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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우린 왜 이렇게 행복하지?> 김병년 목사의 일상다반사 - 김병년

Chapter 1.뾰족한 아픔에서 시작되어 반짝이는, 그 가족의 일상다반사 #1 가난과 행복

아빠,

우린 가난한데 왜 이렇게 행복한거야?

 

 

 

 

 

 

수요예배를 마친 어느 날, 가족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막내 윤지가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이의 입에서 '가난'과 '행복'이란 단어가 동시에 터져 나와서. 사실 내 상황을 알거나 글로 읽은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삶에 대해 혼란을 느낀다. 그러나 어린 윤지는 어른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두 단어를 한 문장 안에서 절묘하게 사용하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꼬마 아이의 눈에 비친 내 인생은 가난하면서도 행복한 삶이었다. 가난하면서도 행복한 삶. 이 두 단어는 마치 운명처럼 내 인생의 특징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행복이 가난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나는 초라한 행복을 말하고 싶지 않다. 아내가 아파서 잃은 것들이 많다. 남편으로서 누려야 할 많은 것을 잃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당연히 받아야 할 양육의 기회를 잃었다. 우리 가족은 늘 고통당하며 살아간다. 행복의 조건으로 건강을 내세우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내 삶은 불행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아내의 빈자리가 아무리 클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자족할 줄 아는 기쁨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아프기 때문에 인생을 총천연색으로 경험한다. 감정의 풍요로움은 나를 분노케 하고, 좌절케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외롭게 하여 비로소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렇다고 가난이 행복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가난을 미화할 마음이 없다. 경제적인 궁핍함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 결핍으로 인하여 얻고, 나누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가난함으로부터 오는 고통을 이겨내는 풍성한 관계들이 있기에 우리는 행복하다. 가난은 결핍이지만 그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손이 있기에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나는 막내딸의 질문을 듣고 되물었다.

 

네가 가난을 아니?

 

윤지는 또박또박 말을 했다.

 

 

 

돈 없는 거잖아.

 

맞다. 가난은 돈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처럼 명료한 답이 있을까? 돈이 없어서 먹거리를 사지 못하는 이들이 세상 도처에 굶주리고 있다. 가난은 물건의 궁핍함이 아니고 물건을 살 수 있는 재화의 부족이다.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가난은 돈의 부족이다. 우리 집은 절대적으로 그것이 부족하다. 아내가 아프고 난 뒤에는 더욱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다. 매달 버는 돈보다 써야 할 돈이 더 많았다. 수입보다 더 많은 돈을 지출했으니 당연히 가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덟 살 꼬마는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돈이 없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질병에 걸린 삶을 불행하다고 여기고 미래를 걱정하기 때문에 현재를 누리지 못한다. 그러나 돈이 없어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현재를 누릴 줄 안다. 돈으로 소유욕을 채우는 탐욕스러운 인간의 행복과 소유욕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의 행복은 현재Present가 삶의 선물Present인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한다. 그러므로 돈이 없어도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

 

네가 행복을 아니?

 

나는 다시 한 번 윤지에게 물었다.

막내는 그렇게 당연할 걸 왜 물어보냐는 듯이 대답한다.

 

그러엄! 우리가 기뻐하는 거잖아.

 

이야, 대단하다. 행복이 무엇인지를 이 녀석이 알다니. 맞다, 행복은 온 가족이 기뻐하는 것이다. 엄마가 아파서 누워 있는데, 태어나서 엄마로부터 한마디 말도 듣지 못하고 커가는 아이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귀엽고 예쁜 아가씨를 선머슴처럼 키우는 아빠를 두고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윤지 말대로 우리 가족에게는 즐거움이 많다. 서로 투닥거려서 시끄러울 때도 있지만 재미있는 일들이 많아서 웃을 일이 끊이지 않는다. 엄마가 아픈데도 아빠와 언니, 오빠에게 느껴지는 기쁨이 막내딸아이의 눈망울에 비쳤다. 이 아이에겐 아빠가 기뻐하는 모습이 자기의 기쁨인가 보다. 언니 오빠가 즐거워하는 모습이 자기의 행복인가 보다.

 

여기, 오늘도 되풀이되는 아픔 속에서도 여전히 반짝이는 우리의 행복 이야기가 있다.

 

아프고, 슬프고, 고마운 이름

가족

 

고통은 가족의

일상이 되었지만

 

예기치 않은 고통이 우리 가족을 찾아온 지 벌써 8년이 흘렀다. 내 삶을 누구보다 더 풍성하게 하던 아내가 쓰러지자 엄청난 혼돈이 나와 아이들에게 찾아왔다. 아이들은 나를 ‘엄빠’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