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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 - 유발 하라리

Chapter 7.6. 인과관계_역사는 반드시 이야기이거나 주장이어야 한다.

“역사는 반드시 이야기이거나 주장이어야 한다.”

 

역사적・심리적 인과관계의 부재

 

근대 말에 역사든 개인사든 상관없이 사실들을 하나로 묶어 의미를 부여하는 아교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인과관계다. 역사에서 인과관계는 궁극적으로 추상적인 문제다. 사람이 개입되지 않은 추상적인 과정과 변화(예를 들어 ‘개신교 윤리가 자본주의를 탄생시켰다’)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개인사에서는 인과관계가 심리적인 문제일 때가 많다. 여러 정신적, 감정적 과정과 변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역사에서도, 개인사에서도 특정한 사실이 의미와 기억할 만한 가치를 부여받는 것은 더 커다란 그림 속의 인과관계라는 맥락을 통해서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의 군인회고록은 사실들을 크게 다른 방식으로 다뤘다. 인과관계로 연결하지 않고, 그냥 죽 나열하기만 한 것이다. 인과관계를 이용할 때와 달리 이런 방식에서는 나열된 사실들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그들이 더 커다란 그림과 연결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목록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기억할 만한 가치를 결정해주지도 않는다. 나열된 사실들은 그 자체로서 기억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들이 목록에 포함된 것은 순전히 그런 가치 때문이다. 이 점을 분명히 설명하기 위해, 이제부터 추상적인 ‘역사적’ 인과관계의 부재를 먼저 살펴보고, 곧이어 심리적 인과관계의 부재를 살펴보겠다.

 

역사는 과정이 아니다

 

20세기에 역사의 흐름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인과관계로 얽힌 다양한 과정들이다. 역사가에게도 회고록 저자에게도 마찬가지다.

 

만약 어떤 학생이 이탈리아 전쟁(15세기부터 16세기까지 이탈리아의 지배를 둘러싸고 프랑스, 신성로마제국, 에스파냐 등이 여덟 차례에 걸쳐 벌인 전쟁 — 옮긴이) 과정을 설명해보라는 질문을 받고, 바야르와 소토마요르 사이의 결투 같은 용맹한 일화만 주르륵 늘어놓을 뿐 지정학적인 면이나 사회경제적인 면을 무시해버린다면 슬픈 일이다.

 

후자의 요소들을 고려하는 것은, 특정한 사건을 기리는 것보다 역사의 과정을 이해하고 가르치는 것이 역사의 목적이며, 특정한 사실이나 일화는 반드시 인과관계라는 맥락 속에서만 의미를 지니게 되므로 그런 맥락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술적인 대승도 전략적인 면에서 보면 패배가 될 수 있고, 전략적인 패배도 정치적인 면에서 보면 승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역사 속의 특정한 사실과 일화는 대개 인과관계 속의 연결고리에 불과하다. 그들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그들이 미친 영향 때문이거나, 아니면 인과관계로 맺어진 과정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역사는 반드시 이야기이거나 주장이어야 한다.

 

만약 특정한 사실에 의지하지 않아도 그 이야기나 주장을 이해할 수 있다면 무시해도 된다. 아니, 무시하는 편이 더 나을 때가 많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수많은 사실들이 주장이나 이야기를 뒤덮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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