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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장욱진, 나는 심플하다 - 최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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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화가 장욱진 선생 탄생 100주년(1) 제자 최종태, 장욱진의 40년 이야기를 엮다

 

최종태, <장욱진 선생>, 종이에 파스텔, 1990

 

 

 

장욱진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나는 그 시간을 견디기가 어려워서 파스텔 얼굴 그림을 한 장 그렸다.

_<장욱진, 나는 심플하다>

 

 

 

 

화가 장욱진은 한국 미술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서양화가입니다. 올해는 화가 장욱진이 탄생한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의 그림은 단순하고,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특히 한국적, 민속적 정취가 압축돼있습니다. 살아생전 종종, "나는 심플하다"라고 말했다는 장욱진. 그의 곁 가까이에서 40년의 사귐을 만들어온 제자 최종태 조각가가 1979년부터 최근까지 40년에 걸쳐 쓴 글을 엮었습니다. <장욱진, 나는 심플하다>에서 제자 최종태와 장욱진 선생과의 추억, 사람 장욱진의 면모, 그의 말과 그림을 함께 들여다보시죠.

 

6·25라는 비참한 동족 전쟁은 결과적으로 미국을 비롯해서 세계의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 땅에 몰려오게 하였다. 한반도에서 세계 전쟁이 일어난 것인데 그 여파로 새로운 문물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들어왔다. 세계에 이런 나라가 일찍이 없었다. 따라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발가벗겨진 채로 세계에 노출되었다. 서구의 미술이 한꺼번에 들어오고 있었다. 개화 개방의 물결이 본의 아니게 홍수처럼 몰려와서 어디론가 미지의 곳을 향해서 우리는 가야 했다.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할 것인가. 장욱진, 김종영,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의 예술이 이런 속에서 출현한 것이었다. 해방을 통해서 민족적인 자각이 있었지만 미처 수습할 시간적 여유도 갖지 못한 채 우리는 열린 세계에로 노출되었다. 김환기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형태를 펼치다가 나중에는 형상성을 버리고 점 추상으로 환원되었다. 장욱진은 현대 세계 미술을 다 수용하면서도 원초적인 감성으로 회귀하여 “인간적인 것, 삶”이란 것을 화면에 담았다. 김종영은 결단하고 인체를 버리고 추상미술의 세계를 탐색하면서 공간성과 양성을 근원적 형태로 압축시켰다.

_<장욱진, 나는 심플하다> 97쪽에서

 

 

〈가족도〉, 캔버스에 유채, 7.5×14.8cm, 1972

 

 

〈사찰〉, 캔버스에 유채, 27.2×16.2cm, 1978

 

 

 

장욱진 선생 탄생 100주년에 부쳐

 

내가 이 시대를 살면서 꼭 만나야 할 한 인물이 있었는데 그분이 화가 장욱진 선생이셨다. 마치 지남철에 끌려가듯이 나의 한걸음 한 걸음이 그에게로 맞추어져 있었다. 꿈 많은 젊은 시절에 그를 만났다.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필연이고 숙명이었다. 20세기가 되면서 나라가 망해서 식민지가 되었다가 36년 만에 해방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외래의 문물이 노도와 같이 이 땅에 몰려왔다. 그런 격류의 한복판에 서서 장욱진 선생은 우리의 문화 전통을 극진히도 아끼고 지키며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반만년 이어온 민족의 숨결을 오늘에 되살려 그 결과 가장 한국적인, 가장 민족적인 형상을 만들어냈다. 세상 다 뒤져보아도 장욱진 같은 형태를 창안해낸 사람은 없었다. 아주 예외적인, 미술사에 없는, 그런 그림을 우리가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혼자서 사색하고 본이 없는 길을 혼자서 개척했다. 아무도 발 디디지 않은 참됨의 벌판 길을 그는 혼자서 걸어갔다. 그는 고독할 수밖에 없었다. 외롭다고 말할 수 있는 이웃조차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겨냈다.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확실하게 승리한 사람의 얼굴을!

 

장욱진 선생을 만나서 나는 행복했다. 그와 함께한 날들을 회상하면서 내가 본 대로 내가 느낀 대로 나는 기록했다.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서 여기에 책으로 엮는다. 장욱진, 그는 누구인가. 그의 내면에 숨어 있는 무궁한 이야기를 내 어찌 다 건져내랴. 한마디로 그는 참 멋있는 화가였다.

 

_서문 장욱진 선생을 기억하며, 2017년 봄 최종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