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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지적 호기심을 위한 미스터리 컬렉션> - 맹성렬

Chapter 10.#10 마지막 화 도전받는 첨성대 천문대설

도전받는 첨성대 천문대설

 

우리는 국사 교과서에서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인 7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알려진 국보 31호 첨성대가 현존하는 세계 최고 最古 또는 동양 최고의 천문대라고 배웠다. 이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일관되게 주류 학계에서 인정받아왔던 관점이었다. 그런데 1960년대 중반부터 이런 관점에 대한 반론이 하나둘 제기되기 시작해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격렬한 논쟁이 있었으며, 최근까지 수많은 이설들이 등장했다.

 

첨성대는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소재하며 높이 9.17미터, 밑지름 4.93미터, 윗지름 2.85미터다. 모양은 원통형으로 되어 있고, 30센티미터 높이의 돌 361개 반을 사용하여 기단 위로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그 위에 정자석井字石이 2단으로 짜여 있다. 12단(높이 4.16미터) 되는 곳 위의 13단에서 15단에 이르는 남쪽 허리에 한 변이 1미터인 정사각형 문이 달려 있는데 사다리를 걸었던 자리가 있다. 내부에는 12단까지 흙이 채워져 있다.

 

 

첨성대 (사진: 한국일보)

 

 

현재 주류 학설인 첨성대 천문대설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고대 기록이다. 고려 말인 13세기 중반 승려 일연一然에 의해 저술된 《삼국유사》 제1권 선덕왕 지기삼사조知幾三事條 끝 별기別記에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만들었다”라는 대목이 있다. 여기서 ‘첨성’이란 ‘별을 우러러본다’는 뜻이며 따라서 천문 관측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조선조 15세기 말에 저술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첨성대에서 “천문을 물었다”는 대목이 있어 이 역시 천문대임을 가리킨다고 해석됐다.

 

그런데 왜 천문대설이 도전을 받게 된 것일까? 첨성대 천문대설을 비판하는 학자들은 그 구조가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천문 관측용으로 전혀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내세운다. 첨성대 천문대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말하는 첨성대의 사용법은 이렇다. 별이 총총한 밤에 사다리 등을 이용해 첨성대 중간의 작은 입구로 들어가 내부에서 다시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올라간다. 그리고 비좁은 꼭대기에 관측기구들을 설치하고 별을 관측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위험하고 복잡한 경로를 거쳐 비좁은 곳에 가서 관측을 했어야 하는가? 정말로 그럴 요량이라면, 굳이 속이 빈 내부 공간을 만들지 말고 여러 층의 단을 쌓아 그 상부를 편평하고 넓게 만든 후 외부에 계단을 두어 이를 디디고 올라가 정상에서 관측하는 것이 훨씬 용이하고 합리적이지 않을까? 그리고 만일 그것이 일반적인 천문대로 기능했다면, 그 상부의 정자석 방위가 별 관측에 도움이 되도록 동서남북에 맞추어 정해지는 것이 정상인데 이런 기본적인 요소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도 문제로 부각됐다.

 

소수 견해이기는 하지만 첨성대의 천문대설 중에는 개방형 돔 형태의 천문대라는 주장도 있다. 이에 따르면, 관측자는 입구로 올라간 후 다시 꼭대기까지 올라가지 않고, 아래에 누워 중천을 쳐다보면서 별이 천정을 지나는 남중 시각과 각도를 측정해 춘・추분점과 동・하지점을 예측했다는 것이다. 이런 용도로 건축됐다면 첨성대가 방위 정렬이 되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없다. 이 가설은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천문 관측을 했다는 주류 학설보다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하지만 주류 학설이나 개방형 돔 학설 모두 지나치게 통일신라 시대의 천문학 수준을 과대평가한 것으로 실제 그 정도로 수준 높은 관측이 이루어졌다는 증거는 없다.

 

만일 별과 관련이 있지만 과학적인 천문 관측과 무관하다면 도대체 어떤 식으로 별과 연관된 것일까? 최근 당시 추세로 보아 첨성대를 점성술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8세기경 인도의 개인 점성술이 중국과 일본으로 전파됐다는 증거가 있다. 이보다 조금 이른 시기이기는 하지만 첨성대는 인도로부터 신라로 불교 사상이 전파되면서 함께 전달된 점성술 관련 건축물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별 관측 기능보다는 별과 관련된 상징성에 주목한 주비산경설도 제기됐다. 《주비산경》 은 당시 천문학의 핵심적 문헌이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첨성대가 천문대의 부속 건물이며, 《주비산경》의 수학적 원리와 천문 현상의 숫자를 비로 형상화한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이 가설은 첨성대의 실용성을 논외로 한 것이라 발표 후에 오히려 첨성대의 천문대설을 보완하는 논리를 펴는 데 사용됐다. 즉, 수비적 상징성을 고려해 건축된 천문대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결국 주비산경설은 첨성대의 본질적 기능을 규명하는 것과는 무관한 주변적 가설로 자리 잡게 됐다.

 

별이 아닌 태양과 관련된 첨성대?

 

첨성대가 별을 관측하기 위해 건축됐다는 문헌적 기술에 반하여 태양과 관련이 있다는 가설들도 제기됐다. 이 중 초기에 제기된 규표설은 첨성대가 낮에 해 그림자 길이를 측정하여 시간과 절기의 변화를 읽기 위해 지어졌다는 것이다. 1960년대 중반에 제기된 이 가설은 그 이전까지 특별한 의심없이 첨성대를 별 관측 시설로 여겨왔던 전통적인 믿음을 흔드는 새로운 해석으로,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될 첨성대 논쟁의 전조가 됐다. 그러나 규표설은 새로운 아이디어 차원에서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했을 뿐 어떻게 첨성대 그림자로 시간과 절기를 측정했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결여되어 학자들에게 주목받지 못하고 논의조차 변변히 이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