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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 호프 자런

Chapter 1.[예고] 호프 자런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태양과 태양 에너지. 이 얼마나 대단한 힘의 원천인가! 석유와 석탄이 고갈되어 힘든 상황을 맞닥뜨릴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 토머스 에디슨이 헨리 포드와 하비 파이어스톤에게(1931)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유명 인사들이 지구 환경 변화에 관해 논쟁을 벌여왔다.

 

90년쯤 전, 전구를 발명한 남자가 자동차를 발명한 남자와 타이어를 발명한 남자에게 재생 가능한 에너지에 관해 소개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음료를 마시고, 다시 지구를 동력화하는 이야기로 돌아가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그 후 몇십 년 동안 포드자동차는 100억 배럴의 석유를 태워 없앴고 부분적으로 석유로 만들어지는 타이어를 최소 12억 개 필요로 하는 3억 대 이상의 차를 만들고 또 팔았다.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1969년, 노르웨이의 탐험가 베른트 발헨Bernt Balchen은 북극을 덮고 있는 얼음층이 점점 얇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북극해가 녹아 외해로 흘러들면 기후 패턴이 바뀌게 되고 10년에서 20년 정도 지나면 북미 지역에서 농업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동료들에게 경고했다. <뉴욕타임스>가 재빨리 이 이야기를 소개하자 미 해군의 월터 휘트먼Walter Whittmann은 비행기로 매달 북극 위를 날고 있지만 얼음이 녹는 그 어떤 증거도 보지 못했다며 발헨의 이야기를 일축에 붙였다.

 

대부분의 시대에 대부분의 과학자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발헨의 주장은 옳기도 했고 동시에 틀리기도 했다. 1950년대 이후 북극해를 유영해온 잠수함들은 20세기 들어 북극해의 얼음이 심각하게 얇아졌고 1999년에 이르러서는 얼음의 두께가 거의 절반 정도로 얇아진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발헨의 이야기가 신문 지면을 장식한 지 50년이 지났지만 그럼에도 미국 농업에 있어서는 북극 얼음이 녹으며 초래한 심각한 효과가 아직은 등장하지 않고 있다. 기술적으로 말해 이는 휘트먼 역시 어느 정도는 틀리고 동시에 어느 정도는 옳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자들이 잘못했을 때 놀라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는 것보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하는 것을 훨씬 잘한다. 이런 과정에서 사람들은 과학자는 뭔가 다를 것이라고, 항상 옳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늘 옳지는 않기에 사람들은 과학자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일을 그만두었다. 이제 와서는 과학자들이 몇 번이고 반복해 말하는 것들에 관해 귀 기울이지 않도록 단련되었다.

 

예를 들어 화석연료 사용을 포기하자는 것은 새로운 제안이 아니다. 1956년부터 셸 정유회사를 위해 일하던 M. 킹 휴버트M. King Hubbert라는 이름의 지질학자는 '피할 수 없는 화석연료의 고갈'이 문제로 등장하기 전 미국이 원자력 에너지에 적극적으로 관심 가질 필요가 있다고 열정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휴버트는 콜로라도주 기반암에서 우라늄을 채굴하는 것이 석유와 석탄을 태우는 것보다 훨씬 더 지속 가능하다고 믿었는데, 그는 그것들이 각각 2000년과 2015년에 생산 피크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역시 맞기도 하고 동시에 틀리기도 했다.

 

 

발헨이 휘트먼에 대항해 싸움을 벌이고 휴버트가 여전히 자기주장을 강조하던 1969년으로 잠시 돌아가보자. 나는 개인적으로는 1969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시작과 끝, 문제와 해결책으로 가득했던 한 해였다. 이미 흘러가버린 그 이전의 시간이나 이후 찾아올 시간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지금 창문 밖에 보이는 대부분의 나무들은 1969년에는 씨앗조차도 아니었을 것이다. 월마트는 1969년 세워졌고 그 후 세상에서 가장 많은 직원을 고용하는 기업이 되었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1969년 방송을 시작해 수백만 명의 아이들에게 숫자를 세고 철자를 바로 쓰는 법을 알려주었다. 대단한 일들도 시작은 사소했고 이후 세상을 바꿀 정도로 점점 더 커져갔다.

 

오염된 쿠야호가Cuyahoga강에 화재가 난 1969년, 애크런과 클리블랜드 사이에 서식하는 모든 물고기가 죽었고 <타임>의 취재는 미국 환경보호국EPA의 설립을 이끌어냈다. 같은 해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 연안의 정유 시설에서 10만 배럴 이상의 원유가 유출되어 모든 해양생물체가 죽었는데 이 일은 지금 전 세계 여러 나라가 지키고 있는 '지구의 날'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북쪽으로 향해, 미네소타주 모어 카운티로 관심을 돌려보자. 나의 부모들은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겠지만 나는 1969년 9월 27일 태어난 1000만 명의 아기 중 한 명이었고 네 아이 중 막내였다. 이 아이는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될 거야, 행복한 출산 후 찾아오는 가장 흥분된 상태에서 세상의 모든 엄마와 아빠들이 하는 그 오래된 맹세를 내 부모님은 서로에게 약속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받았고 어머니가 받았어야 할 모든 사랑을 받았다. 어머니는 결심했다. 이 아이는 자유롭게 클 거야, 배고픔으로부터 자유롭고 지역사회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수치로부터 자유롭게 자라게 될 거야. 아버지는 우리 모두를 질병과 결핍으로부터 구해줄 기술의 새로운 세기를 고대했다. 그 이전 세대에 존재했고 이후 세대에도 존재할 수백만 쌍의 커플과 마찬가지로, 부모님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보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에 관해 생각했다. 부모님은 서로를 사랑하며 의지했고, 나에게 호프Hope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우리 부모님 역시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40년이 지나 2009년, 내가 속한 학부의 학장이 사무실로 부르더니 기후변화에 관한 수업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신음 소리를 내며 의자 깊숙이 몸을 구겨 넣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에너지 사용량을 살피도록 하는 일은 누군가에게 금연을 시키거나 몸에 좋은 음식을 먹도록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지만, 수십 억 달러 규모의 관련 산업들이 24시간 내내 작동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에너지 절약이나 금연이나 건강한 식생활에 성공할 수 없다고 확신하게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내고 있었다. 에디슨과 포드, 파이어스톤, 발헨과 휘트먼과 휴버트, 세이건과 고어를 비롯해 이미 이 문제를 제기했던 유명한 남성들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과정에서 솔직히 말해 나 같은 여성 연구자에 관해 생각해보지는 못했다. 그날 출근하며 몰고 온 자동차를 생각했고 이 차에서 얼마나 끔찍하게 기름이 새는지 생각했다. 그러다가 나에게 무언가 이야기할 것이 있나 궁금해졌다.

 

학장 사무실을 떠나 내 실험실로 돌아와 부루퉁하니 화가 나서 동료인 빌에게 상의했다. 이 모든 일의 무의미함에 관해 이야기한 후 빌에게 도대체 왜 내가 이런 일을 시도라도 해야 하는지 물었다. 내 말이 끝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던 빌은 언제나처럼 짧은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그게 바로 너의 일이니까. 닥치고 가서 할 일을 해."

 

빌은 여러가지 면에 있어서 예외라 할 수 있다. 적어도 그는 맞을 때가 틀릴 때보다 훨씬 많은 편이다. 늘 그렇듯, 그는 핵심을 찔렀다. 내가 이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 것이었다. 그냥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자고 결정한 후, 상사의 요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를 켜고 변화에 관해 리서치를 시작했다. 그 후 몇 년에 걸쳐 지난 반세기 동안 인구가 얼마나 늘었는지, 농업이 얼마나 집중화되었는지, 에너지 사용량이 얼마나 치솟았는지 보여주는 데이터를 정리했다. 공공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온갖 숫자와 스프레드시트 파일 더미를 내려받았다. 인생 수십 년 동안 오가는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찾아온 나였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확고하고 정확한 용어로 세상의 변화를 수량화해보기로 작정했고 그렇게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이 리서치는 내가 여러 번 개설했던 수업의 토대가 되어주었다. 학기 중 매주, 강의실에 가득 찬 학생들에게 나는 분필을 꺼내 들고 1970년대 내가 어린아이였던 시절 이후 지구라는 별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보여주는 수치에 대해 가르쳤다. 나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가르쳤다. 아마 일어났을 거라고 추측한 내용은 가르치지 않았다. 일어났어야 했다고 생각한 것을 가르치지도 않았다. 나 스스로 공부해 배운 것들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이렇게 내 일을 하면서, 마침내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어디 있는지 인식한 후에라야 이곳이 우리가 있고 싶어 했던 곳인지 스스로에게 적절하게 질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나는 내가 태어난 나라가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미국은 파리의정서를 걷어차버렸고 환경보호국은 거의 해체 지경에 이르렀으며 농무부는 엉망이 되고 있다. 지난 10여 년 넘게 내 연구실의 온실가스 연구 자금을 후원해주었던 에너지부는 기후변화에 관한 대부분의 업무를 중단한 상태이고, 나사(미항공우주국) 역시 비슷한 압력을 받고 있다. 나는 2016년 미국을 떠나 노르웨이로 옮겼다. 이곳에서 연구실을 열면 훨씬 더 나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며 미국 과학의 미래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 때문에 나는 지금이야말로 강의실에서 벗어나 이 책을 통해 지구환경 변화에 관해 이야기할 때라고 확신했다.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는 과학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언어와 숫자에 대해 공평한 애정을 지닌 작가이자 해야 할 이야기가 있는 교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러분이 들어주신다면, 내가 속한 이 세상에, 당신이 속한 이 세상에, 우리 모두가 속한 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야기할 것이다. 이 세상은 변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