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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 일기> - 김형석

Chapter 3.#3. 내 나이 100세, 할머니들이 무서웠다

심리 상담이나 치료를 하는 사람들이 습관 만들기를 권하는 사례가 있다. 선한 습관에 몰입하게 되면 그 습성 때문에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30여 년 동안 수영을 즐기는 습관을 쌓아왔다. 지방에 갔다가 서울에 도착하면 피곤을 풀기 위해 집으로 가지 않고 곧장 수영장을 찾았다. 동행했던 사람은 의아해한다. 그러나 나는 수영을 통해 모든 피곤과 스트레스를 푼다. 그것이 습관이 되었다. 오늘은 주말이어서 시간을 쪼개 수영을 했다. 심신이 경쾌해진다. 내 친구는 그 습성 때문에 정기적으로 등산을 했다.

오늘은 수영을 끝내고 버스를 탔는데, 노인들을 위한 효도 수영을 함께 하던 사람을 만났다. 내가 “요사이는 정해진 시간을 지킬 수가 없어서 때로는 수영장을 바꾸곤 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효도 수영으로 맺은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얘기다. “저도 사정만 허락되면 옮겨야겠어요. 여기가 비용이 덜 들기도 하고 시간만 맞추면 교통도 편해서 좋은데, 할머니들 천하에 우리 몇 사람이 겨우 끼여 지내니까 안 되겠어요. 요사이는 5~6명 되던 남자 회원이 점점 줄어드니까 오래지 않아 쫓겨날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할머니들의 위세에 눌려 수영하는 재미마저 없어지는 것 같아요.” 사실은 나도 그랬다.

 

 

할머니들은 한 레인에서 두세 명이 여유롭게 수영을 하는데, 할아버지들은 한 레인에서 5~6명이 몰려다닌다. 내가 용기를 내서 할머니들 칸으로 갔다. 어디서나 남녀는 함께 수영을 하게되어 있고 사람이 적은 칸으로 가서 함께 헤엄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보다 키도 크고 체중도 대단해 보이는 할머니가 준엄하게 말했다. “여기는 여자들이 사용하는 곳입니다.” 할 수 없이 쫓겨났다. 나보다 선배가 될 정도로 오래 수영장에 다닌 80대 할아버지에게도 항의를 섞어 불평했다. “오래되신 선배께서 좀 얘기해 시정하도록 해주세요”라고. 그 할아버지는 나보다도 왜소한 편이다. 내 얘기를 듣더니 “말해보았자 소용이 없습니다. 나는 할머니들이 무서워서 말도 못 꺼냅니다. 우리는 많아야 5~6명이고 할머니들은 40~50명이 되니까, 체육관에서도 우리를 반가워하지 않는 것 같고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할아버지들은 기가 꺾이고 발언권도 없어지고 만다. 말은 안 하지만 버스에서 만났던 사람도 할머니들이 무서웠던 것 같다.

수영장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80대쯤 되면 가정에서도 남편들은 할머니들의 보호 밑에 살아야 하니까, 눈치를 보면서 용돈을 얻어 쓰는 신세가 된다. 연금만 없으면 남편들을 쫓아내고 싶다는 게 일본 여성들의 공론이라고 한다. 이대로 세월이 지나면 세상이 여성 사회로 바뀌고 우리 같은 노인네들은 존재 가치가 없는 인생으로 밀려날지도 모르겠다. 어디 호소할 곳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