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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지적 호기심을 위한 미스터리 컬렉션> - 맹성렬

Chapter 7.#7 바그다드 유적에서 발견된 고대 전지의 미스터리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사라진 고대 전지

 

2003년 2월 이라크 전쟁 발발 직전 <연합뉴스>에 “고대 전지, 이라크 전에 풍전등화”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다. 전지는 1800년경 이탈리아의 과학자 알레산드로 볼타가 세계 최초로 발명했다고 교과서에 나와 있다.그런데 고대 전지라니? 이 기사에 의하면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7세기 사이에 이라크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진흙 항아리가 다름 아닌 전지라는 것이다. 정말 그렇게 오래전에 전지가 만들어졌다는 말인가?

 

 

이라크 바그다드 인근에서 발견된 고대 전지로 추정되는 유물의 구성품들. 진흙으로 만든

14센티미터 높이의 항아리(왼쪽). 구리를 말아서 만든 직경 2.6센티미터, 길이 10센티 미터 가량의 원통(가운데). 직경 1센티미터, 길이 7.5센티미터 정도의 철심(오른쪽).

 

 

 

윌러드 그레이와 윌리 레이의 재현 실험

 

윌리 레이의 글을 통해 쾨니히의 이론을 접한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사 고에너지연구소의 연구원 윌러드 그레이는 고대 전지 가설에 매료됐다. 아마추어 고고학자이기도 한 그레이는 회사가 있는 매사추세츠주 피츠필드의 버크셔박물관으로부터 협조를 받아 쾨니히가 제안한 고대 전지 가설의 타당성을 검증해보기로 했다.

 

1940년 그레이는 윌리 레이의 글에 소개된 내용과 도면을 기초로 고대 전지의 복제를 시도했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안에 어떤 전해액을 넣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는 고대 전지 가설에 관심을 보인 몇몇 고고학자들의 조언을 받아 파르티아 시대에 알려져 있던 황산구리 용액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가 항아

리에 황산구리 용액을 넣자 약 0. 5볼트의 전기가 흘렀다. 하지만 전류의 흐름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윌러드 그레이는 2차 세계대전 때문에 한동안 후속 연구를 하지 못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 윌리 레이와 의기투합해 고대 전지 복제에 관한 연구를 재개했다. 그들은 ‘황산구리 용액이 비록 기원 전후 시대에 알려져 있기는 했지만 과연 파르티아 시대 사람들이 그것을 사용했을 것인가?’라는 학계의 의문에 답하기 위해 과일즙이나 식초, 와인처럼 일상에서 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전해액으로 사용해 실험을 해보았다. 그 결과 1~2볼트의 전류를 얻을 수 있었고 최장 18일 동안 전류가 흐르는 것을 확인했다.

 

 

윌러드 그레이가 '충격적인 발견’이란 제목으로 바그다드 고대 전지에 대한 사설을 쓴 1963 년 9월호 <전기 화학회 저널> 표지 사진.

 

 

그 후 ‘바그다드 전지’가 정말 전지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험들이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진행됐다. 물론 전해액을 넣었을 때 전기가 흐른다고 해서 그것을 전지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그런 실험들이 ‘바그다드 전지’가 정말 전지임을 증명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주류 고고학자들, 특히 이라크 발굴에 참여하는 학자들은 그것이 전지일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미국 뉴욕 주립 대학 스토니 브룩의 고고학자 엘리자베스 스톤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20여 년 간 이라크의 고고학 발굴에 참여했던 그녀는 주변 동료들 중에서 문제의 유물을 전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그녀와 동료들이 그곳에서 20여 년에 걸쳐 발굴 작업을 했지만 그런 시대착오적인 유물이 발견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녀는 그것이 당시 종교적 의식에서 사용되던 그녀는 그것이 당시 종교적 의식에서 사용되던 다른 항아리들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고대 이집트에 전기 도금 기술이 존재했을 가능성

 

기원전 2500년경 메소포타미아가 아닌 이집트 땅에서 전기 도금을 했다는 주장이 학계에 보고된 바 있다. 비록 금이 아닌 다른 금속이기는 하지만 전착 기법에 의해 코팅됐다는 것이다. 1933년 콜린 핑크와 아서 콥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소장된 고대 이집트 제5~6왕조경의 금속 물병과 대접 표면에 달라붙은 모래와 산화물을 제거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구리 표면 여러 곳에 부분적인 안티몬 코팅이 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표면의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한 액체가 묽은 염기성 용액과 유기산류였으며 거기에는 안티몬이 전혀 섞여 있지 않았다고 했다. 또 그 용기들은 순수한 구리로 철 성분이 약간 섞여 있을 뿐 안티몬은 섞여 있지 않다는 점을 확인했다. 따라서 이물질 제거 작업 중 구리와 안티몬 합금에서 표면 구리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고갈 도금’이 자동으로 일어났을 가능성도 없다고 했다. 결국 그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전착법을 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아마도 은을 모방하여 안티몬 코팅을 했을 것이라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이들은 2, 500년 전에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되던 안티몬 화합물의 종류를 살펴보고 눈 화장에 황화안티몬이 애용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들은 이 물질을 기본으로 해서 당시 전착에 사용했을 두 가지 가능한 방법을 제시했다.

 

첫 번째 방법은 끓는 중탄산소다와 황화안티몬 수용액에 피도금 구리를 넣는 것이다. 이후 잠시 기다리면 표면에 조밀한 은잿빛 물질이 입혀진다. 이물질이 바로 안티몬이다. 그런데 이 방법으로 입힌 안티몬에는 황이 섞이는 문제가 있다. 핑크와 콥이 조사한 금속 물병과 대접의 표면에서는 황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따라서 고대 이집트인들이 이 방법을 사용했을 가능성은 없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 방법이 유력한데 이 경우가 바로 전기 도금에 해당한다. 식초와 소금, 그리고 황화안티몬이 끓고 있는 용기에 전기적으로 연결된 피도금용 구리와 철사를 넣는다. 약 한 시간 정도 지나면 구리 표면에 밝은 은빛의 얇은 코팅이 이루어진다.179 이 경우 표면에는 황 성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표면에서 황이 검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2,5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금속 물병과 대접은 이 방식에 의해 코팅됐을 가능성이 유력하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당시는 철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주류 학계의 견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핑크와 콥은 고대 이집트에서 운석에 포함된 철을 신성시했고 중요한 종교 행사에 사용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그들이 이렇게 구한 철을 연금술 목적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투탄카멘왕 무덤 발굴시 유물 보존을 도왔던 앨프리드 루카스는 이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에 의하면 그 용기들 표면에 산화안티몬이 묻어 있었으며, 이물질 제거에 사용된 알칼리 용액이 여기에 반응하여 환원 작용을 일으켰고, 그 결과 마치 안티몬 코팅이 된 것처럼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세정에 오직 알칼리성 물질만 사용됐어야 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세정 작업을 할 때는 매우 묽은 화학약품을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고, 그것도 비교적 짧은 시간 상온에서 사용한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이런 방식으로 코팅이 일어났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핑크와 콥은 그 용기들의 다른 부분에서 안티몬 성분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음을 강조했을 뿐 아니라, 알칼리성 용액으로 세척한 후 비슷한 농도의 아세트산이나 포름산으로 후 처리해주었음을 명기하고 있어 오직 알칼리성 용액으로 세척을 했다고 전제하는 루카스의 논점은 처음부터 틀려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루카스는 당시 철을 사용해서 전착을 했다는 사실도 터무니없다고 지적한다. 아직 이 문제는 학계에서 명확하게 결론이 나지 않고 있으며, 향후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져 정말로 고대에 전기 도금이 이루어졌는지의 여부가 판가름 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