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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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호모 데우스> - 유발 하라리

Chapter 6.#6. 신이 되려는 인간, 브레이크는 없다

2100년에 신들이 거리를 돌아다니지는 않더라도, 호모 사피엔스의 성능을 높이려는 시도가 이번 세기 안에 세상을 몰라볼 정도로 바꿀 것이다.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많은 이들이 유전자 조작 아기나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이 나오려면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연구비와 교수직과 관련된 시간 척도에서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이 하는 ‘아직 멀었다’는 말은 대략 20년 정도를 뜻하고, 기껏해야 50년을 넘지 않는다.

 

우리가 거대한 미지의 세계로 빠르게 돌진하고 있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죽음 뒤에 숨을 수조차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반응은 누군가 브레이크를 밟아 그 속도를 늦춰줄 거라는 바람이다. 하지만 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브레이크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전문가들도 인공지능, 나노기술, 빅데이터, 유전학 중 한 분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뿐,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다시 말해, 흩어져 있는 모든 점을 연결해 완성된 그림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과학의 모든 최신 발견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세계경제가 10년 뒤 어떤 모습일지 예측할 수 있는 사람도, 우리가 이토록 급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아는 사람도 없다. 시스템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으니 멈출 사람도 없다.

 

둘째, 만일 어떻게든 브레이크를 밟는다면, 경제가 무너지고 그와 함께 사회도 무너질 것이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오늘날의 경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무한성장이 필요하다. 만에 하나 성장이 멈춘다면, 경제는 포근한 평형 상태에 안착하는 것이 아니라 추락해서 산산조각 날 것이다. 자본주의가 불멸, 행복, 신성을 추구하라고 우리를 부추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끝나지 않는 프로젝트가 필요한 거라면 우리는 왜 행복과 불멸로 만족하지 않을까? 적어도 초인적 힘을 추구하는 무시무시한 시도를 왜 내려놓지 못하는가? 그것이 나머지 둘과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다리가 마비된 환자들을 다시 걷게 해주는 생체공학 다리를 개발한다면, 같은 기술로 건강한 사람들의 다리 성능도 높일 수 있다. 당신이 노인의 기억상실을 멈추는 방법을 알아내면, 같은 치료로 젊은이의 기억도 향상시킬 수 있다.

 

모든 업그레이드가 처음에는 치료를 이유로 정당화된다. 유전공학 또는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와 관련한 실험을 하는 전문가들을 찾아가 왜 그런 연구를 하는지 물어보라. 십중팔구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데 성공하면 과연 그 기술을 조현병 치료에만 쓸까? 혹시라도 그렇게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뇌와 컴퓨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몰라도 인간 심리와 사회에 대해서는 뭘 모르는 것이다. 획기적인 기술이 일단 생기면 그 기술을 치료 목적에만 한정하고 업그레이드 용도를 전면 금지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전쟁에서 체호프의 법칙을 이탈한 것처럼 다른 분야의 행동에서도 그 법칙을 벗어날 수 있다. 어떤 총은 무대에 등장만 할 뿐 발사되지 않는다. 우리가 인류의 새로운 의제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기술의 용도를 선택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해해 그 일이 우리의 마음을 결정하기 전에 스스로 마음을 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