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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악마의 증명> - 도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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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악마의 증명> #1. 내 인생의 화두는 늘 돈이었다.

 

 

“피고인, 검찰에서 다 자백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지 않았습니다.”

“피고인은 범행을 부인하는 것입니까?”

“네, 수사기관에서 자백은 했지만 그건 본의 아니게 거짓말한 것입니다.

피고인의 범행이 아닙니다. 피고인은 당일 사건현장에 가지도 않았습니다.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일찍 잤다고 합니다.”

p.22

 

 

 

 

의정부는 오랜만이었다. 서울 남쪽 끄트머리 봉천동 일대에서 주로 생활하는 나로서는 친구를 만나러 북 서울 경계선을 넘어 의정부까지 나선 것은 작은 여행이라 할만 했다. 오랜만에 낯선 동네에서 늘어지게 마시고 싶었다. 의정부하면 역시 부대찌개다. 존슨탕 대짜를 시켜놓고 한참 소주를 걸치는데, 친구 녀석의 휴대전화가 부르르 울렸고, 녀석은 급한 일이 있다며 일어서버렸다. 나와의 만남보다 급하지 않은 일이란 많지 않을 테니 굳이 묻지는 않았다. 대신 미안해하는 녀석에게 택시비가 없다며 3만원을 빌려 바지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아마 당분간은 안 보게 될 것 같다. 알딸딸해진 상태로 거리를 걷다가 서울 택시를 발견하고 잡아탔다.

 

택시가 지나는 길가에는 ‘의정부 부대찌개’라고 떡 하니 써붙여놓은 간판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큼지막한 글씨 앞에는 저마다 원조, 참맛, 손맛 따위의 문구를 갖다붙여 놓았다. 의정부 부대찌개라는 포기할

수 없는 브랜드를 살리다보니 나머지 식당상호만으로는 헷갈려서 이 집이나 저집이나 다 비슷해보였다. 그럼에도 하필 ‘그’ 식당이 눈에 띈 것은 마침 앞 쪽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택시가 잠시 정차했다는 우연 때문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차창 밖을 내다보았더니, 한적한 도로 가에 부대찌개 식당 하나가 눈에 띄었다. 어둡고 황량한 도로 가에서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 식당건물 한 채가 달랑 서 있었는데, 어둠속에 홀로 불이 켜진 간판이 마치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때마침 간판 불이 꺼졌고, 그게 시선을 더 끌었다. 이어 식당 홀의 불도 차례로 꺼졌다. 누군가가 불을 끄면서 나오는 모양이다. 잠시 후 가게 문이 열리면서 50대로 보이는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른 손에

는 자그마한 손가방이 들려 있었다. 여자는 품에서 주섬주섬 열쇠를 꺼내더니 식당 문을 잠갔다.

 

 

 

 

돈 냄새가 확 풍겼다.

여자는 식당 주인일 것이다. 영업을 마치고 종업원을 내보낸 다음 남아서 문단속을 하고는 매상이 든 돈 가방을 들고 귀가하는 길이리라. 장사가 잘 되는 식당은 가끔 현찰을 선불로 받거나 카드를 받지 않기도 한다. 저 식당도 그 중의 하나일지 모른다. 그래서 저렇게 현찰가방이 두둑한 것이다.

식당 문을 잠근 여자는 식당 옆 공터로 걸어가 카렌스에 올라탔다. 가로등 불빛에 검게 빛나던 카렌스는 잠깐 그르렁 대더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종업원이 혼자 카렌스로 출퇴근할리는 없다. 역시 여자는 주인이 틀림없다. 이건 쉽다. 한눈에 알아보았다. 나름대로 범죄의 관록이라면 관록이 붙은 나다. 식당건물은 꽤 컸고, 하루치 매상도 상당할 터였다. 그건 무엇보다 불룩한 돈 가방이 확실히 말해주고 있다. 주인 여자는 혼자 남아 문단속을 한 다음 그 날 매상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돈 가방을 들고 귀가한다.

부대찌개 집에서 수표가 오갈 리 없다. 따라서 그 가방에는 꼬리표 달린 수표가 아닌 알토란 같은 지폐다발만이 한 가득이다. 시계를 보았다. 10시 반. 인적은 없었다. 이날과 같은 우발적인 교통사고만 아니라

면 원래 이 시간대에 막히는 도로는 아닌 듯 했고, 여자가 잠그고 나온 식당 문은 길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 차를 정차해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지나칠 수밖에 없는 사각지대 안이었다.

교통사고 처리가 마무리되었는지 정체가 풀렸다. 택시는 주행을 시작했지만 내 머리는 이미 돈 가방 탈취 계획으로 분주해져 있었다.

 

내 인생의 화두는 늘 돈이었다.

 

 

 

 

부모도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형과 나는 엘리시움 보육원-예전엔 고아원이라고 했지만-에서 자랐다. 원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시설에 있을 수 있지만,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형과 같이 보육원을 나와서 고학을 했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는 건 힘들었지만 그게 더 마음이 편했다. 여기서 아르바이트란 불법적인 것도 포함된다. 유흥업소의 웨이터라든지 하는 정도가 아니라 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절도와 사기 같은 것에도 발을 담갔고, 그것에 익숙해질수록 생활비와 월세 조달은 쉬워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내친 김에 대학까지 입학해버렸다.

 

그럭저럭 학교성적은 좋았다. 대학에 와서는 잠깐 생각이 흔들렸다. 단지 손쉽다는 이유로 어두운 길을 전전하며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추상 도덕이 반복 주입되는 곳이 대학이었다. 책, 강의, 친구 모두 ‘이타’를 이야기했다. 정의란 무엇인가, 올바른 사회, 더불어 사는 길 따위를 주제로.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길가 돌멩이보다 숱하던 그 약삭빠른 인간들은 다 어디 간 거지? 내가 모르는 새 다른 사회로 워프한 건가? 아니면 내가 대학에 진학할 즈음 인간종이 전격 개량되기라도 한 건가?

그럴 리는 없다. 거룩한 ‘말씀’에 잠깐 현혹되었지만 난 이내 깨달았다. 그들은 사라진 게 아니었다. 세련되어진 것일 뿐이었다. 탐욕스런 이빨을 드러내는 대신 ‘올바른 척’을 하면서 평판을 유지하는 쪽이 잇속을 챙기기에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체득한 것이었다. 그들의 도덕은 자신의 다짐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희망이었다. ‘남이 바르게(혹은 어수룩하게) 살아주면 내 인생이 편하겠다.’는 바람의 집합체에 불과했다. 그들은 내심이야 어떻든 훌륭한 말씀만 코끝에 내걸면 그 비슷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세상이치를 뒷길에서 굴러먹은 나보다도 훨씬 빨리 깨우치고 있었다.

 

졌다. 인간들아. 유복한, 아니 하다못해 평균적인 인생에서는 그것이 맞는 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도 세상도 버린 내가 왜 도덕을 지켜야 하는지, 왜 그래야 ‘사회’가 아닌 ‘내’가 행복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왜 ‘모두가’ 아니라 ‘내가’ 도덕을 지켜야 하는가.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질문이 틀린 것이다. 결론이 정해진 답을 억지로 만들려해서는 안 되었다. 형이상학의 구덩이에서 나는 기어나왔다. 남의 장단에 춤추는 덩달이 될 뻔 했 다.

 

나는 어울리지 않는 방황을 뒤로 하고 다시금 ‘나’만의 인생을 위해 내 안의 ‘악’을 단련시키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