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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악마의 증명> - 도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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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악마의 증명> #6. 하지만 이미 게임은 끝났다.

 

 

 

하지만 이미 게임은 끝났다.

나는 바로 다음날 재판부의 직권보석결정으로 석방되었고,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당연한 수순이다. 형사재판에서 유죄로 하려면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 필요하다.

무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고, 그 의심에 합리성이 있다면 유죄로 할 수 없다. 말하자면 ‘피고인이 유죄라는 점에 상식적으로 의심이 있을 수 없다’라는 수준까지 충분한 증거가 갖추어졌을 때에 비

로소 유죄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굳이 수치로 표현한다면 90% 이상? 그런데 내 사건의 경우에는 합리적인 의심을 잠재울 만큼의 입증이 절대 불가능하다.

 

 

CCTV 화면, 흉기, 옷가지는 형과 나 둘 중의 하나가 범행을 했다는 증거로는 충분하다. 그런데 그 중 누구인지는 말해 줄 수 없다. 형과 나의 범행 당일 알리바이는 둘 다 불분명하다. 그 시간에 우리 둘 중 누구 한 명을 다른 곳에서 보았다는 증언이 결코 나올 수 없는 날짜와 시간이었다. 옷은 번갈아 입는 것이었고, 흉기에는 두 사람의 지문이 다 찍혀 있다. 결정적으로 형과 나는 얼굴을 공유하고 있다.

CCTV는 얼굴을 비춰줌으로써 범행의 강력한 증거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강력한 의심의 증거가 되어 주었다. 이 모든 증거를 모아봤댔자 기껏해야 범인은 형과 나 둘 중의 하나라는, 50% 확률의 입증에 불과하

다. 검찰이 형과 나를 공범으로 기소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CCTV에 실제 실행자는 남자 1인인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집에 있던 나머지 한 명을 억지 공범으로 만들어 기소할 수는 없는 일이다. 형을 위증으로 기소하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둘 중 누가 범행을 실행했는지 특정 할 수 없기에 위증도 입증할 수 없다. 더구나 형은 내 범행을 사전에 알지 못했기에 사실 위증도 아니다.

 

 

 

 

돈만 훔치려던 거였다.

하지만 예기치 못하게 여자를 칼로 찔러 살해한데다가 CCTV에 얼굴까지 찍혀버렸다. 체포는 시간 문제였다. 그날 밤 고민하던 나는 내가 가진 조건, 즉 쌍둥이 형이 존재한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고 이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다음날 형에게 모든 사정을 이야기하고, 잠시 몸을 숨겼다가 나중에 법정에 나와서 증언하도록 시켰다. 구치소로 찾아온 국선변호사에게는 범행을 부인할 것과 쌍둥이 형을 증인으로 부를 것 두 가지만 얘기해놓으면 충분했다. 나는 경찰에서 자백하면서도 구체적인 진술을 최대한 피했다. 현장 검증 시에도 응하는 척 시늉만 하면서 실제 범행과는 살짝 어긋나도록 했다.

즉, ‘범인만이 알 수 있는 요소’를 절대로 드러내지 않도록 주의했다.

 

내가 일치감치 자백했던 것도 수사를 부실하게 만들기 위한 안배였다. 완벽한 증거물에 피고인의 자백까지 있으니, 수사기관은 방심하게 된다. 사실 더 수사했더라도 나올 것은 없다고 자신했지만, 매사에 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 만약 처음부터 쌍둥이 형의 존재를 수사기관에 알리면서 내가 하지 않았다고 범행을 부인하였다면, 검찰은 둘 중 누가 범행했는지를 밝혀내려 온갖 방법을 동원했을 거다. 하지만 내 자백으로 그 기회를 완전히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 자백조차도 법정에서 부인하였기에 고마운 형사소송법의 은혜로 아무런 증거가치가 없게 되었다.

보석으로 석방된 후, 검찰은 내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를 추가로 수집하기 위해 애를 쓰는 듯했다. 하지만 한 차례 더 진행된 공판에서 별 다른 증거가 나올 수 없었고, 나는 줄곧 ‘내가 범행을 하지 않았다. 그

날은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잠을 잤다.’는 진술만 하면 되었다. 검찰은 최후에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요구했지만 우리는 단호히 거부했다.

 

기소 후 2달 만에 결국 나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례적으로 항소하지 않았고, 그로써 무죄판결은 확정되었다.

그제야 나는 홀로 자축의 술잔을 들었다. 이제는 진실을 기록하여도 괜찮은 때가 되었다. 일사부재리 원칙 덕분이다. 범죄행위에 대하여 한 번 재판을 하였으면 결과가 옳든 그르든 사건은 종결되고, 두 번 다시

재판할 수 없다. 내가 설사 범행을 만천하에 고백한다 해도 더 이상 이 사건으로 절대 재판도 처벌도 받지 않는 면죄부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 남은 대학시절 전공인 법학공부에 충실해 무사히 졸업하는 일이 남았을 뿐이다. (연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