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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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 김완

Chapter 1.[예고] 누군가 홀로 죽으면 나의 일이 시작된다, <죽은 자의 집 청소>

프롤로그

문을 열고 첫 번째 스텝

 

 

양손에 납작하고 투박한 검은 상자 두 개를 들고 있습니다. 버튼을 누르고, 저 높은 곳에 머무는 엘리베이터가 내가 서 있는 일 층까지 내려오길 잠자코 기다립니다. 현장에 처음 방문하는 날이면 엘리베이터는 아득한 곳에 기거하는 낯선 존재로 느껴집니다. 습관적으로 몇 번이나 고개를 들어 두 자리였던 붉은 숫자가 점점 겸손하고 낮은 숫자가 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시선은 문 위의 숫자를 향하지만 그 숫자 하나하나의 의미가 마음에 스미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엘리베이터 앞에서의 시간이란 모든 이에게 그런 방식으로 공평하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겠군요. 지난달에 돌아가신 당신도 생전에 바로 이 문 앞에서, 짧은 순간이지만 이어 보면 꽤 오랜 시간을 보냈겠죠.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 우리는 이 시간을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두께 사 밀리미터의 강인한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들어진 상자 안에는 여러 가지 보호 장구가 들어 있습니다. 파란색 수술용 글러브와 역시 파란색 신발 덮개, 그 안에 덧신는 투명한 파란색 비닐로 만들어진 또 다른 신발 덮개, 하얀색 방진마스크와 연한 회색의 방독마스크, 그리고 현관문을 여는 데 요긴한 공구 따위가 손잡이가 달린 두 상자에 나누어져 담겨 있습니다. 이런 보호 장구들은 나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피부와 같습니다. 콘돔이 생명의 잉태를 막듯 이런 보호 장구의 얇은 막이 나를 감염과 오염,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막아준다고 믿습니다.

 

낯선 존재였던 엘리베이터는 선뜻 좌우로 품을 열고 정해진 층까지 나와 함께 동반 상승합니다. 이때 코는 어느 때보다 예민해져서 무심코 그 안에서 뭔가를 수색하기 시작합니다. 나이 지긋한 남자가 쓸 법한 고전적인 화장수 향기, 막 배달된 피자 냄새,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머문 듯 아련하고 퀴퀴한 냄새…. 밀폐된 공간에서 후각의 추적 능력이 한껏 고양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문을 열어 나를 내보내고서 이 추적은 더없이 집요해집니다. 사실 내 일은 살아 있는 사람을 괴롭히는, 죽은 사람이 만든 냄새가 가져다줍니다. 그 냄새를 극적으로 없앴을 때 내 비즈니스는 성공하지요. 대가로 살아 있는 사람이 나에게 돈을 지급합니다.

 

용서하세요, 문 앞에 도착하더라도 애써 예의를 갖춰 벨을 누르지는 않겠습니다. 저 안에서 기다리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이 남긴 것이니까요. 조심스레 검은 상자를 열어 신발 덮개를 신고 수술용 글러브를 양손에 끼우고는 행여나 빈틈이나 헐거운 구석은 없는지 매만져봅니다. 냄새를 여과 없이 제대로 맡는 것, 그 사실적인 측정이 이 일의 세부적인 과정을 계획하고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데 기준이 되기에 이때만큼은 코를 가리는 어떤 종류의 마스크도 쓰지 않습니다. 이제 나는 완전범죄를 계획한 자처럼 지문도, 발자국도,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 드나들던 곳처럼 자연스레 손잡이를 잡아 비틀고 서슴없이 집 안으로 들어설 작정입니다.

 

문을 열고 비로소 첫 번째 스텝을 밟습니다. 습관적으로 되풀이하는 ‘초연하자’는 각오가 무색하게 내 코는 이미 죽은 이가 남긴 냄새에 잠식되었고, 심장 언저리에는 어둡고 축축한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스위치를 찾아 전등을 켜지만 이 순간만큼은 마음에 빛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태초에 빛이 있기나 했는지, 가로등이 없는 심야의 지방도로 위를 비추는 자동차 전조등의 세계처럼 시야가 좁아졌습니다. 목구멍은 바람이 소금 사막을 스치듯 바삭거립니다. 문득 내가 해저를 느리게 유영하는 심해어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냄새의 진원지는 실낱 같은 빛이 비치는 곳. 물고기는 어둠 속에서 그 희붐한 빛을 향해 천천히 헤엄쳐 가야 합니다. 모래에 감춰진 산호나 심해 곳곳에 좌초된 난파선의 뾰쪽한 잔해에 찔리지 않도록 가능한 한 느리게 나아갈 것.

 

눈 어둡고 심약한 물고기여,

두려움을 헤치고 그곳에 가야만

비로소 이 지독한 심해의 압력에서 해방될 수 있다.

 

죽은 사람이 오래 방치된 바닥은 으레 기름 막으로 덮여 있어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워 앞으로 걸어갑니다. 그 방이 바로 당신이 숨을 거둔 곳입니다.

 

당신은 없지만 육체가 남긴 조각들이 천연덕스레 기다립니다. 침대 위엔 몸의 크기를 과장해서 알려주는 검붉은 얼룩이 말라붙어 있습니다. 베개엔 살아 있을 때 당신의 뒤통수를 이루었을 피부가 반백의 머리카락과 함께 말라붙어 있습니다. 천장과 벽엔 비대해진 파리들이 달라붙은 채 소리 없이 손바닥을 비비고 있겠죠. 이불을 들추면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따뜻한 안식처를 찾아낸 구더기 떼가 뒤엉켜 서로 몸을 들비빕니다. 구더기들이 온몸을 흔들며 춤추는 광경을 보고 있자면 알코올이 담긴 유리 단지 속에서 영원히 박제된 것만 같았던 나의 뇌가 온기를 되찾아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좁아졌던 시야가 비로소 터널을 벗어난 듯 밝게 열리고, 내가 이곳에 방문한 이유가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이곳에서 새로이 탄생한 작은 생명체들은 나에게 스텝을 또 다른 방향으로 옮길 때를 알려줍니다.

 

방에서 나와 이 집에서 들어내야 할 살림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집 구석구석을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거실을 거쳐 베란다로, 화장실을 거쳐 또 다른 방으로, 부엌을 거쳐 현관 신발장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그 스텝은 빠르고 직선적이죠. 이미 심장에 드리웠던 그림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심장을 옥죄던 어둠은 ‘실체의 구체적인 직시’라는 강렬한 태양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추곤 합니다.

 

두려움은 언제나 내 안에서 비롯되어 내 안으로 사라집니다. 한 번도 저 바깥에 있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당신은 홀로 숨을 거두었고, 꽤 오랫동안 그대로 머물렀고, 오늘부터 나는 남겨진 흔적을 요령껏 지울 것입니다. 이제 현관문을 열고 나가 일 층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곳에는 장례를 막 치르고 돌아왔을 당신의 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에게 어떤 말부터 꺼낼지 미리 생각해둬야 합니다.

 

자, 이제 전등을 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