕위를 방과에게 맡겨놓긴 했으나 무슨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방원의 야심을 읽어낸 넷째형 방간이 느닷없이 군대를 일으켰다. 지난번이 이복형제 간의 싸움이었다면 이번에는 동복형제 간의 전쟁이었다. 하지만 용상 앞에서 이복과 동복을 가릴 방원이 아니었다. 방원과 방간은 개성 한복판에서 시가전을 벌였다. 물론 싸움의 결과는 세력이 훨씬 강했던 방원의 승리였다. 나머지 형제들도 모두 방원의 편을 들었다. 방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방원은 이제 더 이상 눈치 볼 이유가 없었다. 그는 곧장 세자의 자리에 올라 직접 조정을 지휘하였고, 이내 왕위까지 넘겨받았다. 용상에 대한 집념 때문에 저지른 아비 이성계에 대한 반역은 1400년 11월에 그가 용상을 거머쥐면서 완성되었다.

그렇다면 이방원은 왜 아비의 역적이 되어야만 했던가?

그 반역 행로의 첫걸음이 된 정몽주 살해로부터 왕위에 오른 1400년 11월 11일까지의 그의 행적을 살피면서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