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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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동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 정호승

Chapter 2.1회. 외로우니까 사람입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_정호승, <수선화에게>

 

 

 

내 나이 마흔여덟일 때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가 대뜸 물었다.

 

“호승아, 니는 요즘 안 외롭나? 나는 요즘 외로워 죽겠다. 와 이렇게 외로운지 모르겠다. 집사람한테 외롭고, 자 식들한테 외롭고, 친구들한테 외롭고, 회사 동료들한테 외롭고, 이웃들한테 외롭고……. 내가 왜 이렇게 외로운지 모르겠다. 시인인 니는 어떻노?”

 

친구의 느닷없는 질문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러다가 약간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나도 집사람한테 외롭다. 그런데 니는 지금까지 헛살았다. 나이 오십이 다 됐으면서 아직도 ‘내가 왜 외롭나’ 그런 생각하나? 니가 무슨 이십 대냐? 그러면 너는 요즘도 ‘인간에게 왜 죽음이 존재하나’ 그런 고민하나?우리가 인간이니까 외로운 거야. 외로우니까 사람이야.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이야, 본질. 죽음이 인간의 본질이듯이. 삼라만상(森羅萬象)에 안 외로운 존재가 어딨노? 본질을 가지고 ‘왜?’라고 생각하지 말란 말이야. 본질은 그냥 받아들이는 거야.”

 

목소리를 조금 낮추어 빙긋이 웃으면서 하는 내 말에 친구도 빙긋이 미소를 띠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왜 외로운가’ 하고 생각하지 말고 외로움을 이해해야 하는 거야.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뼈저린 외로움을 느끼게 될 거야. 그럴 때는 ‘아, 내가 인간이니까 외롭지.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이지’ 그렇게 생각해야 돼.”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친구한테 해준 말, ‘외로우니까 사람이야’ 그 한마디가 오랫동안 내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시 <수선화에게>를 쓰게 되었다.

인간의 외로움에 빛깔이 있다면 어떤 빛깔일까.

 

연약한 꽃대 위에 핀 수선화의 연노란 빛이 인간의 외로움의 빛깔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제목을 <수선화에게>로 삼았다. 따라서 <수선화에게>는 수선화를 노래한 시가 아니다. 수선화를 은유해서 인간의 외로움을 노래한 시다.

 

외로움은 인간 삶의 기본명제다. 인간이 외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 외롭기 때문에 인간인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외로움은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이나 물과 같다. 인간이니까 밥을 먹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외로움 또한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인간 조건으로서의 그 당연한 외로움을 너무 아파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한테 가장 많은 외로움을 느낀다. 그것은 내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만일 사랑하지 않으면 외롭지 않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사랑하지 않을 때 혼자이고 혼자 일 때 외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단순히 물리적으로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내가 외롭다는 것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혼자라는 사실을 의미하고, 내가 언제 혼자인가 하는 문제는 내가 언제 외로운가 하는 문제와 같다. 그렇지만 결국 아무도 진정으로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 때 외로움을 느끼고, 내가 진정으로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때 외로움을 느낀다.

 

인간은 사랑의 존재다.

 

사랑받고 싶은 존재한테 사랑을 받지 못해도 외롭고, 사랑하고 싶은 존재를 진정 사랑해도 외롭다. 이 모순된 외로움의 본질을 내가 이해해야 한다. 사랑과 외로움의 본질을 이해하는 과정이 바로 내 삶의 과정이다.

 

나는 인간의 고독의 영역도 중요하지만 일상의 상대적 삶에서 오는 외로움의 영역이 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다양성 속에서 개인주의가 만연해질수록 외로움 때문에 삶이 파괴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외로움의 또 다른 이름이고, 상처와 고통의 또 다른 이름이며,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인생이 외로움과 상처와 고통과 사랑으로 이루어지듯 시 또한 마찬가지다.

 

독자들이 시집에 사인을 해달라고 할 때 내가 가장 많이 쓰는 구절은 ‘외로우니까 사람입니다’이다. 그렇게 쓸 때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언제나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