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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 - 유발 하라리

Chapter 10.9. 배제의 정치학_ 회고록이 '민주적인' 문헌이었을까?

앞의 내용을 읽으면서 르네상스 시대 군인회고록이 왕조-민족의 위대한 이야기에 비해 역사적 의미와 정치적 권력을 더 평등하게 배분할 것을 주장하는 ‘민주적인’ 문헌이라는 환상을 품게 된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아주 제한적인 의미에서만 옳다. 르네상스 시대의 군인회고록은 모든 개인사가 역사라고 주장했다. 개인사를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든 역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권리와 자율적으로 정치적 권력을 행사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관점에서 개인사를 지닌 사람은 극소수였다. 따라서 회고록 저자들은 자신과 동료들을 역사 속으로 억지로 밀어넣은 뒤 역사의 문을 다시 단단히 닫는 일에 주의를 기울였다.

 

역사는 명예의 전당

 

르네상스 시대의 회고록 저자들이 이렇게 역사를 배타적으로 유지한 것은, 역사와 개인사를 동일시하면서도 개인의 경험이나 성격이나 변화가 아니라 ‘명예로운 행동’을 기준으로 개인사를 규정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경험을 갖고 있으며, 모두 성격의 변화를 겪는다. 전사 귀족이든 농가 아낙이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개인사’가 개인적인 발전의 기록이 아니라 명예로운 행동의 집합이라면 소수만이 개인사를 가질 수 있다.

 

즉, ‘무훈’을 세운 사람들만이 ‘삶’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중세 말기 귀족문화의 유산이었다. 프루아사르의 모델이 된 연대기작가 장 르 벨이 자기보다 더 유명해진 후계자 프루아사르와 마찬가지로 혼자 피레네산맥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그 여행에서 그가 몽타유 마을 출신의 양치기인 피에르 모리를 만났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르 루아 라뒤리의 고전작품인 《몽타유》 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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