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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신, 만들어진 위험> - 리처드 도킨스

Chapter 8.#7 신은 가젤의 편인가? 치타의 편인가?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전력 질주하는 치타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다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숨을 내뱉는 가젤을 상상해보라. 아마 여러분도 나처럼 가젤을 동정할 것이다. 하지만 치타에게는 배고픈 새끼들이 있다. 만일 먹이를 잡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 새끼들도 굶어 죽을 것이다. 그건 가젤의 이른 죽음보다 더 불쾌한 죽음일지도 모른다.

 

만일 여러분이 가젤과 치타가 달리는 영화—아마도 데이비드 애튼버러의 다큐멘터리 중 하나—를 본 적이 있다면 두 동물이 얼마나 아름답게, 얼마나 우아하게 설계되었는지 알아챌 것이다. 두 동물의 팽팽한 용수철 같은 근육질 몸에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빠른’이 쓰여 있다.

 

치타의 최고 속도는 시속 100킬로미터 정도이다. 대략 시속 60마일이다. 어떤 보고는 심지어 최고 속도가 시속 70마일이라고 하는데, 바퀴 없이 발로만 이런 속도를 낸다는 건 정말이지 대단한 위업이다. 게다가 치타는 3초 안에 시속 0~60마일로 가속할 수 있는데, 이것은 거의 (‘미친 모드’의) 테슬라나 페라리가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중략)

 

단거리 질주가 가능한 거리보다 멀면 지쳐서 추격을 포기해야 한다. 가젤은 치타만큼 빠르게 달릴 수는 없지만(역시 시속 40마일 정도), 이리저리 몸을 피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하면 치타가 잡기 어렵다. 무엇보다, 고속으로 질주하고 있을 때는 방향을 틀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영양들처럼 가젤도 쫓기면 ‘껑충껑충’ 뛴다. 껑충껑충 뛴다는 건 공중으로 높이 뛰어오른다는 뜻이다. 이건 쫓기는 동물로서는 뜻밖의 행동인데, 전진하는 속도를 떨어뜨리고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혹시 치타에게 이런 암시를 주는 것은 아닐까.

 

 

힘들여 나를 쫓지 마. 나는 공중으로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강하고 건강한 가젤이야. 그건 내가 다른 가젤들보다 잡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해. 그러니 내 무리의 다른 놈을 쫓는 게 나을 거야

 

 

가젤은 이런 논증을 머리로 생각해내는 게 아니다. 가젤의 신경계가 이유도 모른 채 껑충껑충 뛰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을 뿐이다. 공중으로 뛰든 좌우로 비키든 질주하는 치타가 지쳐서 멈출 때까지 잡히지 않고 피할 수 있으면 가젤은 안전하다.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신이 치타를 만들었다면 그는 분명 빠르고, 난폭하고, 눈이 예리하고,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가지고 있으며, 가젤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데 몰두하는 뇌를 장착한 뛰어난 킬러를 설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신은 가젤을 만드는 데도 동일한 노력을 기울였다.

 

 

신은 가젤을 죽이도록 치타를 설계함과 동시에 치타로부터 잘 도망치는 가젤을 설계하느라 바빴다.

 

 

그는 각각이 상대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도록 둘 모두를 빠르게 만들었다. 이 대목에서 여러분은 이

런 궁금증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대체 신은 누구 편인가?

 

 

신은 양쪽 모두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혹시 그가 관람 스포츠라도 즐기는 걸까? 겁에 질린 가젤이 필사적으로 도망치다가 자빠져 목을 죄는 치타한테 질식사당하는 장면을 신이 즐겁게 지켜본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나? 또는 사냥에 실패한 치타가 애처롭게 칭얼거리는 새끼들과 함께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신이 감상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떤가?

 

물론 무신론자에게는 이런 문제가 없다. 신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무신론자도 신을 믿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겁에 질린 가젤, 또는 굶주린 치타와 그 새끼들을 불쌍히 여길 권리가 있다. 하지만 무신론자는 신을 믿는 사람과 달리 치타와 가젤의 상황을 설명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다윈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가 그 상황—그리고 생명에 관한 그 밖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