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김영사가 기획한 특별한 즐거움.
책과 함께하는 재미가 가득합니다.

대변동

<백세 일기> - 김형석

Chapter 10.#10. 도산 선생의 마지막 강연

강원도 양구와 인연을 맺은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양구인문학박물관에서 인문학 강좌의 강사들을 추천하다가, 내 고향 친구이자 철학자 안병욱 선생과 인연이 깊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소개하는 시간을 넣기로 했다. 내가 강의하기보다는 도산기념사업회 김재실 이사장이 적임자일 것 같아 수고해주기를 요청했다.

안병욱 선생은 한때 흥사단 이사장직을 맡았을 정도로 도산을 존경하고 따랐다. 그러나 나에게 행운을 빼앗겼다는 아쉬움을 자주 얘기하곤 했다. 자기는 꿈에 한 번 도산 선생을 뵌 일은 있으나, 나는 직접 뵈었을 뿐만 아니라 두 차례나 도산의 마지막 강연과 설교를 듣는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다.

내가 열일곱 살 때 일이다. 도산이 병 치료를 받기 위해 가석방되었다. 선생이 평양 서남쪽에 있는 대보산 산장에 머물고 있을 때 20리쯤 떨어져 있는 우리 고향 송산리를 방문하였다. 우리 마을에는 덴마크의 농민 학교를 모방해 설립한 학교가 있었고 주변 마을에서 신도 200여 명이 오는 교회도 있었다. 그해 초가을이었다. 도산이 찾아와 내 삼촌 집에 머물면서 토요일 오후는 마을 유지들에게 강연했고 이튿날에는 교회에서 설교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신사 참배 문제로 1년간 평양 숭실학교를 쉬면서 고향에서 우울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 행사가 도산의 마지막 강연과 설교가 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 선생은 얼마 후에 다시 수감되었고 이듬해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

내 일생에 가장 서글픈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도산의 강연을 들었기에 82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강연의 내용과 인상을 잊지 못한다. 안병욱 교수가 나를 부러워할 만도 하다.

도산의 말씀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라 사랑과 인재 교육이었다.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지 잊어서는 안 되며 그 사랑을 애국정신으로 보답하자는 간곡한 호소였다. 도산은 웅변가였다고 하지만 민족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더 컸다. 웅변이기보다는 기도하는 열정이었다.

설교를 끝내고 마을을 떠나다가 자그마한 기와집 뒤 길가에서였다. 저만큼 살려고 하면 몇 평쯤 농사를 지어야 하며 소와 돼지도 기르고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도산의 그 표정에서 나는 우리 민족 모두가 저 가정만큼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도드리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다. 얼마 전에 나는 사흘 동안 충남의 아산, 예산, 부여 지방을 다녀본 일이 있다. 서울에 올라와 도산공원에 들렀다. 도산 동상 앞에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기도했다.

 

“선생님 마음 편히 쉬십시오. 지금은 독립했고 국민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좀 더 세월이 지나면 국민 대부분이 선생님이나 저보다 더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