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김영사가 기획한 특별한 즐거움.
책과 함께하는 재미가 가득합니다.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악마의 증명> - 도진기

  • 다른회 보기
  • 1
  • 2
  • 3
  • 4
  • 5
  • 6

Chapter 5.<악마의 증명> #5. 확률은 반반입니다.

나는 오랜만에 내 쌍둥이 형을 보니 반가웠다.

하지만 증언대에 선 형을 곁눈질로 흘긋 보았을 뿐 인사를 하지는 않았다.

 

법정의 혼란이 다소 정리되기를 기다려 재판장은 절차를 속개했다.

형에게 위증의 벌을 알리고 증인선서를 시키는 동안 호연정 검사는 앞으로의 전개를 예감한 듯 역력히 낭패의 기색을 띄우고 있었다. 김기욱 변호사는 곧장 증인신문에 돌입했다.

 

“증인과 피고인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제가 증인의 형입니다.”

“쌍둥이 입니까?”

“네, 일란성입니다.”

 

“증인의 직업은?”

“대학 휴학 중이고, 아르바이트로 번역 일을 가져다 주로 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김정자 씨를 아십니까?”

“전혀 알지 못합니다.”

“사건이 있었던 당일, 그러니까 11월 4일 저녁에는 뭐하셨습니까?”

“집에서 번역 일을 좀 하다가 저녁부터 일찍 잠이 들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증인이 피해자를 죽인 게 아닌가요?”

방청석이 이번에는 크게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재판장은 완전히 증인에게 몰두해버린 듯 소란을 제지하지 않았다.

“아닙니다.”

 

 

 

 

김기욱 변호사는 형에게 CCTV 사진을 보여주면서 물었다.

“현재 검찰의 가장 중요한 증거인 CCTV 사진에 당신의 얼굴이 찍

혀있습니다. 당신이 찌른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따지면 동생도 저와 얼굴이 같지 않습니까.”

“그러면 동생이 했나요?”

“그건 알 수 없습니다.”

“동생이 사건당일 어딜 갔다 왔는지 모르십니까?”

“저녁부터 일찍 잠이 들어서 잘 모릅니다. 나갔다 왔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이 화면에 찍힌 옷은 누구의 것입니까?”

“그 옷은 저와 동생이 같이 번갈아 입는 것입니다. 쌍둥이라서 체형이 같으니까요. 옷을 따로따로 사서 입을 형편도 안 되고요.”

 

그림7

김기욱 변호사는 범행에 사용된 과도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칼은 범행에 쓰인 흉기입니다. 이 칼에 대해서 아십니까?”

“저희 집에서 과일 깎을 때 쓰는 칼입니다.”

“이 칼에서 당신의 지문이 나왔습니다.”

“당연하지요. 저희 형제가 집에서 늘 쓰던 거니까요. 동생의 지문도 있을 겁니다.”

“증인의 동생은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증인이 살한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동생이 한 건지 아닌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저는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이 CCTV에 찍한 사람이 동생인지 증인인 지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글쎄요, 실제로 주위 친한 사람들조차 저희 형제를 헷갈려 하는데,

저 정도 화면만 가지고 구별할 수는 없겠지요.”

“수고하셨습니다. 증인신문을 마치겠습니다.”

 

 

 

 

호연정 검사는 즉시 반대신문에 나섰지만, 형에게서는 같은 대답이 반복될 뿐이었다.

내가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에 찍힌 것은 내가 아닙니다. 옷과 칼은 동생과 내가 공유하는 것입니다. 사건 당일에는 일찍 잠들었고, 동생이 그 날 나갔다 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호연정 검사는 무기력하게 자리에 앉았고, 대조적으로 김기욱 변호사는 의기양양하게 변론에 나섰다.

“피고인은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은 그 날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일찍 잠들었습니다. 증인으로 나온 피고인 형인 박 성씨도 피고인과 똑같이 그 날 외출을 않고 집에서 일찍 잠들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결국 알리바이가 없는 것은 두 사람 다 같습니다. CCTV에 나온 사진이나 옷, 범행에 쓰인 칼을 보면 둘 중의 하나가 범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둘 중 누구입니까?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 구분해 낼 수 있습니까? 박철과 박성 두 사람에게 놓인 혐의의 양과 질은 똑같습니다. 칼에는 두 사람의 지문이 모두 있습니다. 옷은 형제가 번갈아 입는 것입니다. CCTV에 범인의 얼굴이 찍혔지만, 그 사람은 피고인일 수도 있고 피고인의 형일 수도 있습니다.

 

 

즉 살인은, 피고인이 했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형인 박성 씨가 했을 수도 있지만 그 역시 아닐 수도 있습니다. 수학적으로만 말하면 확률은 반반입니다. 50%의 확률입니다. 피고인이 유죄일 확률은 50%이지만 무죄일 확률 또한 50%입니다. 절반의 확률, 절반의 증명으로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하여 살인죄로 처단할 수는 없습니다. 재판은 제비뽑기가 아니니까요. 만약 피고인의 형이 진범이라면 지금 구금되어 있는 피고인은 또 한 명의 피해자가 되는 것입니다.” 호연정 검사가 마침내 벌떡 일어서서 항의조로 말했다.

“하지만 피고인은 경찰과 검찰에서 다 자백했지 않습니까?”

“그것은 형이 범행을 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형을 보호하기 위해 죄를 뒤집어 쓴 것입니다. 재판과정에서 겁이 났고, 뒤늦게 진실을 밝히기로 한 것입니다. 지금 피고인은 법정에서 검찰 자백을 부인했습니

다. 따라서 그 자백은 이제 증거능력이 없어졌습니다.”

호연정 검사는 허탈한 표정으로 망연히 서 있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입증을 하겠다며 재판의 속행을 요청했고, 다음 공판은 3주 뒤로 잡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