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김영사가 기획한 특별한 즐거움.
책과 함께하는 재미가 가득합니다.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장욱진, 나는 심플하다 - 최종태

  • 다른회 보기
  • 1
  • 2
  • 3
  • 4

Chapter 4.화가 장욱진 선생 탄생 100주년(3) 그 정신적인 것, 깨달음에로의 길 #2

 

캔버스에는 물감이 최소한도로 발라진다.

 

그 인색함이 회화성의 아주 가장자리까지 다다르고 있다. 화면 구성의 기준선에서는 벌써 떠났다. 그가 늘 그리고 있는 나무는 나무라는 상식을 벌써 떠났다. 모든 것이 상징성으로만 남아 있다. 앞으로 어떻게 갈 것인가. 그러나 장욱진 선생의 숙명은 캔버스에서 떠날 수가 없는 데에 있다. 그러면서 그는 캔버스의 가장자리에서 떠날까 말까 하는 형국으로 앉아 있다. 근년에 않던 술 바람이 찾아왔다. 그림이 안 풀린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몸을 다치고 병상에서 “이제 그림이 좀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 그는 “그림 그린다는 것이 정신과 육체를 소모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런 면에서도 장욱진 선생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 그 긴장감, 그 매력, 그 위트, 그 여유…… 고향산천이 지금 그대로 있는 것처럼 장욱진 선생도 그대로이다.

 

장욱진 선생은 수리적인 계산을 하지 않는다. 상념이 있고 거기에 회화를 접근시키려 한다. 상념은 변화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거기에 따라가지를 못한다. 그림이 그의 상념을 따라잡았는가 했을 때 벌써 그것은 다른 데로 움직여가고 있었다. 또 거기에 접근했는가 했을 때 그의 상념은 다른 데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리하여 장욱진 선생은 계속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사실 반복이라고 볼 수 없다. 그 길을 또 밟아서 한 발자국 다른 세계로 이주하는 것이다. 그는 계속 반복하면서 조금씩 보다 깊은 세계를 향하여 들어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욱진 선생의 그림을 양식의 변화를 통해서 규명하려고 하면 무리가

생길는지도 모른다. 10년쯤 지나고 보면 진행이 보인다. 매일같이 실로 눈에 안 뜨일 만큼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일로 땀을 흘린다.

 

그는 직관을 우선한다. 수리적인 계산이라든지 논증이라든지 하는 문제를 뒷전으로 접어둔다. 직관으로써의 도전이다. 그는 처음부터 뛰어가서 끝 지점에 이르러 그 벽을 1밀리미터 깨고 들어가는 것이다. 온 힘을 가다듬고 총체적으로 몰고 가서 벽에 부딪치고 그 벽을 허물어내는 것이다. 마치 망치로 암벽을 깨어 들어가는 형국과 같다 할까. 그것을 계속 반복한다. 그리하여 10년쯤의 간격을 두고 보면 그가 얼마나 진행하고 있었나 하는 것이 가시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장욱진 선생의 그림을 초기부터 시작해서 한 줄로 늘어놓고 보면 그의 아픈 나날이 역력히 보일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하여 한결같은 일생을 살았다.

 

장욱진 선생의 예술 세계는 선善의 문제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 예술이 종교로부터 떨어져 나올 때 미美가 선으로부터도 분리되었다. 그런 것을 잘 알고 있는 선생이 어찌해서 미와 선을 합치는 고전적인 예술관을 갖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그의 체질과 우선 상관되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옛날의 미학은 동서를 막론하고 미 속에 선이 있고 선 속에는 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믿었다. 근대의 서구 미술은 미 속에서 선을 지워버렸는데, 공도 있지만 과도 있다고 보인다. 장욱진 선생의 그림에는 착한 짐승들, 착한 사람들만 등장하고 있다. 아주 초기의 그림들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관한 맥을 이루고 있다. 옛날에는 순진무구한 사람들의 얼굴이던 것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속이 밝은 얼굴로 변모하고 있다. 밀레도 반 고흐도 좋은 사람을 그리고자 했는데, 그래서 농사하는 사람이 되었고 일하는 촌부가 되었다. 장욱진 선생의 화면에 나타나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법이 없어도 잘 살 사람들이다. 그 표정들을 단순한 필법으로 용케도 찾아 표현한다. 약고 교활하며 어깨에 힘주는 사람들을 그리지 않는다. 지위가 높은 사람, 고민스러운 사람들을 그는 그리지 않는다. 미와 선을 한 통으로 보는 고전적 예술관으로 하여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그가 일생 동안 추구한 삶의 형태, 그 자체이기도 하였다.

 

 

〈아이〉, 캔버스에 유채, 27.5×22cm, 1973

 

나의 제작 과정에 있어서 그리는 행위는 즐겁다.

그러나 정리하여가는 데는 큰 고통이 따르는 법이다.

역설적인 말 같기는 하나 이러한 과정이 나에게 또한

무한히 즐거운 순간순간을 마련해준다.

 

나는 고요와 고독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자기를 한 곳에 몰아세워놓고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아무것도 욕망과 불신과 배타적 감정 등을 대수롭지 않게 하며

괴로움의 눈물을 달콤하게 해주는 마력을 간직한 것이다.

 

회색빛 저녁이 강가에 번진다.

뒷산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강바람이 나의 전신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석양의 정적이 저 멀리 산기슭을 타고 내려와 수면을 쓰다듬기 시작한다.

저 멀리 놀이 지고 머지않아 달이 뜰 것이다.

 

나는 이런 시간의 쓸쓸함을 적막한 자연과 누릴 수 있게 마련해준

미지의 배려에 감사한다.

내일은 마음을 모아 그림을 그려야겠다.

무엇인가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모기장〉, 캔버스에 유채, 21.6×27.5cm, 1956

 

※ 이 포스트에 실린 장욱진 그림의 저작권은 장욱진미술문화재단에 있으며, 재단의 게재 허락을 받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