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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호기심을 위한 미스터리 컬렉션> - 맹성렬

Chapter 8.#8 미라가 현대에 가짜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집트 미라들에서 검출된 니코틴과 코카인

 

1992년 독일의 병리학자인 스베틀라나 발라바노바는 방사성 면역 측정법과 기체 색층 분석법/질량 분석법 등을 사용해 독일 뮌헨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기원전 약 1000년부터 기원후 약 400년 사이의 이집트 미라 9개의 머리카락, 피부, 그리고 뼈에 포함된 성분을 조사했다. 그 결과 모든 샘플에서 대마의 환각 성분인 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THC)과 함께 코카인이 검출됐고, 여덟 샘플에서 니코틴이 검출됐다. THC의 검출은 충분히 예기된 것으로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대마나 아편과 같은 마약류가 고대 이집트에서 종교의식이나 의료 목적으로 널리 사용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카인과 니코틴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코카 식물이나 담배 식물은 현재 아프리카 대륙에 자생하고 있지 않다.

도대체 이런 성분을 함유하는 식물을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구해 섭취했다는 말인가?

 

 

페루와 볼리비아 등지에서 자생하는 높이 1~12미터의 상록관목인 코카나무(학명: 에 리스록실론 코카)의 모습 (왼쪽) 남미가 원산지로 2미터 정도의 높이로 자 라는 다년생식물인 재배 담배(학명: 니코티 아나 타바쿰)의 모습 (오른쪽)

 

 

 

그녀는 이 놀라운 사실을 <나투르비센샤프텐>이라는 관련 학술 전문지에 발표했다.

 

관련 연구자들은 그 미라들에서 검출된 코카인과 니코틴이 '에리스록실론 코카'와 '니코티아나 타바쿰'이라는 학명을 갖는 남아메리카 대륙 서식종에서 추출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디디기 2,500년 전에 고대 이집트인들이 어떻게 아메리카 대륙에서 구할 수밖에 없는 물질을 갖고 있었을까 하는 문제는 그 후로 학자들 간의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됐다.

 

현대에 만들어진 가짜 미라?

 

한편 분석은 제대로 됐으나 그 미라들이 최근 조작된 가짜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로잘리 데이비드는 그 미라들이 고대 이집트인의 시신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근대 또는 현대의 시신으로 만들어진 가짜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이 경우 담배나 코카인을 애용했던 사람들이 미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데이비드는 18세기 이집트 룩소르의 미라 밀매상들이 돈벌이 목적으로 만들어 낸 미라들일 가능성에 주목했다. 실제로 서구에 이집트 열풍이 불자 이집트 전역에서 미라들과 그 밖의 유물들이 품귀 현상을 빚었다. 따라서 그 당시 현대 이집트인들의 시신을 재료로 다량의 가짜 미라들이 ‘생산’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분석에 사용된 뮌헨박물관의 미라들이 바로 이런 것들이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이 문제가 제기되자 이제 불똥은 뮌헨박물관으로까지 튀었다.

 

그 박물관이 소장한 미라들이 모두 가짜란 말인가?

코카인과 니코틴 성분 검출은 그런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미라들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을 마약을 복용하고 중독에 빠졌던 무연고 부랑자들의 시신으로 만들어졌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미라들은 모두 탄소동위원소법을 통해 그 연대가 정해진 것들이었다. 오늘날 고고학에서 이 방법은 아주 광범위하게 적용되어 매우 중요한 ‘과학적’ 기법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중차대한 사안이면 이 기법에 대한 의심도 불가피하다. 실제로 탄소동위원소법은 종종 큰 오차를보이곤 한다.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미라가 어느 고분에서 나왔고 누구에 의해 언제 발굴됐는가 하는 등의 출처를 중시한다. 또 미라 제작 기법에 얼마나 전문성이 발휘됐나 하는 점도 철저히 따진다.

 

로잘리 데이비드는 뮌헨박물관 미라들에 관해 정리된 카탈로그를 조사해보고서 대체로 출처가 불명확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박물관 측에서는 미라들을 입수한 후로 미라들에 동반된 새김글이나 부적, 미라 제작 기법에 관한 전문적인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모두 고대 이집트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데이비드는 박물관에서 발행한 관련 논문 및 책자들을 자세히 읽어보고서 처음 품었던 의심을 걷어내고 그것들이 진품이라는 잠정적 결론에 도달했고, 이렇게 논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됐다.

 

공고해지는 증거들

 

자신의 발견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자 발라바노바는 출처가 명확한 다수의 미라들을 대상으로 후속 연구를 시작했다. 그녀와 동료들은 한때 이집트 영토였던 수단 지역에서 발굴된 미라들 샘플 134점에 대한 도핑 테스트를 실시했다. 수단의 미라들은 이집트 본토 것들보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졌으나 그래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기 몇 백 년 전에 제작된 것들이다. 발라바노바가 이것들을 분석해보니 약 1/3의 샘플에서 니코틴과 코카인 성분이 검출됐다. 이 결과는 1993년에 관련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전문지 <린셋>에 게재됐다. 이로써 고대 이집트인들이 니코틴과 코카인을 흡입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됐다.

 

그런데 고대 이집트인들이 니코틴과 코카인을 사용했다면 그들이 어떤 식으로 이를 흡입했을까? 발라바노바의 동료들은 1995년에 탄소동위원소법으로 기원전 95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진 한 이집트 미라의 신체를 구석구석 조사해보았다. 그 결과 대마의 주성분인 THC는 폐에서 주로 검출된 반면 니코틴과 코카인은 장과 간에서 검출됐다. 이는 대마초 연기를 코로 흡입한 반면 담배나 코카 성분은 경구 투여했음을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