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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헌법의 주어는 무엇인가> - 이국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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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3 헌법의 '저자'로서 헌법을 재해석하다

연재 #3

저자로서 헌법을 다시 해석하다

우리가 우리에게

 

 

2017년 광화문 촛불집회 사진 출처 한국일보

 

헌법 1조는 헌법의 주어이자 저자인 우리 대한국민이 동료 대한국민을 상대로 함께 말하는 두 문장이다. 여기서 헌법의 주어와 상대방이 우리 대한국민이라는 말은 헌법 묵상 또는 헌법 해석에 흥미로운 문제를 야기한다. 이러한 작업은 헌법의 주어인 ‘우리 대한국민’이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선언을 그 스스로 다시 해석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해석 대상인 헌법 1조 안에 해석 주체가 이미 ‘우리 대한국민’으로서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지금 우리가 여기서 헌법 1조를 묵상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특히 관찰자로서가 아니라 참여자로서, 수범자(受範者)로서만이 아니라 입법자(立法者)로서 우리가 우리의 작품인 헌법 1조를 해석하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헌법해석이론 또는 해석학 그 자체에 관한 심오한 토론은 넘어가기로 하자. 단지 결론만을 짧게 언급한다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마치 저자가 자신의 작품을 해석하는 것 같은 이러한 작업은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저자가 복수(複數), 즉 여럿이라는 점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말은 우리 대한국민 자체가 원래 여럿이라는 의미도 되지만, 그보다는 저자인 우리 대한국민이 해석자인 우리 대한국민의 권위를 인정함으로써 스스로 여럿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의미가 더 크다. 이는 해석자인 우리 대한국민이 저자인 우리 대한국민의 권위를 인정함으로써 스스로 여럿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저자인 우리 대한국민과 해석자인 우리 대한국민이 서로의 권위를 인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 대한국민은 헌법 1조라는 텍스트의 권위를 인정하게 된다. 이를 통하여 저자인 우리 대한국민은 자신의 작품인 헌법 1조를 타자의 텍스트, 즉 광장에 남겨진 시민들의 공유된 말로서 객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고, 해석자인 우리 대한국민은 타자의 텍스트인 헌법 1조를 자신의 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우리 대한국민이 저자이자 해석자로서 헌법 1조라는 텍스트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우리 대한국민의 현존이 그의 작품인 헌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대한국민은 누군가에게 헌법을 말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며, 또 누군가로부터 헌법을 듣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헌법을 말함과 헌법을 들음의 연속, 즉 헌법의 제정과 개정, 헌법의 해석과 교육, 헌법의 묵상과 실천을 통하여, 우리 대한국민은 살아있는 헌법 현상이 된다.

 

다만 이상과 같은 헌법해석학(그리고 헌법현상학)이 실제로 통용될 수 있으려면, 헌법 텍스트 자체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헌법 텍스트 자체가 역사의 어느 시점에 고착되어 특정한 저자의 권위만을 인정하거나, 만세불변의 진리에 대한 독점을 선언하거나, 어떤 이유로든 스스로를 신성화하여 해석 자체를 거부한다면, 그러한 헌법에 대한 해석은 지독히도 어렵고 고통스러운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거칠고 독단적인 헌법 텍스트의 언명들을 우회하여 그 헌법의 진정한 저자를 분별해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텍스트인 대한민국 헌법 1조는 어떠한가? 이제는 헌법 텍스트 속으로 들어가서 묵상을 이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