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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호기심을 위한 미스터리 컬렉션> - 맹성렬

Chapter 6.#6 고대에서 종교적 경외감을 위해 전기 충격을 이용했다고?

과연 2,000년 전에 전지가 존재했을까?

 

1936년 여름 바그다드에 소재한 이라크국립박물관의 고고학자들이 바그다드 동남쪽 쿠주트 라부아 인근에서 철도 기술자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파르티아 왕조기 유적지를 발굴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유물들은 고고학자들이 충분히 예상했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물건만큼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것은 진흙으로 만든 14센티미터 높이의 항아리로 외형상으로는 별반 특이한 것이 없었으나 내부 구조가 매우 이상했다. 구리를 말아서 만든 직경 2.6센티미터, 길이 10센티 미터 정도의 원통이 들어 있었고 원통의 윗부분은 역청으로 밀봉되어 있었는데, 그곳의 한가운데에는 직경 1센티미터, 길이 7.5센티미터 정도의 철심이 원통 쪽을 향해 박혀 있었다.

 

이라크국립박물관의 유물 관리자였던 독일 고고학자 빌헬름 쾨니히는 항아리 내부 구조를 파악하는 순간 그것이 갈바니식 전지와 흡사하다고 직감했다. 사용된 금속만 다를 뿐 오늘날 사용하는 전지의 구조와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정말 전지라면 세계 최초의 전지는 교과서에 나와있는 것보다 무려 2,000년 전에 발명된 셈이었다.

 

 

 

 

 

이라크 바그다드 인근에서 발견된 고대 전지로 추정되는 유물의 구성품들. 진흙으로 만 든 14센티미터 높이의 항아리(왼쪽). 구리를 말아서 만든 직경 2.6센티미터, 길이 10센티 미터 가량의 원통(가운데). 직경 1센티미터, 길이 7.5센티미터 정도의 철심(오른쪽).

 

 

 

 

 

전지의 구조를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이온화 경향이 서로 다른 두 금속 사이에 전해질이 채워진 것이다. 문제의 유물은 금속 실린더와 그 내부에 금속 봉이 고정되어 있는 오늘날의 건전지와 구조가 매우 흡사했다(바그다드 전지는 건전지가 아닌 습식전지의 구조를 하고 있다).

 

쾨니히는 항아리 내부에 들어 있는 철심을 세밀히 조사해보고는 그것이 공기 중에서 산화된 것이 아니라 산에 의해 녹은 것처럼 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162 그는 항아리에 분명히 철을 산화시킬 정도의 산성도를 지닌 용액이 담겨져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물론 그 정도의 산이라면 전해질로 작용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쾨니히는 그 유물이 전지임이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에 관한 논문을 썼다.

 

하지만 과학이나 공학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시피 한 인문학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고고학계의 저널에 이런 논문을 발표하는 것이 무모한 일이었다. 쾨니히는 <독일광산신문>의 일요판인 1938년 1월 16일자 <기술보>에 자신의 논문을 실었다. 전지 관련 기술은 광산 전문가들에게 매우 친숙할 뿐 아니라 중요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쾨니히는 같은 해에 그 내용을 정리해서 <탐구와 진보>라는 독일 과학 저널에 “파르티아 시대의 갈바니 전지?”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실었다.

 

 

 

 

 

◆ 바그다드 고대 전지를 복원하여 식초나 과일즙을 넣으면 대략 1볼트, 1밀리암페어의 전류가 흐른다.

 

 

 

 

 

어떤 학자들은 바그다드 전지가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은 사원의 신상 안에 전지를 넣고 거기에 전기가 통하게 한 다음, 이를 만지는 이들이 전기 충격을 느끼도록 함으로써 종교적 경외감을 일으키도록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사제가 신자에게 질문을 해서 틀리면 전기가 흐르는 신상을 만지게 해 충격을 느끼게 하고, 맞으면 전기를 차단하여 만져도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게 해 실제로 신이 관여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그다드 전지의 전압과 전류가 너무 작아 전기 충격을 주기에 충분치 않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종교용 가설 지지자들은 전지를 여러 개 직렬 연결하면 되고 또 전기 충격이 반드시 놀랄 정도로 강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신전에서 여러 가지 신기하고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고 이를 신탁으로 연결시켰다는 고대 기록들이 존재한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의 천재적인 발명가 헤론은 물, 불, 증기 등을 이용한 분수기, 터빈, 오르간, 자동문 개폐 장치 등을 발명해 신전에 설치함으로써, 신전을 정말 신이 살아서 뜻을 전달하는 곳처럼 꾸몄다.

 

그런데 앞에서도 제기된 의문이지만 만일 바그다드 전지가 만일 바그다드 전지가 신전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소품으로 사용됐다면, 파르티아나 사산 왕조에서보다는 당시 최고 문명을 구가하던 그리스 로마

문명권에서 헤론 같은 최고 수준의 과학자에 의해 그것이 발명됐어야 마땅한 것 아닐까?

 

이런 의문에 대해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 있다. 시대착오적인 놀라운 기술이 문명의 수준과 무관하게 아주 우연히 발견 또는 발명될 수 있고, 이런 기술이 대대로 은밀하게 전해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고대 천재 발명가 가설’이다. 고대에 전지가 비교적 단순한 치료나 제의 목적으로 사용됐다면 이런 가설이 힘을 받겠지만 이보다 훨씬 고도의 산업에 적용됐다면 이런 가설을 지지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고대 전지가 매우 높은 수준의 산업적 목적으로 사용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