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김영사가 기획한 특별한 즐거움.
책과 함께하는 재미가 가득합니다.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신, 만들어진 위험> - 리처드 도킨스

Chapter 9.#8 모든 것의 설계자 신은 과연 있을까?

동전 던지기의 경우는 특정한 결과가 나올 확률을 계산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적어도 복잡할 건 없다. 인간의 눈, 또는 치타의 심장이 얼마나 있을 법하지 않은지는 동전 던지기처럼 산수로 정확한 확률을 계산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매우 있을 법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눈이나 심장 같은 것은 어쩌다 보니 재수 좋게 생겨나지 않는다. 이런 ‘있을 법하지 않음’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것들은 설계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번 장과 다음 장에서의 내 임무는 이런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설계자는 없었다. 눈이든, 눈을 설계할 수 있는 창조자든 있을 법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있을 법하지 않은 것이라는 문제에는 창조자가 아닌 어떤 다른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제공한 사람이 찰스 다윈이었다. (중략)

 

동물과 식물이 무작위적인 우연에 의해 생겨나지 않는다는 건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다. 치타와 가젤, 번개처럼 빠른 카멜레온의 혀, 오징어의 색소포와 홍색소포·백색소포를 무엇으로 설명하든, 그것이 무작위 우연일 수는 없다. 수백만 가지 동식물에 대한 진정한 설명이 무엇이든 그것이 운일 수는 없다. 우리 모두는 그 점에 동의한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일까?

 

불행히도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이 잘못된 길로 직행한다. 그들은 무작위적인 우연의 대안은 설계자뿐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이 떠올린 것 역시 그것이라도 걱정 마라. 19세기 중엽에 찰스 다윈이 나타나기 전까지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땡, 땡, 땡! 그건 틀렸다. 단지 틀린 대안이 아니라, 대안이 전혀 아니다.

 

 

 

그 틀린 논증은 윌리엄 페일리 목사가 1802년 저서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에서 펼친 것이 가장 유명하다. 여러분이 황야에 산책을 나갔다고 상상해보라고 부주교副主敎 페일리는 말했다. 그때 우연히 여러분 발에 돌멩이가 차인다. 여러분은 그 돌멩이를 무심코 지나친다. 돌멩이는 어쩌다 보니 그곳에 있을 뿐이고, 어쩌다 보니 거칠고 불규칙하며 울퉁불퉁한 모양을 하고 있을 뿐이다. 돌멩이는 돌멩이일 뿐이다. 그것은 그 밖의 모든 돌멩이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발에 차인 것이 돌멩이가 아니라 시계라고 가정해보라고 페일리는 말한다.

 

시계는 복잡하다. 뒷면을 열면 톱니바퀴, 스프링, 섬세한 작은 나사들이 많이 보인다. 서로 맞물린 그 모든 작은 부품은 함께 작동해 유용한 일을 한다. 이 경우는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다. 돌멩이와 달리 시계는 어쩌다 보니 운 좋게 생길 수 없다. 그것은 숙련된 시계공이 의도적으로 설계하고 조립해야 한다.

 

물론 페일리가 이 논증으로 어떤 결론에 이를지 여러분은 쉽게 알 수 있다. 시계가 만들어지려면 반드시 시계공이 있어야 하듯 눈이 생기기 위해서는 눈 제작자가 있었음이 틀림없고, 심장이 있기 위해서는 심장 제작자가 있었음이 틀림없다. 이런 식으로 계속할 수 있다. (중략)

 

설계자 역시 시계와 마찬가지로 설명이 필요하다. 시계공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그는 한 여성에게서 태어났고, 그 전에는 아주 길게 이어진 조상들을 통해 느리게 점진적으로 진화했다. 모든 생물을 똑같이 설명할 수 있다.

 

그러면 모든 것의 설계자라는 신은 어떻게 될까?

 

얼핏 생각하면 카멜레온과 치타 그리고 시계공처럼 있을 법하지 않은 것들의 존재는 신을 끌어들이면 잘 설명되는 것 같다. 하지만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면 신 자체는 윌리엄 페일리의 시계보다 훨씬 더 있을 법하지 않다. 어떤 것을 설계할 정도로 충분히 똑똑한 존재, 충분히 복잡한 존재는 우주에 늦게 등장해야 한다. 시계공처럼 복잡한 존재는 단순한 것에서 시작하는 길고 완만한 오르막의 끝에 있어야 한다. 페일리는 자신의 시계공 논증이 신의 존재를 입증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대로 이해하면 그 논증은 정반대 방향, 즉 신의 존재를 반증하는 쪽으로 향한다. 본인은 몰랐지만, 페일리는 유창하고 설득력 있게 자기 무덤을 파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