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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 - 유발 하라리

Chapter 9.8. 르네상스 시대 군인 회고록의 정치학

사람이든 사물이든 역사적 현실에서 밀려나면 정치의 세계에서도 밀려난다.

역사적 현실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시대마다 달라진다. 중세의 연대기 작가라면 혜성의 출현이나 머리가 두 개 달린 염소의 출생을 역사로 간주하는 반면, 경제 상황이나 농민들의 일상생활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을 할 것이다.

 

오늘날의 역사가들과는 정반대다. 그러나 역사적 현실을 어떻게 규정하고 서술하든, 그 현실은 언제나 전체 현실의 극히 작은 일부일 뿐이다. 분자, 원자, 아원자의 세계에서 매 순간 벌어지는 무한한 일들은 역사에서 아무런 자리도 차지하지 못한다. 인간의 행동과 현상 중 대다수도 여전히 역사적 현실의 경계선 밖에 위치한다.

 

무한히 넓은 인간의 현실 전체에 비해 역사적 현실이 지닌 배타성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중요한 특징인지도 모른다. 이런 배타성 덕분에 역사가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인류의 이야기라고들 한다. 그러나 인간의 현실이 무한하기 때문에 그 현실을 전부 속속들이 ‘이야기’할 수 없다.

 

따라서 인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의 현실 중 특정한 부분을 ‘역사’로 골라낸다. 그리고 이 특정한 일부의 이야기가 바로 인류의 이야기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만약 역사적 현실에 인간의 현실을 너무 많이 포함시킨다면, 역사적 현실이 쓸모없어질 위험이 있다.

 

비록 역사적 현실이 이처럼 협소하기는 해도, 단순히 과거만을 다룰 만큼 협소해지는 법은 없다. 역사적 현실은 언제나 현재와 미래에까지 뻗어 있다. 역사적 현실의 경계선은 과거에 중요했던 일들뿐만 아니라 현재에 중요한 일들과 미래에 중요해질 일들 또한 규정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현실 중 ‘역사적인’ 일부가 먼 과거에 속할 때는 ‘역사’라고 불리고, 가까운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 속할 때는 ‘정치’라고 불린다.

 

 

따라서 역사적 현실의 경계선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은 모두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정치에 동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예를 들어 젠더가 ‘정치적’인 동시에 ‘역사적’인 문제가 된 과정을 보라).

 

그러므로 역사적 현실의 경계선이 어디인가 하는 문제는 단순히 학문적인 질문이라기보다 정치적인 질문이며, 정치적인 의미가 잔뜩 포함되어 있다.

인간의 현실 중 어떤 부분이 역사적인지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지면, 특정한 부류의 사람, 사건, 의문 등이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해지고, 여기서 새로운 권리, 권력, 역할이 파생된다. 반면 사람이든 사물이든 역사적 현실에서 밀려나면 정치의 세계에서도 밀려난다.

 

다음의 두 장 章에서는 르네상스 시대 군인회고록이 역사적 현실을 묘사한 방식에 담긴 정치적 메시지를 살펴볼 것이다. 특히, 역사와 개인사를 동일시하는 태도에 담긴 정치적 의미를 살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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