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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

<지적 호기심을 위한 미스터리 컬렉션> - 맹성렬

Chapter 5.#5 융이 태어난 집안은 '영매들의 가계'다

 

프로이트, 카를 융

 

 

 

 

어느 날 프로이트가 융을 후계자이자 양자로 삼겠다고 선언했는데 그날 서재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중 심상치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 융이 프로이트에게 초심리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하자 프로이트는 실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무시해버렸다. 이때 융은 눈의 망막이 마치 시뻘겋게 달군 쇠처럼 데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그 순간 책장 쪽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렸다. 둘 다 깜짝 놀랐는데, 융은 순간 그 소리가 자신의 정신적 상태가 외부로 표면화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고, 프로이트는 터무니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응대했다. 융은 “교수님, 그렇지 않습니다. 교수님이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라고 반박하면서 그런 소리가 다시 한 번 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정말 그의 말대로 됐다. 융이 그런 예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눈이 데인 것 같은 느낌을 또다시 받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이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은 나중에 그가 융에게 보낸 편지에서 엿볼 수 있다. 이 편지에서 프로이트는 자신이 융을 맏아들로 입양하기로 공식 선언한 바로 그날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상실했다는 점이 기이하다고 쓰고 있다.

 

 

프로이트가 이런 편지를 보낸 것은, 그 직전에 융이 보낸 편지에서 자신은 프로이트로부터 억압적인 아버지의 권위를 느꼈는데 그날 그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그런 불편한 느낌에서 해방됐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융은 프로이트가 그날의 일로 기분이 크게 상해 자신을 불신하게 됐다는 기록을 남겼다.

 

 

1909년 프로이트의 서재에서 일어난 사건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나중에 프로이트는 이를 유령의 두드림현상이라 명명했는데 초심리학에서는 이를 폴터 가이스트, 소리 요정 현상이라고 부른다. 예민한 성격 의 사춘기 소녀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외부에서 아무런 영향이 없는데도 문이 저절로 열리거나 액자가 돌아가고 무거운 책장이 움직이며 심지어 전구가 깨지기도 한다. 융은 이를 “정신적 상태가 외부로 표면화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표현했으며 오늘날 초심리학에서도 그런 능력 소유자들의 내면 상태가 외부에 영향을 끼치는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융은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서 이런 현상을 자주 체험했는데

그런 현상의 주요 원인 인물이 어머니였다고 회고한 바 있으며 자신도 어머니의 그런 능력을 물려받았다고 생각했다.

 

 

융은 일곱 살 또는 여덟 살경 한밤중에 희미하게 빛을 내는 목 없는 유령이 집 안을 떠도는 것을 종종 목격했다고 회고했다. 의학도이던 23세 때는 그가 초상현상을 받아들이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해 여름 집 안에 있던 호두나무로 만든 식탁이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면서 저절로 쪼개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융은 겨울이라면 혹시 몰라도 습한 여름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2주쯤 후에는 빵을 썬 후 서랍에 넣어둔 철제 칼이 큰 소리를 내면서 저절로 부서져 네 조각이 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다음 날 융은 제련 전문가에게 조사를 의뢰했는데, 제련 전문가는 확대경으로 조사해본 후 그 강철 칼을 누군가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거나 바위에 세게 쳐서 부쉈다면 모를까 저절로 폭발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주로 융의 어머니가 일하던 거실과 주방에서 일어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융은 외할머니 아우구스타 파버가 뛰어난 영매였다고 회고했는데 그런 능력이 어머니를 통해 자기에게도 이어졌다고 믿었다. 또한 그런 능력이 외삼촌의 딸 헬렌 프라이스베르크 에게도 전해져 그녀가 뛰어난 영매가 됐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헬렌은 융이 종종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연 교령회의 영매로 활동했다.

 

 

융이 스위스 제네바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 테어도르 플러노이, 미국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 교수 윌리엄 제스처럼 초심리 현상에 매우 우호적이었던 학자들과 교류했다는 사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특히 플러노이는 융이 프로이트와 불화를 겪을 때 그로 하여금 프로이트의 한계를 극복하고 몽유병, 초심리학, 종교심리학에 계속 흥미를 유지하도록 격려했다.

 

그런데 융이 최초로 초심리학이라는 학문을 개척한 듀크 대학 심리학과 교수 조지프 라인과 깊은 교유 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951년 융은 <동기성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인과율 이외에 우주를 지배하는 두 번째 법칙인 동기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동기성이라는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인과적으로는 관계가 없는 두 개 이상의 사건이 시간적으로 일치하여 나타나는 것을 일컫는다. 융은 그 후 《심혼의 구조와 원동력》 에서 정신력이 어느 정도 공간적인 요인을 제어하는 작용을 하며, 미래에 대해 시간과 정신력이 상호관계를 맺고 있을 뿐 아니라 물체를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는데, 이런 메커니즘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에너지에 대한 통념에서 벗어나 있어서 상식적인 힘의 전달이라는 개념을 적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과율에 기초한 기존 물리학과 무관하기 때문인데, 실제로 우주에는 인과율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그런 시공간이 실재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혁신적인 이론이 도대체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융은 그가 쓴 논문 <동기성 : 비인과적인 연결 원리>에서 라인의 초심리학 실험에 대해 누차 언급하고 있다. 또한 라인의 실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보낸 편지에 대한 라인의 답신 내용을 소개한 바 있다. 하지만 자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편지를 썼는지는 밝힌 바 없다. 그런데 최근 라인이 소장하고 있던 융의 편지들이 공개되면서 자세한 정황이 드러났다. 융의 ‘동기성’ 논문은 거의 전적으로 라인의 실험에 의존해 쓰였던 것이다. 라인은 초심리학을 학문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혁혁한 공헌을 했을 뿐 아니라, 누적된 실험들을 통해 텔레파시나 투시 같은 초감각 지각이나 염력이 실재한다는 믿음을 널리 퍼뜨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