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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호모 데우스> - 유발 하라리

Chapter 13.#13. 데이터를 숭배하라

기술종교는 인간의 욕망과 경험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세계를 예견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욕망과 경험 대신 의미와 권위의 원천이 될까? 현재 역사의 대기실에 앉아 면접을 기다리고 있는 후보는 단 하나, 바로 정보이다.

가장 흥미로운 신흥종교는 데이터교이다.

이 종교는 신도 인간도 우러러보지 않는다.

이 종교는 데이터를 숭배한다.

데이터교는 우주가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현상이나 실체의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이색적인 비주류 개념 같다는 인상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이 개념은 이미 과학계의 대부분을 정복했다.

 

 

 

 

데이터교는 두 과학 조류의 격정적 합류에서 탄생했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때로부터 150년에 걸쳐 생명과학은 유기체를 생화학적 알고리즘으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앨런 튜링이 튜링 기계라는 개념을 창안한 때로부터 80년 동안 컴퓨터 과학자들은 점점 더 정교한 전자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데이터교는 이 둘을 합치면서, 정확히 똑같은 수학적 법칙들이 생화학적 알고리즘과 전자 알고리즘 모두에 적용된다고 지적한다.

 

데이터교는 그렇게 함으로써 동물과 기계의 장벽을 허물고, 결국 전자 알고리즘이 생화학적 알고리즘을 해독해 그것을 뛰어넘을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는 데이터가 지적 활동이라는 긴 사슬의 첫 번째 단계에 불과했다. 인간이 데이터에서 정보를 증류하고, 정보에서 지식을 증류하고, 지식에서 지혜를 증류해야 했다. 하지만 데이터교도들은 인간이 더 이상 막대한 데이터의 흐름을 감당할 수 없고, 따라서 지식과 지혜를 증류하는 것은 고사하고 데이터에서 정보를 증류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데이터를 처리하는 일은 연산능력이 인간의 뇌 용량을 훨씬 능가하는 전자 알고리즘에게 맡겨야 한다. 실질적으로 데이터교도들은 인간의 지식과 지혜를 믿지 않고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더 신뢰한다는 뜻이다.

 

 

 

 

자본주의가 이기고 공산주의가 패한 것은 자본주의가 더 윤리적이어서도, 개인의 자유가 신성해서도, 신이 이교도인 공산주의자들에게 분노해서도 아니었다. 자본주의가 냉전에서 승리한 것은, 적어도 기술 변화가 가속화되는 시대에는 중앙 집중식 데이터 처리보다 분산식 데이터 처리가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20세기 후반의 급변하는 세계에 대처할 수 없었다. 모든 데이터가 하나의 비밀 벙커에 축적되고 모든 중요한 결정이 노쇠한 수뇌부에 의해 이루어질 때, 대량의 핵폭탄을 생산할 수는 있지만

애플이나 위키피디아는 얻지 못할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21세기에 데이터 처리 조건이 다시 바뀌면 민주주의가 몰락하거나 사라질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데이터의 양과 속도가 모두 증가함에 따라 선거, 정당, 의회 같은 훌륭한 제도들이 구시대의 유물이 될지도 모른다. 그 제도들이 비윤리적이어서가 아니라, 데이터를 충분히 효율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제도들은 정치가 기술보다 더 빠르게 움직인 시대에 진화했다.

 

19세기와 20세기의 산업혁명은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아서, 정치인과 유권자들이 항상 한발 앞에서 그 경로를 규제하고 조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치의 리듬이 증기시대 이래로 크게 바뀌지 않은 반면, 기술은 1단에서 4단으로 기어가 전환되었다. 현재 기술혁명은 정치 과정보다 빠르게 움직이면서 의원들과 유권자들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

 

현재 기술은 너무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의회도 독재자들도 미처 다 처리할 수 없는 데이터 앞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따라서 지금의 정치인들은 1세기 전의 정치인들보다 생각의 규모가 훨씬 작다. 그 결과 21세기 초에 정치는 장대한 비전을 잃었다. 정부는 단순히 행정부가 되었다. 정부는 나라를 운영할 뿐 이끌지 못한다. 교사들의 급여가 제때 지급되고 하수도가 넘치지 않게 할 뿐, 20년 뒤 나라가 어디로 갈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다.

 

 

 

 

하지만 권력 공백은 오래가지 않는다. 21세기에 전통적인 정치 구조들이 유의미한 비전을 생산하기에 충분할 만큼 빨리 데이터를 처리하지 못한다면, 새롭고 더 효율적인 구조들이 진화해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그 새로운 구조들은 민주적인 것이든 독재적인 것이든, 이전의 어떤 정치제도와도 다를 것이다.

남은 질문은 누가 이 구조를 만들고 제어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인류가 이 일을 맡지 못 한다면 다른 누군가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