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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호기심을 위한 미스터리 컬렉션> - 맹성렬

Chapter 9.#9 진화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나뭇잎벌레의 진화

 

◆ 나뭇잎 위에 붙어 있는 나뭇잎벌레의 모습. 나뭇잎과 색상은 물론 잎맥의 모양까지 유사하다. (왼쪽) ◆ 벌레 먹은 나뭇잎의 모습까지 흉내 낸 나뭇잎 벌레의 모습. 최재천은 이런 의태가 놀랍다고 하면서도 다윈 진화론으로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른쪽)

 

 

 

보통 진화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나뭇잎벌레의 진화

 

보호색의 유전 문제와 관련해서는 카멜레온보다는 나뭇잎벌레를 예로 드는 것이 훨씬 나아 보인다. 이 곤충은 정말 나뭇잎과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최재천 교수 (사진 출처: 뉴시스) / 식물 생물학자 라마르크

 

 

 

최재천 교수는 이 벌레에 대해 “솔직히 말해 우리 진화생물학자들은 그동안 은근히 라마르크가 옳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했다. 라마르크의 부활을 부추기는 두 가지 열망은 바로 진화의 속도와 효율성이다…… 만일 그렇다면 나뭇잎 모양을 쏙 빼 닮은 베짱이의 의태, 그저 초록빛에 나뭇잎 모양만 닮은 게 아니라 잎맥은 물론 심지어 벌레 먹은 자국까지 흉내 낸 의태, 거의 의도적으로 보이는 그 기막힌 자연의 조화를 훨씬 더 편안하게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하고 있다. 최재천은 이 벌레를 베짱이의 일종으로 부르고 있는데 사실은 대벌레목 잎벌레과에 속한 곤충이다. 그런데 이 곤충은 다윈 이론에 거스르는 듯한 행태를 보인다. 완벽한 나뭇잎 모양으로 진화한 것이 스스로의 보호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너무나 나뭇잎과 비슷해서 그들은 상대방이 나뭇잎인지 동료인지 분간을 못하고 서로 뜯어먹는다고 한다.

 

최재천 교수가 이 벌레에 대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는 데는 그에게 생물학적인 직관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이 벌레를 보면 자연선택이 아닌 다른 뭔가 오묘한 조화가 있다고 믿고 싶어질 것이다. 하지만 최재천은 정신을 가다듬고 다음과 같이 주류 학자로서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간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이런 현상들을 다윈의 이론으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라마르크의 이론 없이도 충분히 잘 설명하고 있으며, 그중 가장 매력적인 설명은 역시 도킨스로부터 온다. 그는 《불가능의 산을 오르며》 에서 이를 등산에 비유하며 설명한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막힌 적응 현상을 보면서 비판자들은 종종 도대체 어떻게 하루아침에 산기슭에서 산봉우리로 뛰어오를 수 있느냐고 머리를 흔든다. 도킨스의 설명을 우리나라 상황에 맞춰 각색하면, 단번에 평지에서 백두산 정상으로 뛰어오른 게 아니라 비교적 평탄한 비탈로 조금씩 조금씩 오른 것이다. 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 부르는 우리나라의 백두산은 한반도에서 올려다보면 엄청나게 가파르고 높은 산이지만, 중국 쪽에서는 완만한 경사를 따라 하염없이 가다 보면 어느덧 정상에 다다르는 그런 산이다. 다윈의 말대로 아무리 대단한 적응이라도 오랜 세월에 걸쳐 작은 변화들이 축적되어 만들어진다."

 

자, 이제 나뭇잎벌레의 의태를 ‘불가능한 산을 오르는’ 다윈의 진화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이 벌레의 조상은 처음에 어떤 모양이었을까? 이파리를 닮았을까? 아주 우연히? 통계와 확률을 들이대는 다윈 진화론대로 하자면 처음부터 그럴 우연은 없어야 한다. 실제로 대벌레목에 속한 대부분의 곤충들은 이파리 형태가 아니라 나무 막대 형태다. 그래서 나무막대벌레나 걸어 다니는 나무 막대라고 불린다.이파리 형태는 1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도 나뭇잎벌레가 어떤 적절한 시점에서 나무 막대 모양 또는 그와 비슷한 형태에서 이파리 모양으로 진화했다고 볼 근거는 있다. 그렇다면 그 시점은 언제쯤일까? 나뭇잎벌레의 선조 격인 곤충이 4,700만 년 전에 존재했다는 증거가 나왔다. 오늘날의 나뭇잎벌레와 크게 다르지 않다. 더 오래된 증거에 의하면 나뭇잎벌레가 나무 막대 형태의 벌레에서 분기된 시점은 1억 년 이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곤충이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3억 5,000만 년 전인 고생대 데본기로 추정되므로 대벌레목에 속한 곤충이 이때부터 존재했다고 쳐도 약 2억 년에 걸쳐 진화가 이루어진 셈이다. 이 기간 동안 어떻게 나무 막대 비슷한 형태에서 이파리를 꼭 빼 닮은 형태로 진화했을까? '불가능한 산을 오르는’ 모델을 적용하려면 수많은 무작위적 돌연변이를 가정해야 하는데 도킨스식의 접근은 아무래도 무모해 보인다. 무작위로 나뭇잎 비슷한 형태가 되기도 쉽지 않지만, ‘초록빛에 나뭇잎 모양만 닮은 게 아니라 잎맥은 물론 심지어 벌레 먹은 자국까지 흉내 낸 의태’까지 무작위 돌연변이가 일어났다는 주장은 마치 폐차장에 회오리바람이 일더니 부속품이 제대로 갖춰진 차 한 대가 조립됐다는 식의 기적과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