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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헌법의 주어는 무엇인가> - 이국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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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 헌법의 '주어'이자 '저자'로서 읽는 헌법 1조

연재 #1

헌법 1조 묵상하기

대한민국 헌법 1조는 두 문장으로 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멋진 문장이다. 다만 너무 미끈해서 묵상 거리로 삼을만한 실마리가 잘 잡히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이웃 나라 일본의 헌법 1조와 비교해 보자.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그 지위는 주권의 보유자인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초한다.

 

 

무슨 말인가? 입헌군주국이라는 말 같기도 하고, 국민주권주의라는 말 같기도 하고…. 일본 지식인들은 이 문장 앞에서 상징천황제 같은 어려운 용어 해석의 고민을 표현하곤 한다. 이에 비하여 우리 헌법 1조는 참 간명하다. 그래서 처음 읽으면 별다른 감흥 없이 휘이익 읽힌다.

 

그러나 헌법 1조가 멋진 문장이라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인가? 헌법 1조를 초안한 유진오는 이 문장들을 바이마르 헌법 1조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 제국은 공화국이다.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역시 정제된 문장이지만, 역사 속에서 이 문장은 히틀러와 나치의 광기를 다스리는데 무력했다.

패전의 치욕과 함께 인류 앞에 저지른 범죄를 인정하고 뉘우치는 과정을 겪으면서 독일인들은 헌법 1조의 첫 문장을 바꾸었다.

 

인간의 존엄은 침해되지 아니한다.

모든 국가권력은 이를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10조와 유사한 이 문장을 독일인들은 지금도 헌법 1조의 맨 앞에 내걸고 있다.

“인간의 존엄은 침해되지 아니한다.” 는 수동태의 어색한 문장 앞에서 독일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두 번의 패전과 외세의 분할 점령, 분단과 대치와 통일, 그리고 나치의 범죄와 그에 동조한 죄책감으로 점철되었던 자신들의 20세기를 떠올리지 않을까? 바이마르 헌법 1조는 어쩌면 이 사건들 중 대부분이 발생하기 이전에 멋진 문장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기획했던 때의 소박한 기대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번의 패전으로 제국을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세웠다면, 안타깝기는 하지만 아주 실망할 일은 아니라는 안도와 자기위안 같은 것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학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교과서 헌법학은 유진오 이래 헌법 1조를 바이마르 헌법 1조를 읽듯이 해석해 왔다. 1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국가형태를 규정한 것이고, 2항은 국민주권이라는 주권의 형태를 규정한 것이라는 무미건조한 해석이다. 당연한 해석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왠지 대한민국이라는 민주적 헌정국가의 정치적 원점으로서 헌법 1조가 담고 있는 풍부하고도 역동적인 의미가 도무지 드러나지 않는다. 헌정주의의 정신과 원리도 사라지고 헌정사를 수놓은 고통스런 이야기들도 없어져 버린다. 과연 이것은 헌법 1조를 읽는 올바른 방법일까?

 

헌법 묵상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헌법을 시민들의 공유된 말로 정의했다. 따라서 지금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으나 무미건조한 채로 우리 앞에 서 있는 이 두 문장은 바로 그 시민들의 공유된 말로 읽어야 한다. 그래야 이 두 문장에 담긴 깊은 의미가 비로소 살아날 수 있다.

 


 

 

(*헌법은 근본적으로 자유 시민들의 말이다. 자유 시민들이 서로에게 말하고 또 통치자의 말, 즉 법률에 맞서서 말한 말이다. 자유 시민들의 공유된 말, 그것이 바로 헌법이다. 우리는 흔히 헌법이야말로 법의 법이며 최고의 법이라는 말을 듣는다. 이 말은 자유 시민들의 공유된 말이 통치자의 말보다 우월하며 우선한다는 뜻을 함축한다. 자유 시민들의 공유된 말을 헌법에 담는 방식은 다양하기 짝이 없다. 돌비에 새기기도 하고, 의례 속에 감추어 두기도 하고, 신의 뜻으로 고양시켜 두기도 하고, 마음의 습관으로 간직해 두기도 한다. 인간의 문명이 말을 글로 붙잡아 두는 법을 깨닫고 그 글에 물리적 형태를 부여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헌법은 모두가 읽을 수 있는 글이 되었다. 성문헌법! 그러나 비록 문서의 형태일지언정 헌법은 여전히 근본적으로 자유 시민들의 말이다. 자유 시민들이 서로에게 말하고, 또 통치자의 말에 맞서서 말한, 공유된 말이다. _<헌법의 주어는 무엇인가> 1장에서)

 

모든 말은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는 구조 속에서 탄생한다. 따라서 헌법 1조의 두 문장은 무엇보다 그 발화구조 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면 먼저 발화자부터 찾아보자. 누가 이 두 문장을 말하고 있는가?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기나긴 통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을 때 우리는 흔히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낭독하곤 한다. 그러나 방금 중대한 실수가 있었다. 무엇일까?

 

대한민국 헌법은 주어를 가지고 있는 문서이다. 그 주어는 우리 대한민국이 아니다. 헌법은 대한민국이 스스로 말하는 것을 받아 적은 문서가 아니다. 다시 전문을 읽어 보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그렇다. 헌법의 주어는 우리 대한민국이 아니라 우리 대한국민이다. 우리 대한국민이 헌법을 통하여 민주공화국이라는 작품을 만들고 그 이름을 대한민국이라고 붙인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에서 ‘우리’와 ‘대한민국’은 소유격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대한국민에서 ‘우리’와 ‘대한국민’은 동격으로 이어진다. 대한민국을 만든 그 우리의 이름이 바로 대한국민이라는 뜻이다.

 

우리 대한국민이야말로 헌법 1조를 말하는 주체이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헌법 1조의 두 문장을 주어를 밝히 드러내어 읽어야 한다. 이 두 문장을 아래처럼 외치듯이 읽어 보자.

 

 

우리 대한국민이 말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우리 대한국민이 다시 말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우리 대한)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우리 대한)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어떤가? 이 두 문장을 무미건조하게 읽을 때와 다르지 않은가? 무언가 가슴 속에서 꿈틀대며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생기지 않는가? 이처럼 다른 느낌으로 이 두 문장이 다가오는 이유는 명백하다. 우리가 이 두 문장을 ‘우리 대한국민’으로서 읽었기 때문이다. 헌법의 주어이자 저자로서 헌법 1조를 읽었기 때문이다.

 

 

*자료 화면: JTBC 차이나는 클라스 5/14 방영분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