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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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동

<백세 일기> - 김형석

Chapter 5.#5. 내 나이 25세, 1945년 8월 15일에 꾼 꿈

내가 스물다섯 되던 해, 1945년 8월 15일.

날씨는 맑았고 더위도 심하지 않았다. 27~28도 정도였을까. 전날 밤, 나는 언제나처럼 비슷한 시간에 잠들었다. 누구의 안내를 받아 갔는지는 모른다. 평안남도 진남포 해변가였다. 도시도 인적도 보이지 않는 바닷가에서 마우리E. M. Mowry(한국명 모의리) 선교사를 만났다. 그는 말없이 나를 이끌고 큰 창고 앞으로 갔다. 문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시신들이 작은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모두가 일본 사람의 주검이었는데 바닷물을 먹어서인지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그 옆에도 같은 크기의 창고가 있었는데, 선교사를 따라가 창고 문을 열었더니 마찬가지 모습이다. 쌓여 있는 시체들 속에는 대학 동창이었던 E 군과 또 다른 친구도 있었다. 철학과 동기인 일본 친구들이다.

정말 충격적인 꿈이었다. 그 놀라운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장면이 너무 선명하게 남았다. 그러고 다시 잠들었는데 새벽녘에 또 꿈을 꾸었다.

오른쪽 산 위로 무척 큰 태양이 넘어가면서 지고 있는데 서쪽이 아닌 동쪽 산이었다. 저렇게 붉고 큰 태양이 어떻게 동쪽 산으로 내려가는지 놀라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한없이 넓은 농토 한가운데서 소에 연장을 메우고 밭을 갈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옥토였다. 평생을 해도 다 갈지 못할 정도로 넓은 땅이었다. 곧 어둠이 찾아올 것 같은데….

 

 

두 번째 꿈이었다. 식구들이 모여 조반을 먹을 때 꿈 얘기를 했다. 듣고 있던 부친이 내 얼굴을 보면서 처음 듣는 얘기를 했다.

“내가 네 나이쯤 되었을 때 꿈을 꾸었다. 동쪽 산 위로 태양들이 떠오르는데 다른 때와 같은 해가 아니고, 고무공 같은 작은 태양이 수없이 많이 올라와 우리 땅에 가득 차더라. 그리고 얼마 후에 소위 한·일 합방이 되니까, 일장기가 우리나라 전 지역을 가득 메우더라. 혹시 오늘 무슨 소식이나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평양까지 가보고 오도록 해라.”

평양 도심지까지 갔으나 아무 변화도 없었다. 전차를 타고 시청 앞에 갔을 때였다. 낮 12시 정각이었다. 길가에 있는 가게에서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뛰어내려 가게로 들어섰다. 일본 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국내외 모든 지역에서 전쟁을 끝내고 일본군은 무조건 항복한다.”

 

믿기 힘든 사실이었으나, 내 귀로 직접 들었으니까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미국에 항복한 것이다. 20리가 넘는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앞으로 나는 그 넓은 땅을 갈아 밭으로 바꾸어야겠다고. 지금 돌이켜보면 교육계에서 한평생을 보내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